책이야기

9마당을 나온 암탉-황선미

짱구쌤 2012. 12. 30. 17:42

 

방학을 하자마자 시작된 주의보는 성탄절 연휴를 섬에서 보내게 하였다. 소리 없이 내리는 함박눈을 보며 집어든 책이 이 책 이다. 익히 여러 번 들어본 적이 있었고 추천 도서로 아들에게 사준 책이었으나 정작 읽지는 않은 터라 미안함에 단숨에 읽었다.

 

주인공 잎싹은 양계장에서 알만 낳고 사는 암탉이다. 하우스 문 저편 아카시아 잎을 보고 반해버린 이 녀석은 자신에게 스스로 잎싹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바깥세상에서 살게 될 꿈을 키우며 산다. 주는 대로 먹고 알 낳으면 편안(?)할 삶을 거부하고 감히 마당에서의 삶을 꿈꾸는 것이다. 마당에 거니는 암탉처럼 직접 낳은 알을 품어 새끼를 낳아 기르고 싶은 것이다. 그 마음을 먹은 순간부터 먹는 것도 알을 낳는 것도 다 심드렁하고 급기야는 폐계 처분되어 쓰레기장에 버려진다. 비오는 쓰레기장, 죽은 암탉 사이로 잎싹이 정신을 차릴 즈음 잎싹의 삶에 가장 중요한 두 주인공을 만나니 바로 청둥오리와 족제비다.

 

야생이었던 청둥오리는 집오리들에게 왕따를 당하면서 마당에서 기생하며 산다. 날개를 다쳐 날 수 없는 그는 야생의 꿈마저 포기하지는 않는다. 청둥오리와 함께 들어온 마당은 그가 꿈꾸던 곳이 아니었다. 기득권의 위계가 존재하고, 인간의 모이에 의존하는 삶이 양계장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족제비는 이야기 내내 잎싹을 위협한다. 발달한 사냥감각과 잔혹함은 마당의 평화를 위협하고 잎싹의 독립을 방해하지만 결과적으로 족제비가 있었기에 잎싹은 홀로 설 수 있는 의지를 획득한다. 우리가 살면서 받는 무수한 저항과 좌절이 결국은 내 안의 항생력을 키우는 동력이 되듯 잎싹 역시 피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세워간다.

 

더 이상 알을 낳을 수 없음을 앍고 마당을 나온 잎싹은 우연히 알 하나를 발견하고 품는데, 그것은 바로 청둥오리와 뽀얀 오리의 알이다. 족제비에게 당한 뽀얀 오리를 대신해 알을 품고, 청둥오리는 온힘을 다해 잎싹과 알을 지키다. 족제비에게 최후를 맞는다. 청둥오리는 마지막으로 잎싹에게 “절대 마당으로 돌아가지 말고 저수지로 가라.”는 마지막 말을 남긴다. 평생 오리들과는 다른 모습 때문에 서러움을 받지만 결코 야생의 꿈을 포기한 적 없는 청둥오리의 삶은 지사를 상징한다.

 

초록머리라 이름 지은 새끼를 키우기 위해 마당으로 돌아간 잎싹은 초록머리의 날개를 꺾어 집오리로 만들고 자신을 잡아먹으려는 주인의 계략을 눈치 채고 탈출한다. 야생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날마다 족제비의 습격을 피해야하며 비바람과 눈보라를 견뎌야하는 야생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다. 그 곳에서 잎싹은 어미로써 몸은 여위어가지만 더욱 단단해지고 강인해진다. 물론 초록머리도 멋진 청둥오리로 성장해 간다. 가끔은 너무나 힘들어 다시 마당으로 돌아가고도 싶지만 누릴 수 있는 자유와 자기 삶에 대한 애착은 그를 야생에 머물게 한다. 초록머리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을 때 그는 온 힘을 다해 족제비와 맞서 그를 외꾸눈으로 만들어 버린다. 초록머리는 청둥오리들의 우두머리가 되고 드디어 먼 여행을 떠나게 된다. 짧은 이별 인사를 전하는 초록머리에게 “나는 추억이 많으니 외롭지 않다.”며 떠나보낸다.

 

어린 새끼를 힘겹게 키우는 외꾸눈 족제비에게 당하는 마지막 순간 비로소 자신의 꿈이 마당을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날아가는 것임을 깨닫는다. “왜 날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마지막 숨을 거두자 곧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마침내 하늘을 날아 저수지와 마당이 한눈에 볼 수 있을 만큼 높이 떠오른다. 고단했지만 아름다웠던 잎싹의 꿈이 아름답다.

 

간밤에 첫째가 감기 고열로 잠을 자지 못해 함께 뒤척였다. 자꾸만 마당에 가두려고 하지는 않았을까?

“배는 항구에 있으면 안전하다. 하지만 배는 그러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순응하면 사랑받는다. 하지만 삶은 그러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홍신자

점 점 작아지고 비겁해지는 꿈, 오랜만에 잎싹을 통해 좋은 동화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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