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10철학콘서트-황광우

짱구쌤 2012. 12. 30. 17:49

#1. 88년, 아니 89년인가? 국회의원 광주동구 선거에 시민후보 이문옥씨(전 감사관)가 나온 적이 있었다. 유세 지원하러 갔다가 한 후보의 연설을 들었는데 강렬한 인상이었다. 상당히 큰 몸집에 우렁찬 목소리로 독재정권을 어찌나 까는지 ‘저 사람 저러다 잡혀가지 않을까?’ 걱정하던 차에 그 분이 바로 황지우 시인의 동생이며 당시 상당히 많이 읽히던 사회과학서적 [소외된 삶의 뿌리를 찾아서]와 [들어라 역사의 외침을]의 저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인’으로 알았던 그 사람의 이름은 황광우였다. 물론 그는 낙선했다.

 

#2. 어떤 잡지(아마 ‘말’지였던 것 같다)를 보다가 민노당 중앙연수원이 남원의 한 폐교에 마련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그곳을 지키는 연수원장(말이 연수원장이지 실제는 관리인)을 소개하는 기사였는데 맘씨 좋아 보이는 중년의 사나이가 바로 황광우였다. 연수원을 외갓집처럼 편안하게 쉬었다가며 충전하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포부였다.

 

#3. 월드컵이 한창이던 2002년 영암의 작은 학교 덕진초등학교에서 근무할 때 4학년 담임 선생님이던 달마대사(정말 달마대사와 인상이 너무도 같아서 우리는 그렇게 불렀다)와 어느 날 허름한 숙직실에서 소주 한 잔 할 기회가 있었는데, 난 늘 무기력하게 보이던 그 황선생님께 여느 때처럼 버릇없이 마구 대들고 있었다. 가만히 계시던 그 선생님께서 대뜸 “동생들하고 똑같은 말을 하네. 이선생” 하고 말씀하시는데. “동생들이요? 누구신데요?” “응, 잘 모를거야. 황지우하고 황광우. 한 놈은 시쓴다고 다니고, 한놈은 데모만 하니..” "네? 황지우, 황광우요?“ 그렇게 된 것이다. 그 달마대사는 그 유명한 황씨 집안의 장남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 선생님의 이름이 황*우다. 그 이후로 난 두 분의 이름을 들으면 달마대사가 떠오르며 훨씬 가깝게 느낀다.

 

철학콘서트는 경제학을 전공한 저자가 쓴 철학책이다. 물론 나 같은 초보자들을 위해 쉽게 쓴 책이다.(하지만 난 그것도 어렵다) 예전에 읽었던 그 ‘소외된~’ 이나 ‘들어라~’처럼 학습하는 기분으로 읽었는데 참 재미있는 비유와 기발한 가정으로 철학책치고는 가볍게 넘길 수 있었다. 동서양과 고금을 망라해 모두 열명의 철학자를 소개하고 있는데 각각의 철학자들마다 핵심사상을 에피소드나 화두를 대입해서 설명해 나가는 것이 인상 깊었다. 가령 이런 식이다.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든 까닭은?

예수의 죽음은 음모였다?

공자의 구직 분투기, 14년 그 결말은?

마르크스가 ‘로빈슨 크루소의 섬’에 간 까닭은?

 

퇴계 이황은 자신보다 스물여덟살이나 어린 고봉과의 편지 교환으로 유명하다. 13년간이나 이어진 그들의 서신은 성리학적 원리에 대한 논쟁이 주를 이룬다. 놀라운 것은 퇴계가 어린 고봉에게 존대를 하며 시종일관 정중하고 진지하다는 점이다. 더욱이 그는 고봉에게 자신이 쌓은 이론이 잘못 되었음을 용기 있게 고백한다. 우리 같은 범인들에게는 참으로 높은 경지의 삶이다.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인물은 토머스 모어이다. [유토피아]의 저자인 토머스 모어는 대법관 출신으로 위대한 사상가이다. 그는 개인의 불행을 개인의 문제로 넘기지 않고 잘못된 사회적 관계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당대 영국 백성들의 비참한 삶을 조망하고추악한 욕심으로 백성들을 도탄에 빠트린 부자들을 집중 비난한다. 이의 실현을 위해 쓴 책이 유토피아이다. 유토피아 에서는 사유재산 페지, 2년간 도농간 순환 살림살이, 주민자체제, 하루 6시간 노동제 등 시민이 주인인 세상을 그린다. 1500년대에 씌여진 책인 점을 감안하면 그의 천재성과 상상력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결국 그는 자신의 깨끗한 영혼과 사상을 부정하려는 헨리8세의 여청을 거부하고 단두대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그가 형리에게 마지막으로 남겼다는 말은 또 한 번 나를 놀라게 한다.

“내 목이 짧으니 그 점에 유의해주게. 내 수염은 반역죄를 저지른 적이 없는데” 하며 수염이 잘리지 않도록 턱을 앞으로 내밀어 주었다. 죽음보다 자신의 영혼과 양심을 소중히 여긴 영국의 소크라테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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