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 7

2024년 2월 29일

아침 9시 30분. 학교앞 용방우체국에 들러 마지막 우편물을 보냈다. 지난 4년간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우체국, 요즘은 택배 업무가 주된 일이 되었지만 여전히 우체국은 편지를 보내고 받는 곳이다. 용방우체국 소인이 찍힌 소포는 3월 개학날에 맞춰 그리운 이들에게 전해질 것이다. 교문을 들어서고 곧바로 자전거 주차장으로 가서 내 애마를 자동차에 실었다. 네번의 자전거 마라톤, 서시천과 섬진강을 따라 달렸던 자전거는 이제 인안뜰과 순천만에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다. 자동차를 집에 두고 자전거로 학교갈 생각에 벌써부터 두근두근, 교장실로 들어가서 교무실과 행정실 식구들에게 갓 나온 따끈따끈한 사인된 책을 전달하고 교장으로 하는 마지막날 결재를 처리했다. 옆방 다목적실에서 3월 4일 치러질 입학식을 준비하는 교무..

어깨동무 2024.02.29

10kg 살찌우겠습니다^^

20년 만에 만난 제자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지난 1월 1일 용*이는 멋진 청년으로 나타났고, “저 다음 달에 결혼합니다.”라며 부끄러워했다. 오랜만에 만나서도 좋았지만 결혼한다는 말은 더욱 좋았다. 한 해 통틀어 40명의 신생아도 태어나지 않는 작은 지방에 서 선생을 하면서, 제일 반가운 일은 결혼하는 청춘들을 보는 것이며 그것이 제자라면 물어서 무엇하겠는가? 용*이는 지난밤 4시간도 잠들지 못했다고 했는데 아마도 오늘 펼쳐질 멋진 결혼식에 대한 기대와 걱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신랑 입장 중에 하객석을 향해 몇 차례의 중세 기사식 인사를 했고, 마지막 도착과 함께 행진곡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끝이 났다. 멋진 행진이었다. 두 사람의 노래 공연은 참 듣기 좋았는데, 완벽한 하모니와 ..

어깨동무 2024.02.24

인생은 너무도 느리고 희망은 너무도 난폭해

프랑스 문학의 앙팡 테리블 「브람스를 아세요」, 「슬픔이여 안녕」을 쓴 프랑수아즈 사강은 순식간에 세계적인 작가로 명성을 얻은 ‘매혹적인 작은 악마’다. 신경 쇠약, 수면제 복용, 정신병동 입원, 마약 복용, 그리고 노년의 파산. 20살 즈음에 얻은 명성과 부를 평생 유지하기엔 그녀는 너무 어렸고 열정적이었다. 누구나 그렇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아직도 많이 인용되는 그녀의 명언(?)이다. 이 책은 갑작스러운 명성에, 유럽과 미국, 전 세계로 이어지는 강연과 초청, 연일 이어지는 파티와 여행 중 그녀다움을 붙잡고 싶어, 친구인 베로니크에게 보낸 편지 모음집이다. 그러니까 빨리 편지해 줘, 최대한 길게 답장해 줘 모두 서른아홉 통의 편지글이다. 서로를 플릭, 플록으로 부르며 써 내려간 편지..

책이야기 2024.02.21

용방을 떠나며

정든 용방을 떠나며 먼저 3월 1일자 인사 이동에 의해 희망하시는 곳으로 옮기시는 여러 선생님들께 축하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곳에서 새로운 시작이 조금은 힘들겠지만 이내 좋아지실 겁니다. 세상에 없던 학교, 용방 출신답게 어깨 펴고 씩씩하게 생활하시길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4년간의 용방초 교장 생활을 마무리하고 이곳을 떠납니다. 여기 모이신 분들 덕분에 무사히 임기를 채우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용방에서의 4년은, 아무 날을 콕 집어내더라도 어느 것 하나 아쉬울 게 없는 나날이었습니다. 세상 아름다운 풍경에서 니것 내것 가리지 않은 착한 사람들 속에서, 순수하고 예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지난 30여년 선생으로 살면서 꼭 이뤄보고 싶은 학교에 가장 ..

어깨동무 2024.02.20

20년 전 영상이 복원되었다

20년 전 제작해서 나눠준 시디앨범이 복원되었다. 나에겐 없어진 지 오래고 제자들 몇몇이 가지고 있던 모양인데 S전자 다니는 제자가 영상을 재생 시켰다고 한다. 오래전 촌스러운 나도 등장하고, 월출산 천황봉 학급 등반, 완도 약산 섬여행도 나온다. 같이 데려간 첫째 아들 녀석의 어릴 적 모습도 신기하다~~ 함께 복원된 400장이 넘는 사진을 보니 감정이 복받쳐 오른다. 어제 헤어진 듯 당시의 숨소리와 공기까지 선명하다.

어깨동무 2024.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