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51완득이-김려령

짱구쌤 2012. 12. 30. 22:48

 

 

얘가 뭐가 되려고 이래?

[ 완득이 / 김려령 / 창비 ]


똥주는 담탱이 이름이다. 그 반에서는 다들 그렇게 부른다. 이동주, 내 큰 녀석과 이름이 같은 이 선생은 도무지 선생 같지 않다. 욕설이 말의 대부분이고, 뭔 공부는 그렇게 많이 하냐고 타박이며, 학교 밖에 더 많은 시선을 두어 때로는 유치장 신세도 진다. 완득이가 이 꼴통 선생을 만나 리드미컬한 스탭 속에 가벼운 잽을 던지듯 거침없이 커가는 이야기다.


 

격투기, 처음에 K1이라는 격투기 경기를 케이블에서 보았을 때 가차 없이 채널은 돌아갔다. ‘할 짓 없다 없다하니 이제 쌈질까지 한다’ 고 생각했다. 주위 남자들 대부분 격투기 이야기를 해댈 때에도 관심이 없었는데 우연히 혼자 남은 집에서 멍하니 바라본 격투기에 나도 모르게 빨려들었다. 하이킥, 로우킥, 압바 등 모르는 단어를 하나씩 익히며 빠져든 격투기는 싸움과 달랐다. 권투와도 분명 달랐다. 권투보다 격렬하지만 그것보다는 세련된 잽과 하이킥을 번갈에 날리는 네덜란드의 본야스키는 당시 가장 좋아하던 격투기 선수였다. 완득이는 격투기를 한다. 난쟁이인 아빠를 따라 드나들던 카바레의 어깨 아저씨들께 배운 쌈질은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다. 문 닫을 날만 기다리던 격투기 도장에 우연히 찾은 완득이를 본 관장은 녀석의 쌈질에 박힌 증오를 보고 격투기를 가르친다. 격투기로 제대로 해소하지 않으면 안 될 그의 미래를 보았을 것이다. 소설 속에서 완득이는 3전 3패 그것도 TKO패. 조금씩 성장한다.


난쟁이, 이주노동자, 정신지체.. 완득이를 둘러싼 가족들이다. 더 이상 절망할 것도 없을 것 같은 이 조건에서 우리의 주인공 완득이는 좀처럼 주눅 들지 않는다. 매우 거칠게 보이는 ‘똥주쌤’의 세심한 ‘지켜보기’도 한 몫을 했을테지만 원래부터 완득이에게는 삶이란 게 그리 복잡하지 않다. 쿨하다. 우리 사회의 짙은 그늘을 완득이와 똥주쌤은 경쾌한 잽을 날리며 헤쳐 나간다. 욕이 정제되지 않은 정서의 배설이기도 하지만 경직된 상황을 가뿐히 넘어서게 하는 ‘화면전환’임을 이 소설로 알았다. 이웃집 아저씨와 똥주쌤이 벌이는 욕의 향연은 이 소설의 다른 재미다. 난쟁이 아빠가 완득이에게 말한다. “너는 나의 춤을, 나는 너의 격투기를 인정하자. 우리 서로의 몸을 인정하자.” 그렇다 인정이다. 다름을 인정하면 틀리고 맞다의 무식한 파괴와 증오를 넘어설 수 있다.


가진 것은 쥐뿔도 없는 그러나 절대 기죽지 않은 완득이는 우리 소설이 발견한 멋진 캐릭터다. 요즘은 대놓고 “너 뭐가 될래?”를 묻는 교사는 없다. 하지만 더욱 완강하게 무언의 눈빛으로 ‘너는 뭐가 될건데?’를 매일 날린다. 폭력이다. 수많은 완득이들이 ‘못 찾겠다 꾀꼬리’를 외치며 방황할 때 우리는 조금 더 경쾌해져야 한다. 슬쩍 건드리고 빠지면서 녀석들의 희망을 엿보아야 한다. 자칫 고루해 보이는 ‘희망’을 촌스럽지 않게 찾아주는 욕쟁이 선생 똥주 역시 오랜만에 발견한 매력적인 선생님이다.


완득이는 성장소설이다. 호밀밭의 파수꾼 같은 좋은 성장소설을 만났다. 10월에 영화로 개봉한다니 한 번 봐야겠다. 그나저나 나는 지금 격투기를 보지 않는다. 보지 못한다. 마눌님이 케이블을 끊고 TV를 없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격투기가 재미없다. 덕분에 그 시간에 책 읽고 독후감 쓰니 고마워해야 하나. 나의 소원은 소박하다. 소파에 누워 프로야구 기아 경기를 1회부터 9회까지 보는 것이다. 누구의 방해도 없이. 근데 왜 이 말을 하지?

2011. 9. 27. 이장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