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48자전거 도둑-박완서

짱구쌤 2012. 12. 30. 22:43

 

시인의 꿈은 가슴이 울렁거리는 사람과 만나는 것

[ 자전거 도둑 / 박완서 / 다림 ]


많은 위대한 작가들의 공통된 소망 중의 하나는 좋은 동화 작품을 쓰는 거란다. 아들, 손녀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어른들도) 동화작품은 그 어떤 문학 작품보다 긴 생명력을 갖는다. 이 책의 저자 박완서 작가는 물론이고 황석영, 이문열, 조정래, 이청준 등도 이미 훌륭한 동화작품을 발표한 바 있다. 나 역시 처음에는 아이들 읽히려고 사 둔 동화책을 내가 더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많다. 특히 그림책이 그러한데 요즘에는 너무 좋은 그림책이 많아서 좀 무료할 때는 아들 서재의 그림책을 수시로 읽는다. 간결하지만 탄탄한 스토리에 작품으로도 손색없는 그림을 보는 재미는 솔찬하다.

[내짝꿍 최영대]의 가슴 저미는 사연과 정감 있는 그림, [마녀 위니]의 화려한 그림, [치과의사 드로토 선생님]의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는 그 어떤 성인 소설과도 비견되는 명작이다. 권정생님의 모든 작품은 다 철학책이다.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황선미님의 [마당을 나온 암탉]의 성공은 내 일처럼 기쁘다.


[자전거 도둑]은 그간 숱하게 추천도서목록으로 구입한 책인데 정작 나는 읽지 않아 늘 마음에 걸린 책이다. 총 여섯 편의 단편이 모아진 이 책은 1979년 출간되었으니 벌써 30년이 훌쩍 넘었다. 아직도 그 울림이 여전한 걸 보면 좋은 작품이 분명하다. 여섯 작품은 모두 우리 사회가 도시화 되면서 늘어나는 여러 병폐에 대해 이야기한다. 특히 물질 만능주의와 인간(만의)중심주의를 아이들 천연의 눈으로 바라본다. [시인의 꿈]이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새로 개발된 고급아파트에 섬처럼 존재하는 판자집에 사는 한 노인(시인)과 그를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는 어린아이의 대화가 재미있다.

“시인은 왜 없어졌나요?”

“사람들은 사람이 하는 일을 두 가지로 나눴단다. 사람을 잘 살게 하는 데 쓸모 있는 일과 쓸모 없는 일로...”

“시가 정말 쓸모없는 거라면 없어지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요?”

“사람은 어느 누구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을 위해 자기를 다 바칠 수는 없느니라.”

“그럼 시를 쓰셨나요?”

“아니, 아직 못 썼다.. 쓰려면 아직 멀었다.”

“그런데 왜 온종일 집을 비우고 돌아다니세요.”

“말을 얻으러 다니지.”

“말이 그렇게 귀한가요. 얻으러 다니게?”

“새로 생긴 물건의 이름하고, 그걸 갖고 싶다는 욕심을 위한 말이 전부지. 그러나 시를 위한 많은 그런 물건에 대한 욕심과는 상관없는 마음의 슬픔, 기쁨, 바람 등을 나타내는 말이란다.”

“할아버지, 이상해요. 할아버지 말씀을 듣고 있으려니까 괜히 가습이 울렁거려요. 이런 느낌은 처음이에요.”

“아이야, 고맙다. 할아버지가 이제부터 말을 얻어다 시를 써도 늦지는 않겠구나. 시인의 꿈은 가슴이 울렁거리는 사람과 만나는 거란다.”


칠레의 대시인과 우편배달부의 우정과 삶을 그린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의 그림이 그려진다. 박완서님이 이 책을 읽은 게 분명하다. 어디 시인만 꿈이 그럴까?

2011년 9월 23일 이장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