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용방이야기11] 할머니 주름살이 좋아요

짱구쌤 2024. 1. 28. 11:45

시모나 치라올로의 [할머니 주름살이 좋아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그려보았다. 어두컴컴한 바닷가와 상처받지 않은 청춘들의 웃음이 극명하게 대비된다.

 

 

내 인생 최고의 장면은 바닷가 소풍이란다.”

이탈리아의 어느 바닷가에서 여름밤을 함께 보낸 그때의 10대 친구들은 모두 할머니가 되었을 것이다. 현재는 남루했고 정해지지 않은 미래는 두려웠지만 싱그러운 청춘들은 함께 웃을 수 있어 견딜 만했다. 주름 가득한 할머니의 생신날, 주름살이 궁금한 손녀에게 인생 최고의 날들을 이야기하는 여든 할머니는 아름답다. 할아버지를 처음 만난 날, 딸을 낳은 날, 딸이 결혼한 날 등 웃음과 행복 가득한 날에 생긴 주름살이 부끄럽지 않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림책도 있지만 읽는 내가 더 좋아하는 그림책들도 있다. 이 책이 그랬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물어봤다. 네 최고의 날은 언제였어? 생일날, 자전거 생긴 날, 동생 태어난 날, 해외여행 간 날, 워터파크 놀러 간 날, 첫 뷔페 간 날... 짱구쌤 용방 최고의 장면도 이야기했다.

 

#1. 코로나 속 첫 등교일

교장으로 부임했지만 코로나가 시작된 학교에는 아이들이 없었다. 석 달 가까이 온라인 수업이 계속되고 정기적으로 찍어서 보낸 영상 그림책이 유일한 소통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529일 등교 개학일, 에듀버스에서 내리는 아이들과 첫인사를 나누던 때가 생생하다. 한 명 한 명 무사한 그들이 얼마나 고맙든지.

 

#2. 2020년 용방 자전거 마라톤

가을에 시작한 교장 자격연수 중에 하필 자전거 마라톤이 끼어 있었다. 2학년들과 한 학기 동안 연습했던 자전거를 못 타게 되니 아이들도 나도 여간 서운한 게 아니었다. “짱구쌤은 그날 왜 못 와요? 그럼 우린 누구하고 타요?” 안 되겠다 싶어 담당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오전 연수를 빠지기로 했다. 못올 것 같은 짱구쌤의 출현을 가장 반긴 것은 아이들이었다. 바람은 살랑거리고, 하늘을 눈부시게 푸르고, 서시천은 반짝거리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드높았다. 마치 생의 어떤 절정 같은 날이었다.

 

#3. 용방 공간혁신 보고의 날

2년을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이런 날이 찾아왔다. 우리가 오래 꿈꿔왔던 용방 공간혁신 기본 설계도가 공개되는 날이다. 사전기획, 공간혁신 워크숍, 인사이트 투어, 건축 수업과 토론 등을 통해 세상에 하나뿐인 학교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전문성과 열정으로 똘똘 뭉친 [오즈앤엔즈] 최혜진 소장이 말한다. “최고 전문가의 일필휘지로 그려질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함께 만든 학교입니다.” 기대를 뛰어넘는 아름다운 학교가 그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