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인생의 역사

짱구쌤 2023. 5. 31. 20:05

는 나를 사랑한다. 가 나를 사랑한다.

[인생의 역사 / 신형철 / 난다]

 

브레히트와 노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나에게 말했다/“당신이 필요해요”/그래서/나는 정신을 차리고/길을 걷는다/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 되겠기에(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브레히트) 80년대 말 금남로 원각사 옆에 카페 [브레히트와 노신]이 있었다. 생뚱맞다는 표현이 딱인 그곳의 주인은 내 형의 괴짜 선배였는데 덕분에 몇 번 놀러 가서 고급스런 인테리어와 한 번도 본 적 없던 음식을 맛보기도 했다. 전사 김남주가 번역한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덕분에 브레히트는 당시 우리들 사이에서 꽤나 알려져 있었고, 노신(루쉰) 역시 중국 혁명의 열풍 속에 운동권 탐독서에 그 이름이 올라있던 차이지만 도무지 이곳 광주 거리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가지 않아 문을 닫았다. 브레히트의 이 시는 당시에도 상당히 충격적이어서 난 여러 편의 편지에 단골로 써먹기도 했었다. 그냥 사랑시 정도로 알고 있다가 김남주를 접하고, 그의 스토리와 겹치면서 다르게 해석된 시이기도 했다. 88년 그가 9년여 수감 생활 끝에 석방되어 광주 무진관에서 열린 시민송년회에 참석하여 [학살]이라는 시를 낭독했을 때를 잊을 수가 없다. 첫 구절 당신은 묻겠는가 그게 사실이냐고절규였고 선동이었다. 이후 직장일로 영암에 살게되면서부터 그의 생가인 해남 삼산에 자주 가게 되고 이웃 마을에 있는 고정희 생가는 꾸러미 답사지가 되었다. 저자 신형철의 시 해석(해체)은 신선하지만 그의 말처럼 그것을 읽는 내 경험의 깊이를 넘어서지는 못한다. 뭐 시만 그렇겠는가?

 

인간임을 위한 행진곡

해남에는 윤씨 고택 녹우당이 있고 그곳엔 우리가 사랑하는 공재의 자화상이 있다. 당쟁을 피해 내려온 고향 땅끝마을에서 한 번도 도성(한양)의 불빛 그리워한 적 없다던 그였기에 형형한 눈빛으로 당당한 자화상을 그릴 수 있었을 것이다.

교사가 된 후 매해 518을 가르쳤으나 한 번도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부르지는 않았다. 아이들이 아직 그 노래를 알면 안 될 것 같아서였고 그것은 늘 내 그릇의 크기였다. 그러다가 언제 제대로 가르치지 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그 노래를 부르며 이야기했다. 아이들은 진지하게 배웠고 나 역시 어느 때보다 오월과 광주를 제대로 가르친 느낌이었다. 저자는 광주의 대학에서 가르치며 오랜 시간을 보냈기에 이 노래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이해했을 것이다. 그러기에 인간임을 위한 행진곡이라는 탁월한 해석도 가능했다고 믿는다. 딛고 선 땅에서 바라본 시선이 정직하다. 하여 도성의 불빛을 그리워하고 갈망하는 눈으로 자기 땅을 바로 보기는 쉽지 않다. 뛰어난 능력과 탁견으로 나를 일깨웠던 능력자들을 존경할망정 사랑하지는 못할 이유가 거기에 있다. 영남대의 유홍준, 전남대의 이태호, 울산대의 조국, 조선대의 신형철이 서울로 간 이유는 절박했을 것이다. 기다리는 가족이 있었을 것이고, 담론을 만들지 못한다는 조급증도 생겼을테지만 아쉬운 것은 아쉬운 것이다. 촌놈의 객기라 할진데, 그런 꼬라지도 없다면 쪽팔리기가 그지없을 것이니... 20년 넘게 언론개혁과 인물 비평을 해온 전북대의 강준만은 사실서울공화국과의 싸움이 본질이었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서울대를 정점으로 한 중심부들의 기득권을 가장 깨트려야 할 것으로 보았다. 그는 전주에서 살며 지역 언론과 기득권 정치를 질타하며 오늘도 그곳에서 변화를 꿈꾸기에 지역을 살리자는 그의 말은 신뢰를 얻는다.

 

시는 나를 사랑한다

멀쩡하고 뛰어난 시비평에 딴지를 거는 것은 못난이의 꼬장이다. 그가 소개한 다음 시에서 용기를 얻었다. 그 무엇에도 주눅 들지 않고 시에 대해 내 생각을 이야기하려는 거다. 밥 딜런의 노래처럼 시대는 변하고 있으니(The Times They Are a-Changin).

저자는 시를 사랑하고 시도 저자를 사랑한다고 했으니 그의 이 책은 복되고 정당하다. 시를 사랑한 이의 글은 다소 난해했지만 나는 많이 배웠고 깊이 느꼈다. 나는 을 사랑하고, 이 나를 사랑할까? 맥주, , 나무, 야구, 공상, 음악, , , 여자, 권력..

착한 사람이 될 필요 없어요/사막을 가로지르는 백 마일의 길을/무릎으로 기어가며 참회할 필요도 없어요/(...)당신이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세상은 당신의 상상력에 자기를 내맡기고/기러기처럼 그대에게 소리쳐요.격하게 또 뜨겁게.../세상 만물이 이루는 가족 속에서/그대의 자리를 되풀이 알려주며.(기러기. 메리 올리버)

2023531일 이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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