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정세현의 통찰

짱구쌤 2023. 3. 1. 19:54

우크라이나는 왜 두들겨 맞는가?
[ 정세현의 통찰 / 정세현 / 푸른숲 ]

정세현이 이 책을 쓴 이유
한국이 자주성을 가지려면 가장 먼저 한국 사회의 상층부를 형성하고 있는 지배계급이나 기득권층 또는 중산층 사람들이 자신들의 머릿속에 대미 종속성이 있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사실 나는 우리 국민들이 그것을 깨우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이 책을 쓰자는 데 동의했다.(213쪽)
사실 난 북한대학원에 가고 싶었지만 그곳이 경남과 서울에 있어서 못해 아쉬웠다. 정세현 전 장관은 남북관계와 국제정세에 있어서 내가 가장 신뢰하는 전문가이자 정책가이다. 정욱식, 이종석, 김연철, 정동영도 훌륭하지만 56년을 오직 한길만 걸어온 저자에 비할 바는 아니라고(작고한 DJ를 제외하곤) 생각한다. 그가 작금의 혼란스러운 국제정세와 비탄에 빠진 남북관계를 가만히 두고 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원로는 그래야 한다.

 

CVID, 말은 멋있지만 공짜일 수 없다
미국이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인 핵 폐기)나 FFVD(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니 이런 소리만 해서는 북한이 회담에 나올 리 없다.(232쪽) 북핵 문제는 북한이 요구하는 북미 수교나 평화협정, 경제 지원을 약속해야만 해결될 수 있는 목표다. 북한은 무조건 불합리하고 모순덩어리라고 결론을 내기보다 그들의 일리 있는 말, 중국의 표현을 빌러 ‘합리적인 우려’는 인정하면서 단계별로 우리의 계획을 행동에 옮겨보자. 그러다가 북한이 약속을 깨면 그때 다시 제재를 가하면 된다. 그게 스냅백(snap back)이다.(233쪽)
이 책의 가장 탁월한 점은 바로 핵심을 찌른다는 것이다. 대미종속적인 우리 외교의 한계를 짚고 자국중심성의 외교와 남북정책을 펼쳐 보인다. 정치가로서가 아니라 정책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최강대국 미국 앞에서 벼량끝전술을 쓸 수 밖에 없는 북한의 ‘합리적인 우려’를 이해하고 행동 대 행동의 동시 이행을 끌어내기 위한 우리의 역할을 강조한다. 이제 한반도 비핵화는 멀어졌고 비확산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저자의 진단이 아프다.

 

우크라이나가 무자비하게 짓밟히는 이유
우크라이나는 1994년 ‘부다페스트 안전보장 양해각서’로 미국과 러시아 등 6개국으로부터 핵과 미사일을 내 놓으면 확실하게 체제 안전을 보장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273쪽) (리비아처럼)우크라이나도 미국과 러시아의 선의, 더 노골적으로는 감언이설에 속아서 150개나 되는 핵폭탄과 1,700개의 미사일을 팔지 않았더라면, 핵폭탄을 10개라도 가지고 있었다면 저런 꼴은 안 당했을 것이다. 미사일 100개만 있었어도 그렇게 건드리지 못한다. 아무 것도 없다고 러시아가 마음 놓고 두들겨 패는 것이다.(275쪽) 우크라이나 사태를 지켜본 북한은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277쪽)
대명천지 2023년에 전쟁으로 무참히 파괴되는 일상이 날마다 중계된다. 전쟁을 통해 가장 이득을 본 나라는 누구인가? 왜 이 야만적인 사태는 종식되지 않는가? 우리는 무엇을 통찰해야 하는가? 저자는 조목조목 이야기한다. 동굴의 우상을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와 우리 정책가들에게 호소한다. 자국 중심성만이 살길이라고.

 

이제는 통일이 아니라 남북연합
우리는 미국을 쫓아다닐 게 아니라 설득해야 한다. 한국은 당연히 미국과 동맹을 강화하는 목적을 미국이 불리한 약속도 지키도록 하는 것으로 삼아야 한다. 이것이 한국 외교가 가야 할 길이고 대한민국 외교에서 자국 중심성을 확립하는 길이다.(286쪽) 북한과 경제 협력관계가 긴밀할수록, 즉 북한이 경제적으로 남한에 의존할수록 북한은 우리는 도발하기 어렵다. 북한과의 경제적 협력은 우리에게 새로운 경제성장의 기회가 되기도 할 것이다. 북한이 미국에게 핵과 미사일을 흔들면서 벼랑끝전술을 쓸 수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는 도발하지 않도록 하는 길로 가야 한다.(288쪽) 남북연합은 유럽연합과 비숫한 국가형태라고 볼 수 있다.(289쪽) 지금은 통일이라는 단어를 버리지 못하고 궁극적으로는 통일로 가야한다고 하지만 앞으로 10여 년이 더 지나면 통일이 아니라 연합이 오히려 현실적인 선택이라는 쪽으로 국민들 생각도 바뀔 거다. 더구나 지금의 20-30대 청년들은 통일에 관심이 없다. 그들이 나이 든다고 통일을 생각하지는 않을 거다.(291쪽)
이 책에서 가장 충격적인 결론이었다. 여전히 통일이 우리의 소원이라고 믿는, 경제협력-남북연합-연방제로 이어지는 남북 관계의 공식이 틀릴 수도 있다는 통렬한 현실인식이 필요해 보인다. 50년을 넘게 판문점 협상가로서의 살아온 우리시대의 원로가 간절하게 이야기한다. 30년 넘게 교단에서 살아온 교육자이자 교육정책가인 나에게 묻는다. 지금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고 있는가?
2023년 2월 28일 이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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