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41문재인의 운명-문재인

짱구쌤 2012. 12. 30. 22:26

 

 

동행(同行)

[ 문재인의 운명 / 문재인 / 가교출판 ]

 

2002년 12월 대선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단일화에 합의한 정몽준은 노무현에게 연립정부의 내각 반을 자신에게 주라는 내용의 각서를 요구한다. 이에 많은 참모들은 그냥 써주자고 하면서 어차피 정권을 잡은 후에는 달라질 것이라고 훈수한다. 이에 대한 생각을 묻자 문재인이 말한다. “우리가 쭉 살아오면서 여러 번 겪어 봤지만, 역시 어려울 때는 원칙에 입각해서 가는 것이 가장 정답이었다. 뒤돌아보면 늘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땐 힘들어도 나중에 보면 번번이 옳은 것으로 드러났다.”하면서 각서 요구에 응하지 말라고 한다. 보이는 인상, 느꼈던 이미지와 딱 맞아 떨어지는 그의 말이다.

 

이 책은 대통령 노무현의 30년 지기이지 동지인 비서실장 문재인의 회고록이다. 회고록과 자서전을 통해 남의 일생을 들여다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지만 조금은 불편하다.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와 유고작 [진보의 미래]를 읽을 때도 그랬고, [김대중 자서전], [호치민 평전], [전태일 평전], [Che Guevara], [리영희 대화], 심지어는 스티븐 잡스의 [iCon] 때도 그랬다. 누구의 인생에나 있게 마련인 굴곡이 내내 아프고 힘들었다. 또 그들이 이루었을 정점에서의 고뇌도 내겐 쉽지 않았다. 이 책 역시 변호사 문재인이 걸어 온 숱한 길에 대한 보고서이자 그의 정치적 동반자 노무현에 대한 회고록이기에 편안하게 읽히지는 않았다. 하여 난 이 책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한없이 긴장되어지는 몸과 의식을 이완시키기 위해 말랑말랑한 앞의 책 [미스터 모노레일]을 동시에 읽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 책에서 발견한 것은 同行이다. 운명처럼 만나 30년을 동고동락해온 그들의 동행이 너무도 부럽고 경외로웠다. 하여 그 친구(사실 문재인은 노무현보다 여섯 살이나 어리다)이자 동지를 부엉이 바위에서 혼자 있게 내버려둔 자책이나 회한을 그답게 넘어서려 한다. 충격 비통 연민 추억 같은 감정을 가슴 한구석에 소중히 묻어두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시작하자고 말한다. 그것이 그를 ‘시대의 짐’으로부터 놓아주는 길이이자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것이다. 그와 노무현,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는 역사가 할 것이다. 여기서 내가 느꼈던 것은 우리가 너무 쉽게 남을 평가하고 재단했다는 후회에 있다. 참여정부와 노무현의 여러 정책 중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행정정보시스템 NEIS이다. 학생 인권과 정보 보호 측면에서 전교조가 반대한 이 정책은 참여정부 출범 초기 파트너쉽을 통해 교육개혁을 하고자 했던 전교조가 결국 정부와 등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물론 당시 나를 포함하여 많은 조합원들의 우려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제어하지 못하고 집행부에 끌려 다닌 우리의 실력은 두고 두고 땅을 칠 일이다. ‘이것보다 중요한 교육정책이 얼마나 많은데..’ 문재인의 문제의식도 이와 비슷하다. “나에게는 가을서리(秋霜)처럼 엄격하게, 남에게는 봄바람(春風)처럼 따뜻하게” 신영복님의 글귀가 아프다.

 

나에게도 동행하는 사람들이 많다. 최근의 아쉬웠던 동행은 지금은 전교조 위원장이 되어 온갖 고생을 사서하고 있는 장석웅 선배와의 그것이다. 지난 5년 전 전교조 전남지부에서 2년 동안 같이 지내며 한솥밥을 먹었었는데 위원장에 당선되어 서울로 같이 가자고 할 때 매몰차게 거절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지난 여름 무더위에 20일 넘게 단식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무겁고 부끄러웠다.

 

문재인은 참 괜찮은 사람이다. 내년 대선과 관련하여 야권 후보로 급부상하는 그를 보며 그의 경륜과 원칙 있는 소신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 받는 것 같아 다행이라 여긴다. 적어도 편안할 수 있는 변호사의 삶을 낮고 힘없는 사람들과의 동행으로 이끌고 있는 그의 진정성은 두고 두고 빛났으면 좋겠다.

 

사실 두 권의 책 [미스터 모노레일]과 [문재인의 운명]은 완전히 다른 성격의 책이지만 우연찮게 둘 다 ‘운명’에 대해 나에게 묻는다. “너의 운명은 뭐냐?”

2011. 8. 23. 이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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