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43강남좌파-강준만

짱구쌤 2012. 12. 30. 22:31

 

강남좌파, 2012년?

[ 강남좌파 / 강준만 / 인물과사상사 ]

 

이름도 생소한 강남좌파는 미국에서 ‘리무진 진보주의자’로 불리는데 고급 승용차를 타는 등 생활은 상류층처럼 하면서 정치적 성향은 진보 노선을 내세우는 걸 꼬집어서 하는 말이다. 그로 인해 ‘좌파처럼 생각하고, 우파처럼 생활한다(live right, think left)'는 비아냥을 듣기도 한다. 영국의 ’샴페인 사회주의자‘, 프랑스의 ’케비어 좌파‘, 캐나다의 ’구찌 사회주의자‘ 등은 모두 같은 의미로 쓰인다.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저자 강준만은 전북대 신방과 교수이다. 내가 아는 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책을 읽고 가장 많은 책을 펴낸 사람이다. 한 달에 100만원 이상의 책값을 지불하며 지금까지 단행본 200권 이상을 펴냈다. 학생을 가르치고 준비하는 일 이외에는 거의 모든 시간을 신문을 스크랩(10개)하고 책을 읽으며 책을 써댄다. 저작의 범위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 스포츠 등 전방위 적이어서 가히 우리 시대 최고의 글쟁이라 불러도 손색 없다. 내가 이렇게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내 책꽂이에 그의 단행본 책 15권 있으며(그의 저작 중 1/8 수준) 그가 발행한 월간 인물과 사상을 무려 5년간이나 정기구독하면서 내린 결론이다.

 

그는 이미 두 번의 대통령 당선자를 예언(?)한 바 있다. 역설적인 제목 [김대중 죽이기]를 통해 그에게 덧씌워진 지역주의와 이념 편향성을 걷어 내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노무현 대통령의 ‘바보성’을 발굴하여 [노무현과 국민사기극]으로 그의 등극을 예고했다. 단순히 예언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갖는 시대성에 주목하면서 부각시키는데 선도적 역할을 한 셈이다. 그의 이 같은 예지력은 신내림(?)이나 우연성에 기인하지 않고 오직 그의 투철한 다독성과 치열한 지식인 정신에 근거한다. 그가 십 수년간 천착해온 이슈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정치혐오주의, 학벌주의, 연고주의, 지역주의 등인데 이를 지속적으로 비판하며 끊임없이 대안을 모색해 왔다.

 

이번 책에서는 노무현 정권 때 그의 제기로 일반화된 ‘강남좌파’이다. 보통 좌파 정치인이나 지식인들에게 쓰는 말인데 저자는 ‘모든 정치인은 강남좌파’라는 명제 하에 서 출발한다. 김대중 노무현 시대를 거치면서 주목받게 된 강남좌파 현상을 단순하게 지식인이나 정치인들의 ‘이념’에 주목하지 않고 ‘엘리트주의’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간 강교수가 주장해온 학벌주의와 엘리트주의의 연장선이다. 우리 사회에서 SKY가 가지는 주도성과 폐해가 고스란히 ‘강남좌파’ 논쟁의 핵심으로 남았다는 것이다. 가령 요즘 뜨고 있는 강남좌파인 ‘조국 서울대 법대교수’가 울산대 교수였으면 뜰 수 있었겠는가에 주목한다. 물론 조국교수의 주장대로 우리 사회에 강남좌파가 많아져야 사회가 건강하다는 의견도 소개한다. 말이 나왔으니 강남좌파에 대한 강교수의 명암을 살펴보자면,

우선 긍정론이다. 첫째, 상류층 사람이 진보적 가치를 역설하는 건 하층계급에 큰 힘이 된다. 상류층 사람이 점하고 있는 위치의 파워 덕분이다. 둘째, 갈등의 양극화를 막는 데에 도움이 된다. 모든 상층계급은 보수, 모든 하층계급은 진보라면 갈등이 살벌해지겠지만, 상층에도 진보가 있고 하층에도 보수가 있다는 건 양쪽의 충돌 예방에 도움이 된다. 셋째, 상류층에 속하면서도 하층계급을 생각하는 마음이 고맙다. 그걸 위선으로 보겠다면, 이 세상에 위선이 아닌 건 없을 것이다. 다음은 부정론이다. 첫째, 권력·금력까지 누리면서 양심과 정의의 수호자로 평가받는 이른바 ‘상징자본’까지 갖겠다는 건 지나치다. 빈털터리라도 세상을 향해 큰소리치면서 사는 맛이라는 게 있는 법인데, 그런 ‘도덕적 우월감’까지 상류층이 누린다는 건 부당하다. 둘째, 진보를 더 많은 권력·금력을 쟁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다. 강남 좌파의 진보 프로그램은 하층계급의 절박함을 모르기 때문에 진정성이 결여돼 있으며, 상징적인 제스처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셋째, 강남 좌파의 진보 프로그램은 말로만 강경한 속성이 있어 실천보다는 당위의 역설로 그칠 가능성이 높고, 오히려 해낼 수 있는 실천마저 어렵게 만들 수 있다.

강준만 교수의 주특기는 인물비평이다. 우리 시대 주요인물들이 지금까지 한 말과 글, 행동 등을 총 수합하여 그 사람을 비평한다. 그의 비평은 일관되고 치열하며 지속적이어서 강교수 같은 사람 10명만 있어도 정치인이나 저명 인사들은 함부로 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이 책에서는 조국교수, 오세훈, 유시민과 문재인, 박근혜, 손학규 등 차기 대선의 유력 주자들을 강남좌파적 시각에서 분석한다. 흥미 있는 인물비평이다. 나 같은 범인들이야 그들의 주요 발언이나 정치적 행보에 근거하여 이미지 치원의 인물관을 갖게 되는데 강교수 같은 전문가의 비평은 늘 새롭게 나를 자극한다. 이번에도 그랬다. 전에 읽었던 노무현과 문재인, 유시민의 저작에서의 느낌과 3자인 강교수의 비평을 종합하니 정치인의 인물관이 비교적 입체적으로 세워지게 되었다. 이전의 저작에서 받았던 신선한 충격과 반성의 연장이다. 일례로 그가 제기한 ‘우리 국민들의 과도한 정치혐오주의’가 결국은 우리 정치를 발전시키지 못한 장애물이라는 깨달음은 지금도 유효하다. 그래서 나는 정치인을 술자리의 안주로 삼지 않으려 노력한다. 아울러 “나의 지론이지만, 이 세상 모든 일엔 명암(明暗)이 있는 법이다. 일방적으로 나쁘거나 좋기만 한 일은 없다. 이 책이 입시정책의 부정적인 측면에 주목하는 건 이제 더 나은 틀을 짤 때가 되었다는 걸 강조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라는 강교수의 지론에 동의한다. 그러고 보면 나는 참 귀가 얇다.

방학의 끄트머리 일요일에 두 아들과 김해 ‘봉하마을’에 다녀왔다. 그가 나고 자란 생가도 보고 ‘부엉이 바위’와 단촐한 비석도 보았다. 오래 전부터 벼려온 일인데 오늘에야 했다. 민초들의 ‘박석’에 서서 부엉이 바위를 올려다 보았다. 그리고 그가 손녀를 태우고 논두렁 사이를 지나가는 자전거 사진 앞에서 한창 머물렀다. 둘째가 쓴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세요’ 라는 노란 쪽지가 딱 내 맘 같았다.

2011. 8월 28일 이장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