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단순하지만 충만한, 나의 전원생활

짱구쌤 2021. 5. 5. 11:19

나는 그날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 단순하지만 충만한, 나의 전원생활 / 벌린 클링켄보그 / 목수책방 ]



완벽하다고 할 뻔 했던 날

지난주에는 거의 완벽하다고 할 뻔했던 날이 하루 있었다. ‘할 뻔했던 날’이라고 말하는 것은 진정으로 완벽한 날이 이미 내 삶에서 왔다 갔다고 말하기가 싫기 때문이다. 완벽한 날은 언젠가를 위해 남겨 두고 싶다. 하지만 완벽한 날이 온다면 지난주의 그날과 아마 비슷할 것이다. 서쪽에서 산들바람이 불어와 날을 깨끗하고 빛은 투명했고, 우리 농장에는 티끌 하나 떨어지지 않았다.(451쪽)
6월 30일 저자의 농장에는 벌들이 부지런히 꿀을 모으고, 염소는 우리를 나와 풀을 뜯고, 야생여우 한 쌍이 농장의 닭을 잡아채서 허둥지둥 도망치고, 새벽에 거미줄을 연신 걷어내며 걷다보면 명주실 한 뭉치 짠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양동이 하나 옮겼더니 그 밑 개미들과 집게벌레의 왕국이 엉망이 되어가는 소란이 뒤따른다. 억누를 수 없는 삶의 추동력을 본 날이다. 농장 안에서 뒤죽박죽 제멋대로인 것처럼 보이는 생명들이 함께 사는 시간이다. 햇살 청아하고, 산들바람이 불어오고, 퇴비더미에서 김이 솟아오르던 날, 던져 올린 동전처럼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 같은, 저자는 나무 그늘에 앉아 멀리까지 오가며 꿀을 뽑고, 꽃가루를 묻히고, 목족의식을 가지고 뭉쳐 다니는 벌들을 바라본다.
사실 완벽할 뻔했던 날은 수시로 찾아온다. 최근에는 시골집 앞마당에 화사하게 핀 철쭉 무더기를 보며 커피 마신 날이 그랬고, 학교 숲에 새로 앉힌 정자와 흔들의자에서 온통 그들만의 세상처럼 착각하게 만든 갖가지 새들의 지저귐을 듣는 순간도 그랬다. 다만 저자처럼 단 번에 알아보지는 못했다.

 

일하고 글 쓰고

뉴욕타임즈에 실린 [시골생활]이라는 칼럼 중 173편을 골라 엮은 책이다. 저자의 시골 생활 11년의 기록이기도 하다. 500쪽이 넘는 책에서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위의 글처럼 농장에서 일하며 보고 느낀 것에 대해 다만 묵묵히 기록할 뿐이다. 뉴욕타임즈라는 유수의 언론에 밋밋한(?) 칼럼을 장기 연재한 것도 놀랍거니와 지루할 수도 있는 일상을 매번 다른(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이야기로 쓸 수 있는 저자의 뚝심과 능력은 더욱 놀랍다.
주말마다 쉬다오는 시골생활이 매일로 이어지면 어떻게 될까? 특별하지 않는 그 일상의 지루함을 견딜 수 있을까? 세간의 관심과 관계에서 멀어져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을까? 당장 집을 짓지 못하고 애매한 주말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이다.

 

결국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진정한 자립’이다. 학교에서의 일 말고, 성인 일꾼으로 자연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의지와 기술들. 가령 엔진톱, 예초기 다루기, 씌우고 농작물 기르기, 가지치고 농약 치고, 지지대 세우며 나무 기르기, 용접하고 절단하고 칠하며 집을 가꾸고 보수하는 일을 능숙하게 하고 싶다. 나무나 사람 그림도 잘 그리고 싶고, 제약 없이 좋은 음악을 들으며 맛난 음식도 만들어 먹고 싶다. 결국 하고 싶은 일을 거침없이 해내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글을 쓰고 싶다. 아무 글이든.
글을 쓰는 지금도 시골집에 갈 생각에 바빠지고 있다. 2주 전에 한 예초 작업을 언제쯤 또 해야 하는지, 새로 심은 묘목들이 뿌리를 잘 내리고 있는지, 감나무 뒤쪽에 심으면 좋을 수국은 장에 나와 있는지...

2021년 5월 5일 이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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