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프로보커터

짱구쌤 2021. 4. 25. 11:29

새로운 ‘강준만’이 나타났다!

[ 프로보커터 / 김내훈 / 서해문집 ]


프로보커터
‘도발provoke하는 사람’이란 뜻으로, 말과 글과 영상으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도발하여 조회수를 끌어올리고, 그렇게 확보한 세간의 주목을 발판 삼아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스마트폰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물리적인 시간과 신경쓰임에서도 그렇지만 절로 이마가 찌푸려지는 이슈메이커들의 도발에 질려버렸기 때문이다. 포털을 도배하다시피 하는 보수언론의 찌라시 수준의 기사에서는 예외 없이 전문 도발자들이 매일 인용된다. 문제는 정도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더 자극적으로, 더 모멸감을 주는 표현은 이제 그 한계가 없는 듯 보인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듯 이별의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다.


진중권, 도발의 장인
하나 마나한 고상한 말만 해대는 지식인은 꼰대다. 아직도 대중을 가르치고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본인의 사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진중권은 같은 진영이라도 불편한 말을 참지 않는다. 물론 그 방식이 다소 거칠더라도 꼭 필요한 일이다. 사회는 그래야 건강해진다. 그는 적어도 꼰대는 아니다. (‘진중권의 테크노인문학의 구상’을 읽고. 이장규. 2016년)
집에 있는 진중권의 책만 대여섯 권이다. 일찍부터 그의 재능이 부러웠고 한때는 사이다 같은 그의 발언이 좋았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아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당장 포털을 검색하면 상대방 모욕주기의 대가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방위적인 간섭과 훈수다. [미학에세이]와 [과학콘서트] 등에서 보여준 진중권식 미학의 자리에 독설과 조롱 가득한 ‘어그로’가 자리를 잡았다. 저자는 ‘전락’이라고 했다. 진보진영에서의 영향력이 전과 같지 않자 무리수를 두게 되는 악순환이 그에게도 찾아온 것이다. 조중동을 비롯한 특정 집단에서 자주 인용하는 ‘전직 진보지식인’으로 소비되는 것이다.

 

서민, 게으른 ‘문빠 저격수’
톡톡 튀는 기생충학자로 필명을 날리던 서민은 이제 ‘문빠 저격수’로 대체불가의 자리를 차지했다. 세상 모든 문제의 원인을 ‘문빠’로 돌리는 듯한 그의 요즘 행보를 두고 저자는 ‘게으른, 혹은 무능한 프로보커터’라 일갈한다. 최근 윤미향 의원을 악마라고 비난한 것에 대해 진중권으로부터 선동이라는 비판을 받자, 그에게 사과하는 기사를 보고 ‘참, 코미디가 따로 없구나.’ 웃음만 나왔다. [조국흑서팀]으로 찰지게 단합하여 오십보백보 행보로 다투다가 ‘선동’이라 비난하고 사과하는 모습이 우스웠다.
세상 모든 문제를 나 말고 시스템 때문이라 말하는 이들이 많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입시 때문, 양극화 때문, 박근혜(문재인) 때문... 게으른 사회분석이며 성찰이다. 부디 그가 다시 연구실로 돌아가 재기 넘치는 기생충 학자로 자신과 사회에 기여하길 바래본다.

 

김어준, 음모론과 정치종족주의
재미있다. 김어준의 속내를 보았다. 세상 무서울 것 없어 보이는 그가 감쳐둔 가녀린 순결과 눈물을 살짝 보았다. 하여 그의 [나꼼]을 다운받아 MP3에 넣었다. 당분간 김광석과 [나꼼]이 경쟁할 태세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를 읽고. 이장규, 2011년)
나꼼수의 열혈 팬들은 지금도 TBS 뉴스공장을 즐겨 듣는 것 같다. 대화 중에 ‘나꼼수에서는’이 ‘뉴스공장에서’로 바뀌었을 뿐인 사람들이다. 김어준을 라디오 연애상담가로 접했을 때의 후련함과 신선함이 기억난다. 서슬퍼런 MB때 그러니까 지금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건, 위로야. 쫄지 마! 떠들어도 돼, SSIBA. 그런 자세는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위로가 된다. 해보자. 쫄지 말자. 가능하다. (닥치고 정치) ‘쫄지 마’는 참 대단했다. 그런데, 2012년 대선 조작설, 황우석 줄기세포 교체설 등을 계기로 그의 예지력에 대해 갸우뚱해졌는데, 저자는 증명할 필요도, 책임질 필요도 없는 “카더라” 통신의 음모론을 가장 잘 활용하는 프로보커터로 김어준을 지목했다. 그것도 이른바 ‘우리’ 편을 향한 편향으로 ‘정치적 종족주의’를 부추긴다고 비판한다.

 

김내훈, ‘新 강준만’
‘반페미’, ‘아시아 혐오’, ‘백신 가짜 뉴스’ 등 SNS에서는 1초도 평화란 없다. ‘SNS의 문제는 타인의 가장 좋은 모습과 내 진짜 모습을 비교하게 만들고, 모든 걸 인기경쟁으로 전락시킨다.’(어디서 들었는지?)라는 말처럼 그것에 빠져있을수록 공허하고 조급해진다. 그래서 ‘모 아니면 도’식으로 선택을 강요받는데, 지식인들은 차분한 분석과 깊이 있는 성찰은 이럴 때 빛을 발한다. 언론학자 강준만은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특히 미디어) 속에서 지난 20여년 동안 성실한 읽기와 쓰기로 나와 같은 게으름뱅이의 좋은 길잡이가 되어주었으니 감사의 말을 뭐라 표현해도 부족하다. 이런 그가 이제 정년퇴임을 하였다니 섭섭하기도 하지만 조금 더 여유로운 글쓰기로 자신의 삶도 누리기를 바래본다. 김내훈 이라는 젊은 학자에게 강준만의 역할을 기대하려고 한다. SNS시대에 걸맞는 미디어비평 전문가를 만났다. 새로운 저자를 발견하는 기쁨은 실로 크다.
진중권과 김어준에 대한 내 생각의 변화를 추적하기 위해 10년 전에 썼던 글부터 찾아 다시 읽었다. 그 글이 없었더라면 나는 짐짓 모른 체 ‘대중이 열광할 때, 난 원래부터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좋아하진 않았다.’ 쯤으로 글을 썼을 것이다. 기억이란 원래 편향적이어서 유리한 대로만 남겨두기에 지나친 확신은 위험하다. 과거의 내 생각을 검증하고 지금의 전환을 스스로 납득하기 위해서라도 기록은 필수적이다. 글쓰기를 지속한 것이 다행이다.
2021년 4월 25일 이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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