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손 편지와 콩나물

짱구쌤 2016. 9. 17. 20:32

 

동진아, 쌤은 해장으로 회를 좋아해. 후회!”

 

손 편지와 콩나물

지난 일 년 동안 유심히 관찰한 결과, 짱구쌤께서는 손 편지와 콩나물을 좋아하셔서 이렇게 준비했습니다.”

손 편지는 그런다하고 콩나물은 뭐냐?”

급식 시간에 콩나물국 드실 때 내는 소리를 들었어요. 정말 맛있게 드시더라고요.”

니 오해야. 난 해장으로 콩나물국보다는 회를 좋아해. 후회!”

“....”

초등학교를 졸업한 동진이는 스승의 날이 한창 지난 어느 날, 검정 봉다리에 넣은 콩나물과 손 편지를 들고 교실로 찾아왔다. 깨알 같은 글씨로 반듯하게 쓴 손 편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사랑하는 이장규 선생님께

6학년을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했습니다. 다른 친구들을 만나는데 혹시 키가 작아 놀림을 받지 않을까, 말 한 번 잘못했다가 왕따 같은 것을 당하지 않을까 이런 저런 걱정을 많이 했는데 두 달 생활하니 완벽하게 적응했습니다. 선생님께서 가장 우려하시는 컴퓨터 사용시간! 이제 게임도 2주전까지는 1주일에 한 판 정도 했는데 이제는 안 해요. 그냥 끊었습니다. 가끔 선배들과의 좋은 관계를 위해 PC방 조금 다니지만 집에서는 게임 안하고 인터넷 강의를 꾸준히 들어볼 작정입니다. 그런데 요즘 제 공부를 방해하는 또 한 명의 친구가 있답니다. 그 이름은 배드민턴, 요즘 배드민턴에 푹 빠져서 수업 집중이 잘 안되고 쉬는 시간만 기다려요.(생략)

걱정병을 달고 사는 동진이는 똑똑하고 사려 깊지만 지나친 컴퓨터 사용과 애늙은이 같은 신중함 때문에 쉽게 정이 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난 일 년 간 우리는 관계를 훼손하지 않고 그런대로 잘 지냈다. 몇 가지 매듭을 잘 지어주지 못한 체 졸업을 시킨 것이 조금 마음에 걸렸었는데 검정 봉다리에 안심했다.

 

무상 AS기간 1

기말시험을 앞두고 동진이 소식이 궁금해서 동생인 동원이에게 물었다.

동원아! 동진이 형은 요즘 공부 열심히 하냐?”

아뇨. 나중에 수능 한방으로 끝낸다고 놀아요.”

아니 이 녀석이, 어디서 잘못된 정보를 듣고! 다음 주에 교실로 한 번 오라고 해라.”

졸업 후 1년은 무상 AS기간이다. 언제든지 찾아오거나 편지를 하면 맛있는 차와 함께 고민을 들어주기로 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작년 졸업한 아이들이 찾아온다. 매일 아침 마셨던 따뜻한 차가 그리워서 온 아이, 여드름과 불어난 몸 때문에 걱정이 많은 아이, 그냥 짱구쌤이 보고 싶은 아이, 이성 친구로 고민하는 아이 등 제각각 사연이 다르다. 난 그냥 준비한 차를 내놓고 한 시간 정도 들어주고 웃어준다. 수다를 마친 아이들은 한결 가벼워진 얼굴로 교실을 나선다. 1년 안에는 빈손으로 와도 되지만 그 뒤부터는 뭐라도 들고 오라고 했고, 20년 후에는 그간 마신 찻값으로 좋은 술 한 병 사오기로 약속(?)했다. 무작정 찾아가도 무조건 내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을 것이다.

야 이놈아, 수능 한방이라니? 어디서 찌라시를 보고

헤헤. 그러게요

별량초 교사 이장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