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58닥치고 정치-김어준

짱구쌤 2012. 12. 30. 23:01

 

 

 

쫄지마, 떠들어도 돼.

[ 닥치고 정치 / 김어준 / 푸른숲 ]


솔직히 [나는 꼼수다]는 조금 어수선했었다. 김어준은 익히 알고 있었으며 그의 [색다른 상담소] 라디오 프로그램은 간혹 들으면서 그의 솔직한 어법과 자유로운 사상에 익숙했으면서도 [나는 꼼수다]는 내 취향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난 뒤 다시 들은 [나꼼]은 이전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를 잘 이해하고 들으니 욕설도, 난잡함도, 소란스러움도 너그럽게(?) 봐줄만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진정성이었다.


책을 다 읽을 즈음 서울시장 선거 결과가 나왔다. ‘저렇게 사는 것이 가능할까?’ 했던 시민후보에게 가해지는 귀족 후보의 무차별적인 공격은 아무리 선거라지만 ‘눈뜨고 못 볼’ 가소로움이었는데 다행히 유권자들은 자발적인 표로 심판해주었다. 다행이다.


저자 김어준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으나 정작 아는 것은 별로 없다. 우리보다 조금 어리다는 것(외모는 형?), 젊었을 때 배낭 하나 들고 오랜 시간 세계를 떠돌아다녔다는 것, 연애문제에 대해서는 남다른 식견과 철학을 가진 전문가라는 점, 인터넷 신문 [딴지일보]의 ‘종신’ 총수라는 점 등이다. 정작 어디 출신인지, 어디 대학을 나왔고 무엇을 전공했는지는 잘 모른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도 궁금하지 않다. 그것이 그를 규정해주지는 않으니까. 그는 지금 몇 명의 ‘구라’들과 [나꼼] 신드롬을 만들어가고 있으며, 이 책은 매우 잘 팔리고 있다. 그리고 MBC라디오에서 진행하던 프로그램에서 하차 당했다. (그럴 것으로 짐작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건, 위로야. 쫄지 마! 떠들어도 돼, SSIBA. 그런 자세는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위로가 된다. 해보자. 쫄지 말자. 가능, 하다.


조국 교수 때문에 쓰게 되었고 문재인의 성공을 기원하며 내게 되었다는 책이다. 조국은 너무 바르고 고귀해서 자기 같은 난잡한 사람이 나서서 조금 헝클고 고춧가루 뿌리지 않으면 ‘샌님’ 타령만 하다가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단다. 더불어 문재인 같은 사람을 지도자로 가질 권리가 우리에게는 있다고 주장한다. 동의 여부를 떠나 얼마나 솔직하고 직설적인가? 속이 후련했다. 아니 속이 후련하기 이전에 깜짝 놀라기도 여러 번 했다. 거론되는 여러 사안들과 주요 정치인에 대한 정확한 식견과 혜안, 예리한 분석은 그가 그냥 ‘욕쟁이 구라’가 아니라 개념 있는 엔터테이너임을 증명한다. 가령, 안철수 바람이 일어나기도 훨씬 전에 인터뷰한 글에서 안철수와 박경철에 대해 묻는 인터뷰어에게 “안철수가 만약 정치에 거론되기 시작하고 그가 응한다면 상상할 수 없는 거대한 바람이 불 것이다.”라고 예언한다. 놀랍다. 그래서 그의 막말을 신뢰하기로 했다.


먼저, 보수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것도 이론과 추상으로가 아닌 실제로. MB 의 도곡동 땅, 다스, 김경준, 에리카 김으로 열거되는 [BBK] 진실을 통해. 사실 난 너무 복잡한 이름들과 어려운 경제 용어 때문에 심증만 있지 이해하려고 하지는 않은 사건인데 친절하게 처음과 끝을 설명해 준다. 그러면서 이 땅의 보수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의 돈에 대한 욕망과 부끄러움을 해부한다. 명쾌하고 통쾌하다.


다음은 재벌, 삼성과 이건희의 아들에 대한 전환사채 편법 증여(불법 재산 상속). 더 복잡한 에버랜드 신주인수권 사채(뭔말이여?), 지주회사 등 등 온갖 어려운 과정을 거쳐 완성한 사상 초유의 불법 상속에 대해 이야기한다. 글로벌 기업 삼성을, 추악한 기업인 이건희 일가와 떼어 놓을 때 비로소 삼성이 더욱 잘된다는 그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지난번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말한다]를 읽을 때의 분노가 다시 치밀어 오른다. 그러면서 삼성 불매운동 등의 불가능하거나 비현실적인 대안 말고 구체적인 삼성, 이건희 분리 전술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어느새 세뇌되어 있는 ‘이건희=삼성’ 공식이나 ‘삼성이 망하면 우리도 망한다’ 라는 허망에서 벗어나자고 선동한다.


가장 재미있었던 곳은 [진보의 현재와 미래] 진보 진영의 운동 방식을 ‘죄의식 마켓팅’이라 규정한다. 즉 나는 바르고 정의로운데 고생한다. 그러니 당신들도 동참하라는 요구. 진보의 내용을 보수적 방식으로 전하는 답답함. 서민의 애환을 전문 운동권 용어로 전하는 엘리트 주의를 꼬집으며 드는 비유는 아주 적절하다. ‘정치는 연애다’ 연애한 번 못해 봤으면서 꼭 결혼할 거라면서 혼자 다짐을 한다. 20년 후에.(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222-223쪽) 포교 말고 연애를 하자는 말씀.


본격적인 정치 평론은 유시민, 손학규, 노회찬, 이정희, 심상정, 정동영, 김문수, 박근혜를 거쳐 문재인에 이른다. 대부분 내가 느끼는 부분과 비슷하다. 그 문재인을 주목하는 이유는 이렇다. 노무현의 성공과 실패를 지켜본 원칙주의자, 잇속보다는 신념에 따라 움직이는 담백함과 단순함.

재미있다. 김어준의 속내를 보았다. 세상 무서울 것 없어 보이는 그가 감쳐둔 가녀린 순결과 눈물을 살짝 보았다. 하여 그의 [나꼼]을 다운받아 MP3에 넣었다. 당분간 김광석과 [나꼼]이 경쟁할 태세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2011. 10. 27. 이장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