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60오늘예보-차인표

짱구쌤 2012. 12. 30. 23:05

 

 

지금 필요한 것은 따뜻한 위로

[ 오늘 예보 / 차인표 / 해냄 ]


맞다. 그 차인표. 조각같이 잘 생긴 얼굴에 매번 기부천사로 언론을 장식하는 착한 탤런트. 그가 쓴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그가 연기를 잘하는지는 확실히 모르지만 착하고 매력적인 사람임에는 한 눈에도 알 수 있다. 그런 그가 소설까지 쓰다니. 이건 보통 불공평이 아니다. 언젠가 이른 일요일 아침,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인터뷰에서 언뜻 그의 소설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그저 흔한 연예인들의 통과의례격 '대필자서전'이나 인기에 묻어가는 ‘프로필 추가’글이겠거니 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조금은 맞았으나 대부분은 틀렸다. 사실 사서 읽을 생각까지는 없었다. 4년 전 영암 읍내 학교 6학년에서 같이 근무했던 후배 선생님이 다시 순천에서 만난 나에게 준 선물이다. 서툴렀지만 열정적이었던 그때의 그는, 예쁘고 착한 반려자를 찾아 가정을 꾸리고 잘 살고 있음은 물론이고 어느덧 믿음직한 중견교사가 되어있었다. 고마움과 미안함에 단숨에 읽은 책이다. 작가는 IMF이후 삶의 전장터로 내몰린 이 땅의 약자들에게 위로를 주고 싶어 이 책을 썼다고 했다. 한강 자전거도로를 기분 좋게 달리다가 본 실직 가장, 강물을 눈물 젖은 눈으로 멀리 바라보는 그 사람들에게 말 한마디, 어깨에 손 한번 올리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쓴 글이란다. 참 가슴 따뜻한 동기이며 시작이다.


운명을 예보하는 방송에서 세 사람의 죽음을 알린다. 나고단, 이보출, 박대수. 행운하고는 좀처럼 인연이 없어 보이는 이들에게 내려진 운명의 종말을 바꿀 수 있을까? 작은 키의 콤플렉스를 만회하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산 ‘나고단’은 거듭되는 불운(어렵게 모아 개업한 미국 쇠고기 집 개업 날, 마침 시작한 광우병촛불집회로 폐업)으로 노숙자로 전락한다. 밥 퍼주는 자원봉사자 옛 애인의 외면까지 받은 그가 선택한 길은 자살, 한강다리를 지키는 공익요원의 방해로 자살마저 쉽지 않다.

보조연기자, 일명 엑스트라로 불리는 이보출은 일확천금을 꿈꾸며 투자한 돈이 몽땅 깡통으로 변해 초등학생 아들과도 떨어져 살아야 한다. 돈을 끌어 모아 갚지 못해 도망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고향선배 박대수에게 쫒기는 신세. 박대수는 조폭생활 끝에 얻은 늦둥이 딸 때문에 어렵게 조직생활을 정리하고 ‘김밥천국’을 개업하고자 한 순간에 이보출에게 속아 돈을 날린다. 설상가상 귀염둥이 딸의 골수암 진단으로 골수이식이 너무도 급하다.


누구 하나 만만하지 않은 사연이 없어 보이는 이들이 어떻게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를 예사롭지 않은 필치로 펼쳐 보인다. 속도감 있게 넘어가는 이야기 전개는 작가의 재담 덕분이다.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이다. 인생의 막장으로 달려가는 이들이 운명처럼 만나 얽힌 실타래가 풀리듯 [오늘예보]를 보기 좋게 오보로 만들어 버리는 마지막은 읽는 이에게 약간의 안도감을 준다. 약간의. 이제 아쉬움을 이야기할 차례다. 흔히 장편소설의 성패를 얼개의 충실성에서 따지기도 한다. 한마디로 이야기의 치밀함과 성실함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얼핏 이 소설은 그 성취를 이룬듯하다. 다른 삶을 산 세 사람이 마지막에 서로 얽히며 갈등구조를 일거에 해결해 버리는 것이 그것인데 문제는 작위적이라는데 있다. 마치 막장 드라마에서 운명적 애인이 배다른 남매였다는 설정처럼 나고단은 운명처럼 자살의 위기를 넘기고 찾아간 병원에서 희귀 골수이식자로 선정된 후 작가로, 자원봉사자로 이름을 날린다는 결말이나. 이보출이 엑스트라로 성공하여 그 직종의 정상에 올라 자신을 쫒아 다닌 박대수의 딸을 며느리로 맞는다는 설정은 자연스럽지 않다. 조급함이랄까? 내가 보기에는 작가가 너무 착하기 때문이다. 아니 ‘착함 강박증’ 때문일지도 모른다. 더디더라도 조금 더 진지하고 사실적으로 결말로 갔어어야 했다. 하지만 저자의 진지함과 성실함은 조만간 그의 한계(순전히 내 기준으로)를 훌쩍 넘을 것이다. 그가 보내는 위로가 많은 이들에게 유효했으면 좋겠다. 내가 작가에게 보내는 것도 바로 그 위로이다. 위로에 관해 내가 알고 있는 시가 한 편 있다. 곽재구 시인이 추천한 백무산의 이 시는 읽을 때마다 나를 돌아보게 한다.


동해남부선 / 백무산


바닷가가 보이는 작은 역에 기차는 서서

이제 막 다다른 봄볕을 부려놓고

동해남부선은 남으로 길게 떠나는데


방금 내 생각을 스친, 지난날의 한 아이가

정말 바로 그 아이가, 거짓말처럼 차에서 내려

내 차창 옆을 지나가고 있네

아이를 둘씩이나 걸리고 한 아이는 업고

양손에 무거운 짐을 들고


내가 예전에 이곳 바닷가에서 일하던 때

소나기에 갇힌 대합실에서 오도가도 못하던 내게

우산을 씌워주고 빌려주던 아이

작은 키에 얼굴은 명랑한데

손은 터무니없이 크고 거칠었던 아이

열일곱이랬고 삼양라면에 일 다녔댔지

우산을 돌려주러 갔던 자취방 앞에서

빵봉지를 들려주다 잡고 놓지 못했던 손


누가 저 아이 짐 좀 들어주오

기차는 떠나는데

봄볕이 그 아이 이마에 송글송글 맺히는데

누가 제발 저 아이 짐 좀 들어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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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같으니라고. 왜 서둘러 기차에서 내리지 않았는지. 잠시 내릴 역을 잊었던 것처럼, 헛기침 두어번 하고 버스 정류장까지 짐을 들어준 뒤, 다음 기차를 기다려도 여전히 한 생인 것을…. 추억과 연민이 함께 봄 햇살을 받는 핍진한 생의 아름다움이여.

-곽재구

2011. 10. 31. 이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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