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55하늘을 달리는 아이-제리

짱구쌤 2012. 12. 30. 22:55

 

 

매니악 매기, 바리데기, 완득이

[ 하늘을 달리는 아이 / 제리 스피넬리 / 다른 ]

모니터 끄기, 아이들과 아침에 책 읽는 시간에 지켜야 할 약속인데 번번이 어긴다. 메일, 카페, 공문 확인.. 나중에 해도 될 일들이다. 그 시간에 책을 읽다가 졸리면(아침부터? 꼭 책을 읽으면 한 두 번의 고비가 온다) 일어나서 찻잔을 씻고, 물을 데우며 끓여진 차를 한잔씩 배달한다. 그리고 살짝 아이들이 읽고 있는 책을 엿본다. 그럴 때 하나씩 월척이 걸린다. 이 책도 그런 책이다.

 

우리의 주인공 매니악 매기는 열차로 부모님을 잃은 고아다. 원래 이름은 제프리 매기인데 매니악은 원래 거칠게 행동하는 사람이나, 열광적인 사람을 뜻하는 말이지만 이책에서는 무엇이든지 다 해낼 만큼 폭발적인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다. 중학교때 배운 최초의 컴퓨터 애니악이 자꾸 떠올랐다. 이 책은 그전에 읽었던 [호밀밭의 파수꾼], [완득이]와 같은 성장 소설이다. 매니악은 숙모 집에서 자라다 집을 나와 세상을 떠돌아 달린다. 그가 찾아간 곳은 해가 떠오르기 전까지는 분할도 경계도 없지만 아침 자명종이 울리면 백인과 흑인이 나눠서 사는 투밀즈. 백인이 사는 웨스턴앤드와 흑인이 사는 이스턴앤드는 서로를 경계하며 증오하는 도시이다. 그곳에서 매니악은 매일 달리고 또 달린다. 잠은 동물원 사슴, 물소 우리에서 잔다. 고아에 굶주림, 사회적 무관심과 질시, 조건은 최악이다. 거기에더 백인인 그가 흑인 밀집지역인 이스턴앤드에 들어간다.

 

장애인 아버지에 베트남 어머니, 달동네 싸움쟁이 [완득이] 보다 열악하다. 우리의 완득이에게 욕쟁이 똥주쌤과 격투기가 따뜻한 동반자로 가벼운 스텐스를 제공했듯 매니악에게는 지칠 줄 모르는 ‘달리기’가 있다. 흑인 지역에서 만난 아만다와 그의 가족들, “흰둥이”를 증오하는 초코바에게 아무 편견도 없는 매니악은 이상한 아이다. 두려움과 편견 없이 세상과 만나는 그를 보며 조금씩 마음이 열리고 매니악은 아만다 가족과 첫 가정을 이룬다. 하지만 세상일이 그리 쉬운가? 여전한 경계와 뿌리 깊은 불신은 행복했던 매니악을 다시 웨스턴앤드로 내몰고 다시금 물소 우리에서의 야생생활을 한다. 여기에서 만나는 야구장 청소부 할아버지 그레이슨은 매우 중요하다. 야구 선수가 꿈이었던 그레이슨은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다 35년 전 패배자로 야구를 그만 둔 이래 늘 야구장 주변에서 배회하며 살아온 나지막한 인생이다. 굶어 죽어가는 매니악을 발견하고 정성껏 돌봐주는 과정에서 정작 그 자신이 위로받고 치료받는다. 그레이슨에게는 성공하지 못한 야구 인생이었지만 삶마저도 실패자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매니악은 세상 둘도 없는 지원자이자 동지인 그레이슨을 통해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삶을 지켜봐주고 지지하는 그 누군가가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삶인가?

 

매니악의 목표는 이 흑백 갈등의 도시 투밀즈에서 그들을 화해시키는 것이다. 아니 화해가 아니라 온전히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흑인 초코바를 백인 존맥 집에 초대해서 벌어지는 소동, 가출한 백인 존의 두 동생들이 일촉측발의 위기에서 초코백에게 구원을 요청하며 목숨을 건진 사건은 이 책의 클라이막스다. 전지전능한(?) 매니악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토록 증오했던 ‘검둥이’가 ‘흰둥이’의 손을 잡게 한 결말은 인상적이다.

 

[바리데기]는 황석영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이다. 탈북 여성인 그녀가 험악한 삶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가정과 인생을 찾아가는 모습은 수많은 완득이이자 매니악이다. 삶을 정면에서 응시하면서 따뜻한 시선을 거두지 않은 주인공들은 신비롭고 오지다. 이 책은 흑인과 백인의 편견과 갈등을 훌쩍 뛰어 넘고도 한 가지 흠이 있다. 인디언을 묘사하는 방식이다. ‘백인을 공격할 때의 잔인함’이나 ‘전쟁을 즐긴’다는 표현은 작가의 그릇된 의식의 반영일 것이다. 단 두 줄의 묘사로 나는 저자의 다른 작품을 보지 않기로 하였다. 편견을 없애려는 작가의 노력은 그 자신의 재능에 재를 뿌렸다. 강을 무사히 건넜으나 옷을 적신 격이다. 어찌 이 작가만 그러하겠는가? 그래도 좋은 성장 소설 한 편을 얻었으니..

2011. 10. 12. 이장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