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원고] 흑두루미, 무지개 속으로 날다

짱구쌤 2013. 4. 6. 23:02

[우리아이들] 4월호에 실린 우리 학교 원고입니다.

 

흑두루미, 무지개 속으로 날다

순천인안초등학교 이장규

순천만에 위치한 ‘작은’ 학교는 작년까지 23명 폐교 위기에 몰렸다가 지금은 103명의 ‘큰’학교가 되었다. 일 년간 학교의 문화가 바뀌는 장면 11개를 찾아보았다.

 

#1. 3월 어느 날 오전 11시, 논 화분에 집어넣을 밭 흙에 거름을 섞고 텃밭을 갈아엎는다. 교장, 교감, 행정실장, 주무관이 함께 삽을 들고 두 시간째 땀을 흘린다. 다음 날 아이들은 잘 섞인 밭 흙을 화분에 담으며 일 년 농사를 준비한다.

 

#2. 6월 전교생이 순천만 논에 나가 모내기를 한다. 교장샘과 행정실장은 못줄을 잡고 아이들은 선생님들과 함께 서툰 모를 심는다. “아줌마들 보다 훨씬 잘 심는다”는 영농단장님의 칭찬 속에 모내기를 마치고 교감샘의 샤워 호스를 통과해야 식사가 시작된다. 학부모회에서 준비한 잔치 국수를 나눠 먹으며 그날 일거리를 재잘거린다.

 

#3. 처음 열리는 1박2일 가족캠프를 위해 교직원과 학부모가 공동준비위원회를 만든 후 두 번째 회의가 교장실에서 열렸다. 준비한 김밥을 먹으며 역할을 나누고 캠프의 이것 저것을 점검했다. 레크레이션을 하겠다는 학부모가 있었고 분위기 조성을 위해 사전에 알뜰바자회와 얼굴페인팅을 한다고 결정했다. 모두 학부모회에서 맡기로 한 것이다.

 

#4. 지난달에 심은 우리 논의 벼들은 그새 훌쩍 자라 초록의 물결이다. 논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붉은색 구슬 모양의 무더기가 있는데 그것이 지난 번 과학샘한테 배운 논우렁이 알들이다. 학교에는 걸어서 가기로 했다. 갑자기 비가 왔다. 발걸음은 바빠지고 앞서가는 1학년 동생은 우산을 가져오지 않았나보다. 모둠장 6학년 용기는 동생 옆으로 달려가 우산을 받쳐준다. 빗소리를 들으며 걸어서 가는 학교가 벌써 저 앞이다. 도착해서 먹은 기정떡은 참 맛있었다.

 

#5. 6월 다모임에서는 먼저 한 달간의 인안신문고 접수 현황이 발표되었다. 전교학생회장단이 정리한 쪽지는 칭찬글 45편, 비판글 51편, 건의글 23편, 장난글 4편 등 모두 123편이다. 많이 지적된 친구들은 고개를 숙이고 가장 많은 칭찬을 받은 6명은 수첩을 선물로 받았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자유롭게 나와서 한 달간의 생활을 이야기했고 통학차에서 욕설이 많아 동생들이 무엇을 배우겠냐는 4학년의 발표에는 모두 맞다며 맞장구를 쳤다. 통학차에서의 예절, 축구공의 정리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마쳤다.

 

#6. 모처럼 학교를 벗어나 봉화산 팔마비 옆 정자에서 7월 교직원 다모임을 했다. 급식실에서는 잔반 처리를 위해서는 담임샘들의 지도가 필요하다고 했고, 행정실에서는 공사장에 아이들 접근을 막아달라고 요청했다. 교사들은 교감샘이 지금 잘하고 계시지만 좀 더 적극적으로 행정업무를 처리해 달라고 주문했다. 행정사들은 부족하지만 과감하게 업무를 맡기고 가르쳐 달라고 했다. 시원한 정자에서 도란 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맛있는 오리를 먹었다.

 

#7. 지난 이주일 전에 전 교원에게 나눠준 [배움의 공동체] 책자를 토론하는 날이다. 총 9장의 내용을 모두 1장씩 맡아 발제하고 종합토론을 하기로 했다. A4 반쪽 분량의 요약문을 교장샘은 두 쪽이나 제출했고 4학년샘은 형광색 펜으로 읽은 책을 봐가며 토론에 참여했다. 전체적으로 다 동의할 수는 없으나 학생의 배움을 중심으로 수업을 들여다보는 관점에는 수긍을 했다. 다음에는 직접 저자인 손우정 교수의 강의를 함께 듣고 수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8. 내일은 격주 금요일마다 있는 [흑두루미 논가꾸기 프로젝트]가 있는 날이어서 교원들과 행정실 직원들이 모였다. 지난주에 모둠별로 만든 허수아비를 트럭에 실어 현장에 옮기는 것은 행정실에서 담당해 주기로 했고, 아이들이 타고 갈 순천만 2층 버스는 과학샘이 다시 한 번 확인하기로 했다. 학급별로 벼를 위로할 공연을 다시 한 번 점검하고 체육샘이 물장화와 해머를 챙기기로 했다. 당일 해설을 맡아줄 생태해설사분들과는 다음주에 식사하며 평가하기로 했다.

 

#9. 이번 4학년 수업공개는 모든 선생님께 담당 모둠을 정하고 시작했다. 협력적 배움을 주제로 진행한 사회 수업이 끝나고 교사들은 각자 관찰한 모둠과 아이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이야기했다. “00는 자기 의견을 모둠에 말하고 싶어 했는데 **이 너무 자기 위주로 정리를 해서 참여가 소극적이다” 그래도 교장샘은 너무 간단한 수업안, 교수법 보다는 아동의 배움을 중심으로 한 협의 관점 등 수업협의회의 방식이 너무 낯설다. “지금은 우리 학교와 자기 교실에 맞는 수업 방식을 찾아가는 과정이므로 특정한 방식에 치우치지 말고 다양하게 시도하고 논의하자” 오늘의 결론이다.

 

#10. 2013교육계획 수립을 위한 3차 협의회. 교육목표를 조정하는 날이다. [문∙무∙예를 갖춘 글로벌 인재육성]은 2012년 교육목표다. [소통하고 협력하는 행복한 작은 학교]는 우리 학교의 슬로건이다. 두 구호 사이의 간극을 조정하는 일이 오늘의 과제다. 교장샘의 교육철학과 교사들의 지향이 찾아낸 합의점은 [문∙무∙예를 고루 갖춘 행복한 사람]이다.

 

#11. 작년에 응모한 [환경교육] 프로그램이 당선되어 교보생명으로부터 3천만을 지원받기로 결정되었다. 단, 우리가 요구한 에너지 자립을 위한 시설 지원이 아닌 프로그램 실천으로 기조를 바꾸어 달라는 조건이 달렸다. 우리는 협의를 통해 지원금을 타기 위해 교육과정에 무리를 주는 프로그램 운영은 불가하다고 결론을 내고 지원을 받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우리는 지원 없이도 할 수 있는 일을 통해 환경교육을 하자고 결정했다. 1회용컵을 없애는 대신 이중스텐컵 구입, 청소업체의 수거 대신 종량제 봉투 사용으로 쓰레기 줄이기, 빗물 취수, 전기 사용량 게시판 설치 등이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