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시대를 가로지르는 생각
[ 지금 동아시아를 읽는다 / 한승동 / 마음산책 ]
쿠데타(인조반정)로 광해군을 몰아낼 때 서인 세력이 씌운 죄목 중 하나는 외교정책에 관한 것이었는데 “명나라의 은혜를 망각하고 오랑캐(청)와 화친하려” 했다고 적시하였다. 당시 존망의 위기에 있던 명과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청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로 민족의 이익을 지키려던 시도를 좌절시킨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득세한 [존명반청]세력은 4년 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맞고 급기야는 인조가 삼전도에서 삼궤구고두(세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머리를 조아리는)의 치욕을 당한다. 백성들이 당한 고통은 말해 뭐하랴. 외교는 이렇듯 주변국의 정세와 우리의 힘을 잘 가늠하며 줄타기하듯 해야 하는 법. 저자는 보수정권이 들어 선 지금 우리와 동아시아를 차분히 조망하자고 한다.
저자는 한겨레신문 기자이다. 도쿄 특파원을 지낸 이력 때문인지 일본 관련 기사나 번역 글로 지면에서 만났다. 국제부, 문화부, 과학, 생태, 도서 등 느닷없는 부문에서 글을 써대곤 하는데 그야말로 종횡무진이며 예측불허다. 이른바 통섭이다. 최장수 문화부 장관으로 퇴임한 분이 막 취임했을 때 한국예술종합학교의 황지우 총장을 몰아내려고 내세운 근거가 “왜 통섭을 하느냐?”였는데 미술과 음악, 철학과 음악, 문학과 미술이 마구 섞이며 만들어 내는 오늘날의 신기술과 문명을 양촌리 김회장네 둘째 아들 용식(유인촌)이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려웠나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리영희와 루쉰을 논하더니 한중일 삼국의 역사를 집약한다. 우리 정치의 이념 공격을 개탄하고 4대강과 제주 해군기지를 비판한다. 봉준호의 영화와 아바타까지 그의 관심은 끝이 없고 지면은 쉬이 넘어가지 않는다. 휴우..
가장 가슴에 와 닿은 것은 언론의 역할에 대한 것이다. 인구가 3만5천인 미국의 작은 도시 벨에서 주요 공무원들의 연봉이 연방 정부 대통령이나 경찰서장보다 두 배 이상 많이 받은 일이 뉴스가 된 적이 있다. 결국 그로 인해 벨은 파산 직전까지 가는데 이 사건의 원인으로 이들을 감시할 언론이 그 도시에 부재했다는 것이었다. 작은 도시 마다 있었던 지방 신문들이 하나씩 문을 닫는 일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닌가 보다. 언론이 잘 감시했다면 IMF도 4대강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우리는 지난 대선에서 종편이 이뤄 놓은 쾌거(?)를 통해 잘 알고 있지 않는가?
“남북 연합-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2000년 6.15선언을 통해 남북이 합의한 통일방안이다. 그해 울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에 가고 조명록 차수가 워싱턴을 방문하였다. 우리가 주도권을 쥐고 주변국이 움직였고 그것은 대세였다. 하지만 그해 미 대선에서 엘고어가 투개표 논란 끝에 공화당의 부시에게 정권을 넘겨준 뒤 ABC(Anything but clinton)정책으로 그간의 모든 정책이 취소되고 급기야 ‘불량국가’ 북은 2013년 3차 핵실험에 성공하며 벼랑 끝 외교를 구사하고 있다. 한반도가 다시 전운에 싸인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단 한차례의 진지한 대화도 없이 냉전 상태로 되돌아간 MB 5년 동안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남북 경협도, 금강산, 백두산 방문도, 경의선을 통한 유라시아 진출도, 휴전체제를 대처할 평화협정 체결도, 국제사회와의 공조로 진행될 개방화도, 북의 식량난도, 이산가족 상봉도 모두 후퇴했다.
일본은 평화헌법을 고쳐 재무장하고하고, 중국은 일본을 빌미로 군사대국화를 부추긴다. 북은 핵보유국이 되었고, 미국은 여전히 패권국이다. 우리의 운명을 남의 손에 맡겨두었던 100년 전 격변기와 흡사한 요즘, 동아시아를 알고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
2013년 3월 2일 이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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