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118남김없이 피고지고-박노해

짱구쌤 2013. 2. 27. 23:52

 

오늘 나는 그대를 만나 어떤 노래를 부르는가

[ 구름이 머무는 마을 / 박노해 / 라 카페 갤러리 ]

 

노동의 새벽을 노래했던 시인 박노해를 사진으로 다시 만났다. 그가 흑백 사진기를 들고 지구의 여백을 찾아다닌다는 말을 들은 적은 있었지만 너무 오래 잊고 있었던 그를 다시 만나니 반갑다. 80년 얼굴 없는 노동자 시인에서 사노맹의 전사로 그리고 본명 ‘박기평’ 함평 촌놈으로 세상에 알려지기까지 전사 김남주와 함께 그의 시 세례 한 자락 받지 않은 피끓는 청춘들은 아마 없었으리라. 난 그때에도 그놈의 ‘진영’과 ‘생각’의 차이로 애써 그의 글과 시를 외면하였으나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 새벽 쓰린 가슴 위로 /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로 시작하는 ‘노동의 새벽’은 나 같은 인텔리겐차들는 절대 오르지 못할 거라는 경외심을 갖게 한 절창이었다. 그에게 그런 말도 안 되는 빚을 지고 살았다.

 

구름이 머무는 마을 (파키스탄)

서울 부암동의 ‘라’ 카페 갤러리에서 열렸던 사진 전시회를 가보지는 못했다. 대신 그곳에서 세례를 받은 분-늘 내게 ‘여백’을 일깨워 주는-이 건네준 세 권의 도록(사진책이라 불리워도 손색없는)을 읽는 것으로 직접 가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었다. ‘탈레반’과 미군 무인폭격기로 공포스러운 땅이 되어버린 그곳 파키스탄은 만년설을 가장 많이 끼고 있는 아름다움과 오래된 인간의 따스함을 모두 간직하고 있는 숨겨논 땅이다. 대나무 멍석을 파는 열세살 소녀 마 모우는 자신의 영혼이 깃든 생산물에 당당하며, 4500 고지 만년설이 바라다 보이는 오두막 집의 노부부는 삶이 늘 감사하다. 햇살 좋은 날 고원의 학교는 [아름다운 배움]이 물처럼 흐르고 고된 노동 속에서도 ‘잉여인간’이 아니기에 힘차다.

얼마 전 아들들과 함께 본 다큐 [중앙 아시아]의 양치기가 다시 떠오른다.

치즈는 쌓여있고 양들은 건강해요.

우린 다시 양을 치러 떠나야 해요

우린 평생 양을 쳤고

나쁜 짓하지 않고 즐기면서 살았죠

후회없죠.

 

 

짜이가 끓는 시간 -박노해

하루에 가장 즐거운 시간은

짜이가 끓는 시간.

양가죽으로 만든 전통 풀무 마시키자로

불씨를 살리고

갓 짜낸 신선한 양젖에

홍차잎을 넣고 끓인다.

발갛게 달아오른 화롯가로

가족들이 모여들고

짜이 향과 함께 이야기꽃이 피어난다.

탐욕의 그릇이 작아지면 삶의 그릇은 커지고

우리 인생은 ‘이만하면 넉넉하다’.

 

어쩌면 이리도 같을까? 욕심 없이 ‘이만하면 되었다고’ 코카서스 양치기와 파키스탄의 그가 말이다.

 

 

노래하는 호수 (버마)

 

 

노래하는 다리  -박노해

인레 호수 마을과 고산족 마을을 이어주는  

이 나무 다리는 ‘천 년의 다리’라 불린다. 

매년 우기 때마다 다리가 휩쓸려 나가지만

장마가 끝나면 여러 소수민족들이 함께 모여

다리를 세우고 음식을 나누며 잔치를 벌인다. 

해마다 새로 짓는 이 나무 다리를 따라 

우애의 역사도 천 년의 두께로 깊어진다. 

오늘도 이 다리 위를 오가는

다양한 민족의 발걸음은

마치 오선지 위에 어우러진 음표들처럼

가슴 시린 평화의 노래를 연주하고 있다. 

오늘 나는 그대를 만나 어떤 노래를 부르는가. 

우리 사랑의 유랑 길에서 무슨 노래를 부르는가.

 

미얀마라 불리는 그 나라는 사실 버마다. 자판으로 버마를 치면 얼른 미얀마로 바꾼다. 젠장. 세계 최장기 군부독재의 땅답게 국호마저 미얀마로 바꿔버렸는데 컴퓨터가 알아서 기고 있으니. 쯧쯧. 가끔 ‘아웅산 수치’나 ‘아웅산 폭발사건’으로만 기억되는 그곳에서 시인은 미얀마의 심장이라는 ‘인레’ 호수를 집중해서 찍는다. 해발 850미터에 위치한 인레는 자연에 순응하며 함께 공존하는 순박한 사람들의 일상이 느리게 수천 년을 이어가고 있다. 허술한 나무 다리를 건너는 고된 노동의 정직한 사람들을 ‘오선지 위의 음표’라 쓸 수 있는 시인은 삼십년 전 노동의 새벽을 쓰던 ‘차거운 소줏잔’을 잊지 않으면서도 훌쩍 넘어섰 다. 시인은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 고 했다. 후일담이나 쓰면서 과거로 연명하는 뭇사람들과는 달리 변방의 건강함을 잃지 않는다. 그리하여 시인은 되뇌인다. 충만한 삶이란, 축적이 아닌 소멸에서 오는 것이 아니던가/우리 삶의 목적은 선물 받은 하루하루를 남김없이 불살라/빛과 사랑으로 생의 도약을 이루는 것이 아니던가

 

남김없이 피고지고 (티벳)

신들의 고향이라는 티벳은 중국에 자치를 요구하며 독립투쟁을 벌이는 곳이다. 영혼, 안식처, 영성의 덧칠을 벗기면 티벳의 속살과 마주할 수 있다. 중국의 내부식민지인 티벳인들의 독립에 대한 건강함과 자존심이 사진에서 읽힌다.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말과 여인 사진이다.

 

 

 

 

주인을 위로하는 말 다리 사이로 흐르는 장강이 아름답다.

 

사랑하다 죽는 것은 두려운 일이지요

사랑 없이 사는 것은 더 두려운 일이지요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지요

시인은 사랑을 찾아 지금도 지구의 변방을 걷는다. 그의 나눔과 사랑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는 것이 시인과, 그를 알게 해준 ‘여백’의 그에 대한 예의다 싶다. 인터넷 [나눔문화]를 살펴봐야겠다. 오늘 나는 그대를 만나 어떤 노래를 부르는가. 

2013년 2월 27일 이장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