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101조국은 하나다-김남주

짱구쌤 2012. 12. 31. 17:18

 

[조국은 하나다 / 김남주 / 남풍]

이틀째 부는 바람으로 섬에 들어가지 못하고 답답하고 불편한 마음 가득. 책꽂이에 오래된 책 하나 눈에 띄고 “그래, 해남에나 다녀오자.” [지리산의 봄-고정희], [조국은 하나다-김남주], [신발의 행자-김경윤] 세 권 모두 해남이 고향인 시인들의 작품. 한 5-6년 전 해남 삼산의 김남주 시인 생가와 고정희 시인 생가를 찾고, 그 후에 늘 가고 싶었다. 가을 고정희 생가 서재 남정헌(南靜軒)에서 황금 들녘을 볼 때의 편안함이 그리웠다.

 

화요일 오후, 생가에는 아무도 없었다. 김남주 기념사업회장을 맡고 있는 김경윤 선생님의 노력으로 생가가 다시 정비되었다는 말을 듣고 어찌나 기쁘던지(첫 방문 때 생가에서의 느낌은 ‘홀대’였다) 아니나 다를까 곳곳에 밴 세심한 손길이 김시인의 생가다웠다. 마당에는 복원한 생가 초가지붕에 쓰일 짚더미가 쌓였고, 시인의 대표작인 [조국은 하나다], [노래], [사랑] 시비와 방문객이 남긴 황토작품, 감방 체험실(독방)이 아기자기하게 있었다. 시 한 편 한 편 천천히 읽으며 독방에 앉아 답답함도 느끼며 시인의 노래도 흥얼거리며..

 

고정희의 생가는 김남주의 생가와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다. 그 마을에 들어서며 저기 노란 은행나무 집 아닐까 했는데 놀랍게도 진짜 그랬다. 역시 아무도 없는 그곳은 5년 전과 똑같이(현대식 화장실이 생긴 것 말고는) 그대로이다. 반갑다. 따르륵 마루문을 열고, 지금 내 나이(마흔 셋)에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뜬 시인의 전 생애를 보여주는 서재를 둘러본다. 손때 묻은 책, 듣던 오디오와 음반, 메모와 원고, 사진들.. 민족, 민중, 기독교적 사랑, 페미니즘, 자연주의... 그녀를 설명하는 무수한 언어들을 생각하며 책상 의자에 앉는다. 3일전 마지막으로 쓰인 방명록에 다음과 같이 썼다.

부는 바람에 섬에 들어가지 못했다.

김남주 시인의 생가에 들러

저기 은행나무집이 아닐까

하고 찾아온 생가. 맞다.

줏대도 없고 여유도 없이

시인이 세상을 뜬 나이 마흔셋이 된 나

그이들은 어찌 그리도 당당한지

바람 멎으면 섬에 들어가야 한다.

-2010년 11월 9일 암태도에서 이장규-

 

집에 돌아와 그 오래된 시집을 펼쳤다. 23년 전 구입한 누렇게 바랜 책 속에는 찻집 [모데라토]의 메모지 두 장이 있었다. 음악 DJ에게 노래 신청하던 메모지. 반갑다. 아직도 팔팔 뛰는 詩語들이 내 가슴을 파고든다.

전사 김남주를 기억한다. 10년 옥살이 끝에 바깥에 나온 시인을 처음 보았다. 무수히 외웠던 그의 시를 직접 시인에게 들었다. 1889년(아마) 12월 31일 광주 YMCA 무진관, 1월 1일을 앞드고 해마다 이날 벌어지는 광주시민들의 무등산 오르기 행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독재에 항거하고 새날을 염원하는 시민들의 뜨거운 염원이 모여지고 있었다. 그때 시인이 나타났다. 석방되자 바로 광주를 찾고 싶어 왔다고 했다. 와서 그 시 [학살3]. 전율이었다. 시는 무릇 곱상하게 읽어야 한다는 편견을 깨부수는 파격, 울부짖고 포효하는 시인의 절창에 무진관의 시민들 모두는 한마음 한 몸으로 숨 죽였다. 난 그때 그런 생각을 했다. “저러다 쓰러지시면 안되는데..” 학살의 원흉이 지금 권자에 앉아 있다/... 당신은 묻겠는가 이것이 사실이냐고...

 

시인은 그 후 채 5년을 살지 못하고 세상을 뜬다. 옥중에서 얻은 췌장암 때문이었다. [시와 혁명],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사상의 거쳐], [저 창살에도 햇살이] 책장이 닳도록 시인의 시를 읽을 때가 있었다. 세상은 달라졌을까? 너무 오랜만에 지어든 시인의 시집, 이틀간의 바람이 내게 준 선물이자 잠들어 가던 나를 각성시킨 죽비였다.

2010년 11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