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100책만 보는 바보-안소영

짱구쌤 2012. 12. 31. 17:15

 

[책만보는 바보 / 안소영 / 보림 ]

‘일주일에 한 권 이상 읽고 반드시 독후감을 쓴다.’ 지난 여름방학 때 스스로에게 한 다짐이었으니 석 달이 다 되어간다. 이 책도 그렇게 읽고 쓴 글이다.

책만 읽는 바보-간서치(看書痴)라.. 조선 정조 때 실학자 이덕무가 쓴 자서전을 바탕으로 그의 친구이자 스승인 박제가, 박지원, 유득공, 홍대용, 이서구, 백동수에 대한 이야기다. 백탑파라 불리는 그들은 모두 원각사지10층석탑(지금의 탑골공원) 주위에 살며 학문과 세상을 논하던 실학자들이다. 지은이 이덕무를 비롯해 대부분이 서자 출신인 관계로 시대와의 불화를 겪고 실의에 빠졌던 터에 좋은 스승과 벗들을 만나(특히 좋은 책) 시대를 열어나가는 개척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재미나게 그렸다.

지은이 안소영은 세계적인 수학자이었지만 분단의 현실에 막혀 옥고를 치르고 지금도 고초를 겪고 있는 통일운동가 안재구 교수의 따님이라고 한다. 아들 역시 학생운동과 통일 운동으로 고난을 겪은 것을 들은 바 있어 책 중에 나오는 여러 인물들의 고난과 좌절이 쉬이 넘겨지지가 않았다.

 

세상에서 날 알아주는 이 없으니 하루 종일 방안에서 햇살을 좇아 책과 씨름하는 이덕무와 그의 벗들은 세상에 욕하며, 절망하며, 회피하며 젊은 나날을 기대며 보낸다. 하지만 그들에게 있어 결코 부족하지 않았던 것은 미래에 대한 믿음과 자기존재에 대한 확신이었다. 이들에게도 세상으로 걸어갈 길이 열리니 훗날 개혁군주이자 성군인 정조의 부름을 받게 된 것이 그것이다. 비록 규장각의 말딴 검서원으로 입궐하였지만 처지의 여하를 따지지 않고 십수년 동안 성군을 보필하며 가난한 백성의 삶을 개선시키려 노력한 이들이었기에 저자는 이들을 일러 “책만 보는 바보로만 머무르지 않고 실천하려는 지식인의 전형” 이라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야기는 참 흥미롭다. 특별한 사건이나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인물들의 특성이 워낙 강한데다 지은이의 문체가 참 깔끔하고 자연스럽다. 반항적이며 직설적이지만 늘 백성들의 삶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박제가(훗날 ‘북학의’를 저술한다), 몸은 비록 작은 조선의 변방에 살지만 늘 세상의 중심은 자신이라 믿으며 천체를 연구하는 홍대용, 이들과 달리 명문가의 자손이면서도 사람을 신분의 처지로 대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배우려 하는 박지원(그의 호 연암(燕巖)은 봄을 찾는 제비처럼 자유롭게 살지만 심지는 바위처럼 우뚝하리라는 큰 뜻을 품고 있다), 조선무예의 기념비적인 저작, [무예도보통지]를 만든 기린협의 백동석, 발해와 고구려의 역사를 밝혀 저술한 [발해고]의 유득공까지 하나같이 선입견을 물리치고 시대의 변화에 앞장섰던 지식인들이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부러웠던 것은 그가 벗들과 나눈 우정이다.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아서 더 많은 것을 나누었던, 눈빛만 봐도 서로를 알았던 그들의 수준 높은 고귀한 우정이 참 부럽다. 이덕무는 40여년을 看書痔로 지내다 10년 조금 넘는 시간을 관리로 실천가로 살다가 52세에 생을 마감한다. 다른 벗들 역시 정조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정치적 유배 등 고초 속에 사라진다. 이덕무가 그의 손자에게서 발견하고자 했던 “아이들의 열러갈 조선의 하늘”은 무엇이었을까?

불혹-세상의 어는 일에도 흔들림 없다는 40이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갈대처럼 흔들리는 나를 본다. 남의 곳간이 넘봐지고, 남의 출세(?)에 곁눈 갈 때마다 청춘의 그날을 생각한다. 이덕무가 그의 벗들과 백탑 아래에서 그랬듯 아무것도 없었지만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으리라 호기부렸던 그때의 결기를, 교사가 되어 오롯이 아이들만 보고 살겠다던 무모했던 그때의 다짐을 되새긴다. 우보천리(牛步千里) 좌고우면하지 않고 지름길에 현혹되지 않고 천릿길 가는 황소처럼 우직하게 뚜벅 뚜벅..

2010년 10월 30일 이장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