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97한국미술사 강의2-유홍준

짱구쌤 2012. 12. 31. 10:31

 

 

한국미술사의 꽃, 통일신라와 고려

[ 한국미술사강의2 / 유홍준 / 눌와 ]

 

 

만약 교육대학에 다닐 때 최고 수준의 미술사 강의를 듣고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면 우리나라의 문화수준은 지금과는 급(?)이 달라졌을 것이다.” 바로 내 생각이다. 이 시대의 문화지식인 유홍준과 이태호 교수는 지금은 명지대에 있는 절친이지만 이전에는 영남대와 전남대에서 교편을 잡으며 변방의 문화를 지키는 상징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그것도 좋았지만 난 더 나아가 그 분들이 교육대나 사범대에서 예비교사를 가르치면 얼마나 좋을까를 늘 생각하곤 했다. 한국미술사에 대한 애정과 균형 감각을 갖추지 않은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가르칠 문화는 너무 빈약하고 애처롭다. 석굴암과 고려청자만을 되새김하는 박제화된 미술사 교육은 감동도 철학도 없다.

 

유홍준도 그것이 안타까웠을까? 한국미술사에 입문하려는 미술사학도들이나 우리 문화를 더욱 잘 알고 싶어 하는 일반인들을 위한 대중적이며 전문적인 미술사 책을 집필하겠다는 포부가 시작된 지 이년 만에 두 번째 책이 나왔다. 그가 이룩한 [나의문화유산답사기]의 수준 높은 공감과는 다른 차분하고 체계적인 책의 전개는 신뢰 가는 교수님께 질 높은 강의를 듣는 듯 흐뭇하다. 다소 지루한 강의 속성을 벗어나지 못하더라도 다시 연필로 줄을 긋고 부지런히 배운다. 이번에는 통일신라와 고려다. 저자가 그 화려함이나 정교함에서 한국미술사의 꽃이라 일컫는 시대이다. 그는 통일 신라보다는 하대신라라는 용어를 선호하지만 통념상 통일신라를 그대로 사용한다. 통일 후 안정기에 접어들며 구가하는 문화적 힘은 당연히 높은 수준의 문화적 성취를 이룬다. 각종 건축물과 왕릉, 석탑과 석등, 승탑(부도)과 불상을 거쳐 공예품과 글씨, 그림까지 이 시대가 보여주는 화려함은 정교한 도록으로 잘 나타나있다. 미술관과 박물관의 형편없는 도록과는 비할 수 없는 소장가치 충분한 그림과 사진이 즐비하다. 3만원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사실 난 이 책에 소개된 수많은 미술품이 좀 지루하고 버거웠다. 거기서 거기 같은 유물이 반복적으로 소개되는 미술사 책에 줄곧 집중하기는 힘들었으나 우리 문화가 이룩한 성취를 남김없이 기록하고 싶다는 저자의 뜻도 있고 하니 그림만이라도 자세히 살펴봐야 했다. 지난 1권에서 거의 외우다시피한 곳이 있었는데 바로 [백제대향로]이다. 1990년대에 갑자기 발견되어 [용봉봉래산향로]라 불리다가 이름이 변경된 이 걸작을 직접 가까이에서 십여일 넘게 날마다 찾아가서(국립광주박물관 순회 전시) 보지 않았다면 그저 하나의 훌륭한 유물로 넘길 일이었는데,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고..

 

이번 2권에서 역시 나의 짧은(아니 토막인) 문화 경험에 부합한 작품 두 개에 시선이 고정되었는데 승탑(주도)과 월지궁(안압지)이다. 두 개다 잘못 쓰인 명칭을 바로 잡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일반적으로 알려진 부도나 부도탑 대신 스님의 사리를 모셨기에 승탑이라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이름 속에 뜻이 드러나니 좋은 명칭이다. 내가 예전에 이름 지었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국보 578]은 참으로 걸작이다. 구례 연곡사의 동,서탑과 함께 우리나라 최고의 승탑이라 평가하는 이 작은 승탑은 20여년 전에 알게 되었는데 눈 덮인 한적한 시골 절집의 중턱에 앉은 탑을 오진 눈으로 이리 저리 둘러보는 재미가 좋다. 하대신라 승탑의 전형인 팔각당이나 기단부부터 상륜부까지 빼곡하게 조각된 여러 조각상들을 다 이해할 수 없다하더라도 오랜 세월 인적 드문 이곳에서 천년 이상을 무사히(?) 견뎌온 시간에 감사함이 절로 든다. 우리 지역에는 앞서 말한 연곡사와 함께 선종 사찰로 구산선문의 제1가람이 된 보림사에도 승탑과 불상, , 석등, 탑비가 당시 그대로 남아있다. 이후 승탑은 고려시대에는 둥근원형탑을 거쳐 쇠퇴하게 된다.

 

신라에는 수학여행을 포함하여 십여 차례 가까이 가봤지만 감은사탑과 불국사 석축의 감동 말고는 별 감흥이 없는 것이 신기하다. 오히려 아이들 단속해 놓고 늦은 저녁 동학년 샘들과 들른 허름한 맥주 집에서의 기억이 뚜렷하다. 우리가 안압지라고 알고 있는 곳은 월지궁 임해전이다. 안압지는 조선시대 문인들이 붙여 놓은 이름이니 월지궁 임해전이라 부르자고 주장한다. 이곳에서 연못주위를 산책하는 것이 기억에 남는다. 두 방향은 반듯한 직선의 석축을 쌓았고 나머지 두 방향은 리아시스 해안처럼 자연스럽게 구불구불하다. 모두가 반듯했다면 정형에 대해 답답했을 것이고 전부 구불구불했으면 왕궁의 연못으로 위엄에는 닿지 못했을 것이다. 어느 곳에서도 전체가 조망되지 않아 바다처럼 보여 그곳의 전각을 임해전이라 부른다.

 

난 아직도 석탑과 한옥의 구조와 이름을 다 알지 못한다. 아마 수십 번도 더 읽고 들었는데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을 보면 나중의 꿈인 문화 해설사는 힘들 것 같다. 그래도 전에 살던 영암 근처 무위사 극락보전 불상 뒤편 불화나 벽화를 보며 혼자 오져하는 감성에 깃대에 열심히 보고 듣는다. 언젠가는 득도(?)할 거라 믿으며. 유홍준의 깨달음이 내게로 올 때까지 그의 강의는 계속 되어야 한다.

20121229일 이장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