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96건축수업-김진애

짱구쌤 2012. 12. 31. 10:30

 

 

너의 믿음을 흔들어 보라!

[ 인생을 바꾸는 건축수업 / 김진애 / 다산북스 ]

한 때 사는 집을 직접 짓겠다고 호기를 부리던 때도 있었다. 각종 건축 도서를 사고, 잘 지은 집들을 탐방하고, 남들 땅 사는데 기웃거리는 남자가 내 주위에는 많았다. 나도 그랬다. 누구나 사람들은 자기 집을 지어보고 싶어 한다. 하여 사람들은 누구나 건축가에 대한 동경과 호감이 조금씩은 있다.

 

이 책은 건축을 이야기하지만 실은 삶에 대한 것이다. 하긴 그렇지 않은 것이 어디 있겠냐마는 건축가 김진애가 이야기하는 건축수업의 울림은 크다. 그가 성공한 건축가여서 그런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그의 생각이 있어서이다.

길을 잃는 것은 알고 있던 것을 잃어보는 것이다. 길을 찾는 것은 곧 자신을 찾는 것이다. 잃어봐야 찾을 수 있다. 모색의 모색을 통해 얻어지는 진짜 체험이 길을 잃고 또 찾는 과정에서 생겨난다. 마치 우리의 인생처럼

아니 좋은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도시 건축을 해 온 김진애는 도시를 탐험?할 때 지도를 들고 길을 잃는다. 작은 골목을 걷다가 랜드마크를 발견하고 선으로 연결되는 길을 따라서 도시의 맥을 짚는다. 숙소로 돌아와서 백지에 잃었던 길을 복기하며 지도의 얼개를 그리다보면 도시를 온전하게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김진애는 사실 아주 오랜 전부터 알고 있던 이름이다. 몇 해 전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를 움직일 100대 리더에 한국인으로 유일하게 올랐을 때부터(사실 난 저들의 이런식 보도가 싫다) “왜 정치가가 아닌 건축가가?”에서 시작된 그에 대한 관심은 건축 이상의 사회적 발언을 하는 꽤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서울 포럼’을 통해 도시 건축과 공공건축을 설파하더니 급기야 지난 18대 국회에서 의원직 승계를 통해 등원한다. 등원 첫 연설에서 그녀가 보여준 호기는 지금도 후련하다. “난 MB의 무차별적 토목사업인 4대강과 뉴타운을 좌절시키려고 이곳에 왔다!”며 의원석의 수준미달 정치인들을 호통 치던 결기는, 지난 DJ정권 때 환경부장관으로 임명된 손숙씨가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답변한다고 온갖 꼬투리로 낙마시킨 저 저질의 정치판에 날린 KO펀치였다. 그 후 그는 4대강 147개보를 탐사하며 이 시대 전문가가 보여주어야 할 실사구시정신을 몸소 보여주었다.

 

올해 본 영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건축학개론’과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가’ 두 편이다. 제주도 가면 한 번 들러봐야겠다고 마음먹었었는데 지난 태풍에 다 부셔져 버렸다는 보도에 허탈했었다. ‘세트장’이 아닌 집을 지었어야 했는데 말이다. 고 정기용 선생의 말년을 기록한 다큐 ‘말하는 건축가’는 아팠다. 무주군과 십여 년을 넘게 공공프로젝트를 진행한 정기용 선생이 일생동안 이루고자 했던 공존의 ‘착한 건축’이 좌절되는 장면은 안타까웠다. 무주로 스키만 타러 갈 것이 아닌데 말이다. 사실 우리가 건축가를 잘 기억하지는 않는다. 순천기적의도서관도 정기용 선생의 작품이지만 OO시장의 업적 정도만 기억한다.

 

“걷고 싶은 도시, 만지고 싶은 건축”을 최고로 치는 김진애는 이 책을 통해 글쓰기, 말하기를 강조한다. 지식인들은 나는 것을 잘 말해야 하며 잘 써야 그 가치를 살릴 수 있다고 믿기에 여느 전문가 못지않은 노하우를 이야기한다. 자료를 기록하고 정리하는 일, 포트폴리오를 작성하는 법 등은 이 책에서 얻은 팁이다. 1월 1일에 하는 가장 좋은 일은 작년 자료를 정리하는 일이라 한다. 컴퓨터 파일을 폴더별로 분류하고 필요 없는 정크 파일을 지우고 새해 폴더를 만드는 일, 일 년 동안 생산한 자료를 분류하고 폐기 하는 일도 여기에 속한다. 나만의 포트폴리오를 잘 정리해 두는 것도 중요하다. 작업을 기록하고 남기는 일은 “내 역사의 기록자는 나”라는 내 지론과도 일치한다. 동시에 수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멀티테스킹 스타일의 김진애는 그 바쁜 와중에 책 20권을 펴냈다. 주눅이 들긴 하지만 우선 자료를 정리하는 일부터 해볼 일이다.

 

"Suspend your belief!"

저자가 MIT 유학시절 건축학과에서 필수 강좌였던 인문학 강의 첫 시간에 들었던 인류학 교수의 일성이었단다. 건축학에서 인문학 강좌도 그렇지만 ‘룰’과 ‘툴’을 중요시 하는 건축학도들에게 파격과 회의를 먼저 가르치는 것이 놀랍다. 내가 알고 있는 믿음을 한 번쯤 의심해 보는 것, 성찰과 다름이 아니다.

 

참, 나는 집짓는 것을 포기하고 잘 지어진 집을 구할 요량이다. 그것도 안 되면 한 칸짜리 흙집이라도.... 나의 건축법이다.

2012년 12월 23일 이장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