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94봉준이 온다-이광재

짱구쌤 2012. 12. 31. 10:27

 

 

어찌 그립지 않았겠는가?

[ 봉준이, 온다 / 이광재 / 모시는 사람들 ]

넓은 이마, 부릅뜬 눈, 단정한 수염, 꼭 다문 입술로 뭇 사람을 응시하는 다부진 사내를 본 적이 있다. 우금치에서 관군과 일본에 맞서 세상을 도모하려 했으나 패하고 후일을 기약하기 위해 찾은 순창 피노리, 옛동지의 밀고로 일본군에 붙잡혀 서울로 압송되어가는 사진 속 그는 녹두장군이라 불리는 전봉준이다. 조선 역사를 통틀어 가장 격정적으로 살다간 그를 가장 흠모했던 또 하나의 전봉준인 시인 김남주는 이렇게 노래했다.

 

한 시대의 불행한 아들로 태어나

고독과 위험에 결코 굴하지 않았던 사람

암울한 시대 한가운데 말뚝처럼 우뚝 서서

한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온몸으로 껴안고

피투성이로 싸웠던 사람 뒤따라 오는 세대를 위해

승리 없는 투쟁 어떤 불행 어떤 고통도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던 사람

누구보다도 자기 시대를 가장 정열적으로 사랑하고

누구보다도 자기 시대를 가장 격정적으로 노래하고 싸우고

한 시대와 더불어 사라지는 데 기꺼이 동의했던 사람

우리는 그의 이름을 키가 작다 해서 녹두꽃이라 부르기로 하고

농민의 아버지라 부르기도 하고 동학혁명의 수령이라 해서 동도대장 녹두장군

전봉준이라 부르기도 하니 보아 다오 이 사람을

거만하게 깎아 세운 그의 콧날이며 상투머리는

죽어서도 풀지 못할 원한, 원한 압제의 하늘을 가리키고 있지 않는가

죽어서도 감을 수 없는 저 부러진 눈동자 눈동자는

팔심삼 년이 지난 오늘에도 불타는 도화선이 되어

아직도 어둠을 되쏘아 보며 죽음에 항거하고 있지 않는가

탄환처럼 틀어박힌 캄캄한 이마의 벌판

저 불거진 혹부리 혹부리는 한 시대의 아픔을 말하고 있지 않는가

한 시대의 상처를 말하고 있지 않는가 한 시대의 절망을 말하고 있지 않는가

-황토현에 부치는 노래 중-

소설가 이광재는 평전의 형식으로 잊혀져가던 전봉준을 불러냈다. 이야기로 풀어낸 전기문, 평전은 저자의 수려한 문체로 여느 소설보다 흥미로웠다. 여느 평전과 이광재의 그것이 다른 결정적인 것은 애정이다. 잊고 살았던 한 세기 전의 역사를 다시 불러 세워 뜨거운 풀무질을 한 저자는 철로처럼 단단하다하여 붙여진 전봉준의 어린 시절 별명 씨화로부터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전까지 한 쓸쓸했을 사내의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하려 한다.

그런데도 한 짝달막한 사내가 쌓인 눈을 밟으며 산비탈과 들길을 걷는 모습이 자주 눈에 밟힌다. 누군가의 사랑에서 등불이 사위어가도록 격론을 벌이고, 동이 트면 밥 한 술 뜨고 또 다시 눈 쌓인 길을 고독하게 지쳐가는 사내, 나는 간혹 내가 그런 하얀 눈밭을 콧김 불며 걸어가는 꿈을 꾸곤 했다. 길을 떠나는 나의 모습이 그렇게 한 사내의 얼굴과 교직되고 있었다.

결혼해서 한때나마 단란했을 시절을 기록하며 이렇게 덧붙인다.

사랑하는 아내를 위시해 어른들과 함께 먼지 낀 속세에서 벗어나 주체하지 못한 분노 따위는 접어 둔 채 한낱 천치가 되어 살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삶이 무서운 것도 깨닫고 봄이면 온갖 것이 싹을 밀어 올리는 모습에 몸서리를 치기도 했을 것이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의 등에 물을 끼얹는 송씨의 얼굴에서는 보일 듯 말 듯 미소가 피고, 남편은 들을테면 누구 들어 보라고 더 과장된 몸짓으로 하푸하푸 소리를 질렀겠지, 깊은 밤 아내와 두런거리다 말일 끊겼을 때 들려오는 소쩍새 울음과 옆방 어른들이 들을세라 입을 가리고 키득거렸던 날들을 누군들 잊을 수 있을까. 이미 생겨버린, 세상을 엿보고 싶은 마음이야 안으로 다스려 두고 화전이나 일구며 되는대로 새끼를 낳아 한 생을 지탱한다면 그 또한 세상에 보람이 된다는 생각도 싹텃을 것이다.

 

평전은 전봉준의 출생부터 죽음까지 만을 쫒지 않는다. 당시의 정세와 권력층의 향방, 민초들의 생각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며 그가 왜 봉기를 결심하고 어떻게 한 시대를 만들어 갔었는가를 세밀하게 보여준다. 당연히 방대한 사료와 저작이 뒷받침된다. 여기에 현장 실사와 촌로들의 인터뷰, 거기에서 채우지 못한 것들은 작가적 상상력을 더한다.

대원군과 전봉준, 여러 자료를 살펴보면 당시 상당한 수준의 교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척양왜에 동일한 입장을 보인 두 지도자가 당시 일본과 청국의 간섭을 내치기 위해 펼치는 정치를 혹자는 전봉준의 한계를 지적하는 사례로 쓰기도 하지만 저자는 오히려 동학의 한계에 머무르지 않고 시대의 요구를 실현시키고자 했던 전봉준의 탁월한 정치적 전략으로 설명한다. 하여 전근대와 근대의 틀 속에서 동학전쟁을 분석하려하는 시도들을 경계하자고 한다. 아테네의 장바닥에서 싹튼 사상과 체계를 고부 말목장터의 봉기로 단순 치환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지당한 말이다. 서구 중심의 이론적 잣대를 절대화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전봉준과 김개남, 혹자들은 이 두 사람의 관계에서 동학전쟁 패배의 원인을 찾기도 한다. 온건파와 급진파의 분열이 그것이다. 둘은 이웃사촌이었다. 누구보다 절친했던 이들은 봉기의 전후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부분적으로는 전술적 이견을 보인 적도 있었으나 반봉건과 척양왜의 가치를 부정하는 일은 없었다. 몇해 전에 김개남 장군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이 일본에서 돌아왔다. 미안하고 미안했다. 지리산의 선비 황현은 당시 김개남 장군이 이끄는 농민군의 잔혹함(몇몇 관리의 처형과 재산 몰수)을 과장하여 동학군의 패퇴가 다행이라 일갈한다. 봉건의 끄트머리를 붙들고 매달리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당시 조선 내 여러 세력들의 입장을 설명한다.

 

한낱 고을의 훈장 서생이 어떻게 민중 봉기의 거두가 되었을까? 저자는 녹두장군의 지도자적 풍모를 자세히 기록한다. 수많은 현학들을 찾아다니며 시대의 요구를 공부하고, 소중한 동지들을 규합하는데 발품을 아끼지 않았으되 적에게는 단호하고 강인했던 성품은, 나중에 그를 심문했던 일본인과 조정 관료들을 매료시키는데 이른다. 하나 그들의 회유를 단호히 물리친다. “나를 죽일진대 종로 네거리에서 목을 베어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피를 뿌려 주는 것이 옳거늘 어찌 컴컴한 적굴 속에서 암연히 죽이느냐?”

 

죽음 앞에서 어찌 그리운 것이 없었겠는가? 씨화로의 어린 시절부터 격정의 세대를 살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마지막 장을 덮으며 허허롭지 않은 이가 누가 있을까? 하여 저자는 그가 없는 조선의 역사는 허전하고 쓸쓸하다.”하였다. 종일 뿌리는 눈을 창가에 두고 두터운 책을 읽었다. 이맘때쯤 공주 우금티에서 역사를 살다간 농투산이들은 눈발 날리는 고개에서 고향이 그리웠을 것이다. 그들의 소망을 두 어깨에 짊어지고 뚜벅 뚜벅 걸어 간 당찬 사내를 만났다. 작은 선거에서 잠시 물러선 것이 어찌 큰 대수가 되겠는가?2012129일 이장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