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69우리그림 백가지-박영대

짱구쌤 2012. 12. 31. 09:38

 

추워진 다음에야 소나무의 푸르름을 안다

[ 우리가 알아야 할 우리그림 백가지 / 박영대 / 현암사 ]

 

그림에 대해, 특히 우리 그림에 대해 무식한 나에게 그나마 애정과 관심을 갖게 해 준 이는 미술평론가 오주석이다. 그가 쓴 [한국의 미 특강]을 내가 읽은 제일의 책으로 주저 없이 꼽을 정도로 나는 그 책에 열광했고 지금도 좋아한다. 그 책에서 나는 김홍도의 그림을 사랑하게 되었고 윤두서의 자화상을 자랑스러워하게 되었다. 아니 우리 그림에 대해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유홍준의 [나의문화유산답사기]가 우리 문화에 대해 눈을 뜨게 해주었다면 오주석은 구체적인 우리 그림에 대해 알게 해준 셈이다. 그런 오주석이 요절하여 지금 없다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나는 요즘도 학교 수업이나 강의에서 그가 쓴 김홍도의 [씨름] 그림을 재미있게 사용하고 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할 따름이다.

 

이 책의 저자 박영대 교수는 일면식도 없지만 나름 가까운 사이다. 광주교대에서 미술교수로 재직 중인 그를 온라인 카페에서 글로 만나 것이 일 년도 채 안되었다. 우연한 기회에 나의 문집 [어깨동무]를 보내주었는데 답례로 받은 그의 책 덕분에 그가 쓴 다른 책들을 모두 구입해서 읽고 있는 중이다. [우리그림 백가지]의 절반 정도는 오주석과 유홍준의 책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던 그림들이다. 다른 점은 그림 자체에 대한 해설보다는 그림과 관련된 주제에 집중해서 그림읽기를 시도한다는 것이다. 가령 윤두서의 자화상은 “혼”, 김홍도의 서당도는 “인정”, 김정희의 세한도는 “푸르름” 같은 식이다.

 

난 이 책에서 많은 그림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역시나 전공 분야도 아니고 관련 지식도 없는지라 저자의 키포인트를 다 이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몇 가지 그림에서는 정확한 이해를 하게 되었는데 그것을 잠시 소개하고자 한다.

 

우선 김홍도의 [서당도]이다. 가장 유명한 풍속도인 이 그림을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

1) 일체의 배경없이 사람만을 화면 가득히 채우는 김홍도 그림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2) 오늘 할 공부를 다 외지 못한 아이가 회초리 맞는 게 두려워 훌쩍거리면서도 대님을 풀면서 죄값(?)을 치를 준비를 하고 있다.

3) 익히 아이의 실력을 아는 아이들이 가여운 아이를 위해 슬쩍 책을 보여주지만 까막눈인 아이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4) 가장 인정 많은 아이는 훈장님 왼쪽에서 가만히 입을 가리며 과제를 불러주는 아이이다.

5) 반장인듯한 상투잽이는 무슨 일이 그리 즐거운지 연신 싱글벙글이다.

6) 뒷모습을 한 더벅머리는 이 상황이 우스워 몸을 들썩거리며 웃는다. 김홍도의 그림에서 웃는 표현은 어깨선이 흐물흐물하다.

7) 너무 익숙한 이 광경이 즐거운 훈장님도 웃음을 참느라 애쓰신다.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없으면 도달하지 못하는 김홍도 그림의 따뜻함이 잘 나타난 그림이다.

 

 

다음은 국보로 지정된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이다. 추운 시절의 그림이란 뜻인데 추사가 제주도로 유배되어 그야말로 추운 시절을 보내고 있을 때 변함없이 그에 대한 애정과 존경을 보내온 제자 이상적을 위해 그려준 그림이다. 피카소의 그림을 보았을 때의 황당함처럼 세한도 역시 이상했다. 허술한 집 한 채에 소나무 잣나무 네그루가 전부인 이 그림이 어찌 명작이 될 수 있는 지 지금도 그 의문이 다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을 통해 어렴풋이 수긍은 하게 되었다.

1) 노송은 이제 그 생명을 다하려는 듯 가지 하나에 순을 달고 위태롭게 서있다. 김정희 자신이다.

2) 그 옆에 젊은 소나무는 노송을 받쳐 주며 늠름하다. 제자 이상적이다. “날씨가 추워진 다음에야 소나무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는 옛글을 떠올리며 유배 5년간 변함없는 수제자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했다.

3) 집 왼쪽의 어린 나무는 이 둘의 견고한 관계로 인해 만들어진 희망일 것이다.

4) 이 그림을 선물 받은 제자는 눈물에 겨워 감사했다. 통역관인 그가 중국에 들고 가 이 그림을 자랑하자 청나라의 학자들이 감동에 겨워 답문을 쓴다. 이것을 이어 붙이자 10미터가 넘는 두루마리 그림이 된 것이다. 다시 이 그림을 스승에 보여준다. 고난의 세월을 이긴 김정희가 해배되어 육지로 돌아간다. 이미 그는 전번의 그가 아닐 것이다.

 

시의(詩意)는 행간 속에 있고 화의(畵意)는 여백 속에 묻어 둔다고 저자는 말한다. 말하지 않는 것과의 대화일 터 스토리와 깊은 뜻을 헤아려야 할 것이 어찌 우리 옛 그림 뿐이겠는가?

2012. 4. 16. 이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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