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66슬픈열대-레비스트로스

짱구쌤 2012. 12. 31. 09:27

 

 

'문명과 야만'이라는 이분법을 넘어

[ 슬픈 열대 / 레비 스트로스 / 한길 ]

책 읽는 일이 이리도 힘들까? 두 달 만에 읽은 책이다. 도대체 진도가 나가지 않은 이 책을 이제야 놓는다. 800쪽. 무리였다. 문제는 완전히 이해가 되지 않고 있다는 것, 레비 스트로스의 저작은 다시는 읽지 않을 것이다.

구조주의 인류학의 창시자, 오리엔탈리즘 연구의 고전 등으로 불리는 저자의 이 책은 내가 좋아하는 문화평론가 정윤수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생각했던 것은 “정윤수는 이 책을 다 이해했을까?”였다. 이해했다면 절망이고 이해하지 못했다면 그의 진정성을 의심할 일이니. 쩝.. 순전히 박약한 나의 수준을 탓할 일. 이래 저래 마땅치 않은 책이다.

하지만 내가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여 이 책이 난해한 것만은 아니다(나는 이 시기 너무 바빴고, 세상은 너무 변화무쌍해서 내가 책에 집중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단순하게 말하면 인류학자인 저자가 1935년부터 1938년까지 카두베오, 보로로, 남비콰라, 카와이브 등 아마존 밀림 내륙지역의 4개 원주민 부족과 생활하면서 기록한 기행문이다. 그 전에도 있었을(이미 16세기부터 유행처럼) 원주민 연구서와 이 책은 여러 면에서 확실하게 구분된다. 종전의 책들이 서구의 시각에서 원주민들의 삶을 조망(심지어는 조롱)하는 ‘호기심 천국’이었다면 이 책은 어떠한 편견도 배제하고 그들을 기록한 보고서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슬픈 열대'는 서구사회가 자신들이 만든 기준을 다른 세계에 대해 일방적으로 적용하는 폭력적 전통에 단호히 반대한다. 정윤수가 추천한 제일의 이유다. 우리는 프랑스 여배우가 우리의 개고기 문화를 비하하자 흥분했던 일이 있었다. 그들의 달팽이 식용문화와 우리의 개고기 문화가 그리 다르지 않음을, 그것은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것일 뿐 우월의 관계가 아니라고 강변하면서, 그러면서도 동남아 국가들에서 쥐를 먹는 문화를 미개하다고 손가락질한다. 서구도 아니면서 우리는 서구의 ‘문명과 야만’의 프레임에 갇혀 있다.

이 책이 ‘슬픈 열대’인 이유는 참 많다. "문명이 숲을 거둬갈 때 비극은 시작된다." “세계는 인간 없이 시작되었고 또 인간 없이 끝날 것이다.” 이른바 문명화로 파괴되어 가는 열대 우림, 그보다 더 심각한 서구 중심주의는 분명 열대를 슬프게 한다. 선교사들이 열대에 진출(?)하여 벌이는 무자비한 반문화적 행태를 낱낱이 고발한다.(익히 알고 있지 않은가? 우리 교회에서 하는 중동 선교) '이 세상에는 더 우월한 사회가 없다' '서구의 시선으로 열대를 보지 마라'는 저자의 절규는 이 책 전반에서 철저히 관철된다. 서구사회를 '과열 혹은 동적 사회(hot or mobile society)'라고 정의한다. 서구사회는 열역학적으로 움직이는 사회다. 하나의 스팀엔진처럼 에너지를 산출하고 소비하면서 갈등을 통해 기술적 발전을 이루는 사회다. 반면 원주민들의 사회는 '냉각 혹은 정적 사회(cold or static society)'다. 이 사회는 인간의 종합적 재능과 경험이 반복적으로 지속되는 사회다. 이들은 개인이 소비하는 에너지양을 증가시키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 때문에 허파로 호흡할 수 있었다.

물론 그가 기본적으로 관철하고자 하는 시각 때문에 때때로 여러 면에서 충돌이 발생한다. 부족 간의 끈끈한 연대와 지도자의 헌신성의 한편에 추장이 갖고 있는 일부다처제 등의 독점이나, 모든 체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는 민족학자 자신이, 모국인 프랑스 사회를 비판해야 한다는 모순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그것조차 그대로 내놓고 담담히 기록한다. 이 책이 갖는 진정성이다.

 

그는 ‘슬픈 열대’에서 ‘문명’과 ‘야만’의 경계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물음을 던진다. 그는 서구적 가치관에 따른 ‘문명’의 정의는 편협한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며, 더 나아가 폭력적이라고까지 본다. 서구가 만든 '문명과 야만'이라는 이분법의 허구를 파헤치기로 작정하고 쓴 책이다. 하지만 난 그것을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문명인’들이 열대에 들어오지 않았을 때 그들은 건강했었다. 문명인들이 가져온 것은 무항체의 열대인을 치명적으로 위협한 전염병뿐 아니라 스스로 온전했던 그들에게 준 혼란과 갈등이었다. 저자 스트로스는 그것을 통렬히 비판하고 반성한다. 그는 101살까지 장수하다가 2009년에 눈을 감았다. 나의 무식이 그를 원망하고 있지만 나의 편협을 일깨워 준 그에게 무한히 감사한다. 굳이 변명하자면 난해한 것은 번역자의 책임도 크다. 도무지 뭔 말인지 모를 때가 참 많았다. 누군들 이 책을 읽는다면 그것이 사실인지 확인해 주시기를.. 그래도 800쪽을 다 읽었으니 내가 대견하다. 그래, 난 이렇게 산다.

2012년 1월 4일 이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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