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61등대-임철우

짱구쌤 2012. 12. 30. 23:06

 

 

사람은 누구나 별이었단다

[ 등대 / 임철우 / 문학과지성사 ]

원제는 [등대 아래서 휘파람]이었다. 1993년 첫 발령지 완도 소안에서 이 책을 읽었다. 제목이 [등대]로 바뀌고 내용이 조금 수정되었다. 교무실 책꽂이에 있던 이 책을 발견하고는 어디서 많이 봤던 책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역시. 당시 이 책을 읽으며 깜짝 놀랐던 것이 두 가지 였는데 저자인 임철우의 고향이 완도, 그리고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계림동 늴리리 동네. 내 어릴 적 고향이 바로 그 근처였기에 나의 유년 시절을 복기 하는듯한 착각 속에서 이 책을 읽었다. 20년 가까이 지나서 다시 읽을 때에도 그때와 느낌은 다르지 않았다. 약간의 설렘과 아련함이 그대로.

계림동 기찻길, 화교 학교, 미나리 방죽, 잣고개, 대인 시장과 계림 극장, 농장다리와 밤실.. 이 책에 등장하는 지명은 모두 나의 어릴 적 고향과 지근거리다. 계림학교 후문 쪽에서 태어난 나는 지금의 교대 앞 학사 스넥 자리와 모교인 산수초등학교 옆에서 여섯 살까지 살았고, 늴리리 동네라 불리는 풍향동에서 초등학교 3학년까지 지냈다. 그후 운암동으로 이사한 후에도 한 시간 버스 거리의 산수초를 졸업했고, 담장 너머 충장중을 다녔으며 태어난 부근인 광주고를 졸업하고 풍향동 교대를 나왔으니 그쪽 동네와는 참 질긴 인연이다.

임철우도 고향 완도 낙일도를 떠나 열 두살에 계림동 화교학교 옆으로 이사 와서 열여섯 상경할 때까지 5년간 살았다고 한다. 이때의 기억을 되살려 소설적 장치를 덧붙여 쓴 책이다. 어쩌면 어릴 때 기억과 그리도 일치하는지 가난한 동네 아이들의 놀이부터 한 두채씩은 있음직한 양옥 이층집에 대한 동경, 어느 마을이나 있는 정신 나간 형이나 누나 이야기, 혼자 사는 괴팍한 노파에 대한 두려움, 학교에서의 이해 못할 체벌, 덕지 덕지 붙어사는 이웃들의 소사한 일상까지 딱 그대로였다. 작자의 후기 글처럼 “누구나 애잔하고 쓸쓸한 날들의 추억 한 줌씩은 저마다 가슴속에 간직하고 사는 법” 온 가족의 짐인 정신지체 둘째누나 은매, 따로 살림을 차리고 가족을 내 팽겨친 아버지, “걱정 말아라. 얘야, 걱정할 것 아나도 없응께!”를 입에 달고 사시는 억척스런 어머니, 아버지에 대한 증오 때문에 수녀가 꿈인 공순이 큰누나가 이 책의 주인공들이다. 완도 촌놈인 저자는 착한 사람이다. [아버지의 땅]이나, [그 섬에 가고 싶다]에서도 확인했지만 그는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본다. 열여섯에 그만 살고 싶다는 마음을 먹은 주인공 소년의 절망은 십 육년이 흘러 그토록 미워하던 아버지를 용서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맺는다. 자신을 여기까지 밀고 온 것이 다름 아닌 지난날의 절망과 상실이었음을 고백하며 부정할 수 없는 자기연민과 자기 위안이 무의식에 잠복해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나 역시 이 글을 읽으며 결코 아름답지 만은 않았을 그 시절의 추억들이 고스란히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자양분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 시절이 고맙고 지금의 내가 장하고 짠하다.

소설 내내 떠오르는 사람은 아버지였다. 시험 보고 상타오는 날 어김없이 시내로 데리고 나가 짜장면을 사주시던 기억, 푹푹 빠질 만큼 많은 눈이 왔던 날 어느 깊은 산속 저수지로 낚시 가서 눈을 녹여 호호 불며 끓여주시던 라면이 잊혀 지질 않는다. 그리고 함께 뛰놀던 동무들. 기찻길에 못 올려 놓고 칼 만들던 일, 비오는 날 팬티 차림으로 동네를 맨발로 다니며 낙숫물 맞던 일, 무슨 놀이였는지 해 넘어갈 때까지 동네 공터에서 함께 놀았던 동무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갔는지. 한 십년 전 당시 살았던 동네를 가본 적이 있었다. 동네 초입부터 별반 달라지지 않았었는데 마침내 거기에 우리가 살았던 옛집이 그대로 있었다. 당시 아버지가 손수 지으셨던 이태리식 작은 슬라브집이 낡았지만 그 자리에 기적같이 있었다. 반가웠다. 다시 가서 보고 싶은데 사라졌으면 많이 서운할 것 같다.

내 자서전을 읽는 느낌, 나와 어린 시절을 비슷하게 공유한 작가가 친근하게 다가온다. 작가의 할머니는 완도 시골 여름날 밤 손자를 무픙에 눕히고 총총한 별들을 보며 이렇게 말해준다. “사람은 누구나 다 별이었단다. 그 별들이 지상에 내려와 사람으로 살다가 다시 그 별로 돌아간다고.” 그러니 사람은 누구나 다 소중하니 잘 살아야 한다고. 닥쳐올 손자의 두려운 미래를 걱정하셨을 할머니의 보살핌 때문이었을까 작가는 따뜻한 사람이 되었다. 내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다.

2011. 11. 4. 이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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