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인생은 너무도 느리고 희망은 너무도 난폭해

짱구쌤 2024. 2. 21. 22:41

[인생은 너무도 느리고 희망은 너무도 난폭해 / 프랑수아즈 사강 / 레모]

 

 

프랑스 문학의 앙팡 테리블

브람스를 아세요, 슬픔이여 안녕을 쓴 프랑수아즈 사강은 순식간에 세계적인 작가로 명성을 얻은 매혹적인 작은 악마. 신경 쇠약, 수면제 복용, 정신병동 입원, 마약 복용, 그리고 노년의 파산. 20살 즈음에 얻은 명성과 부를 평생 유지하기엔 그녀는 너무 어렸고 열정적이었다. 누구나 그렇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아직도 많이 인용되는 그녀의 명언(?)이다. 이 책은 갑작스러운 명성에, 유럽과 미국, 전 세계로 이어지는 강연과 초청, 연일 이어지는 파티와 여행 중 그녀다움을 붙잡고 싶어, 친구인 베로니크에게 보낸 편지 모음집이다.

 

그러니까 빨리 편지해 줘, 최대한 길게 답장해 줘

모두 서른아홉 통의 편지글이다. 서로를 플릭, 플록으로 부르며 써 내려간 편지는 매우 사적이며 솔직하다. 사강은 알았을 것이다. 이 여행도, 파티도, 관심도, 명예도 언젠가는 끝나리라는 것을. 불안한 고공 활강의 두려움을 누군가에겐 말해놓아야 한다. 그런 대상이 있어 다행이었고 내 일처럼 안도했다. 하여 플록에게 말한 미래를 걱정하지 마, 미래는 환상이야.”는 결국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편지의 말미는 늘 비슷했다. 답장을 갈구하며, 그것도 길게 당장. 매번 토라지고 사과하고 애원하고 화내고, 하지만 편지는 내내 이어졌고 불완전한 청춘은 그렇게 나이 들어간다.

 

인생은 너무도 느리고 희망은 너무도 난폭해

소년 등과, 예체능 영재, 소년 국수 등 부러운 이른 성공이 말년까지 이어지는 것이 쉽지 않다. 그들에겐 어른은 너무도 느리게 멀리 느껴졌을 것이고, 이미 이룬 희망 그 다음 또한 친절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이른 성취가 꼭 축복받을 일만은 아니다. 느린 성취가 아쉽지 않듯 말이다.

사강의 글씨는 너무도 난폭하여 해석 불가능한 구절이 상당하다. 파티에서 오른 취기가 그대로 느껴지고 때론 해석 받기 싫다는 오기도 전해진다. 사강 만큼 아찔했을 베로니크에게도 편지는 절절했을 것이고 난 그녀의 답장을 미루어 짐작하며 착잡해진다. 요즘에도 간간히 날아오는 손편지는 내 제일의 기쁨이자 자랑이다. 누군가와 사적이며 솔직한 편지를 나누다 보면 삶이 그리 쓸쓸하지도 노곤하지도 않게 느껴진다. 매월 정기적으로 시골 우체국에 들러 우표를 사야 하는 이유이다.

2024221일 이장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