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오르한 파묵

짱구쌤 2022. 9. 20. 21:17

책이 영원히 존재할 것이며

[오르한 파묵 / 이난아 / 민음사]

작가는 바늘로 우물을 파듯이

남은 생애를 수도승처럼 방 한구석에서 (글을 쓰며) 보낼 수 있다. 작가에게 필요한 것은 첫째도 인내요, 둘째도 인내요, 셋째도 인내. 작가는 바늘로 우물을 파듯이 글을 써야 (31)

32년을 매일같이 평균 열 시간 이상을 꾸준하게 썼다고 한다. 작가 조정래와 황석영은 이를 글감옥이라 했고, 하루키는 직업으로서 소설가라 규정했다.

임윤찬도 그랬다. 반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을 차지한 후, “올해 들어 가장 심란한 마음, 산에 들어가 피아노만 치고 살고 싶다.”라고 했다. 19살 청년은 작은 성취에도 자랑하고 싶은 마음만 앞서는 나를 부끄럽게 했다. 작가 김훈이 확인 사살을 한다. “생사의 급박함을 스스로 알아서 사람 모이는 대처에 나다니지 않고 혼자서 처박혀서 한 글 한 글 쓰도록 하겠습니다. 무리를 아늑해하지 않으며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김훈. 동인문학상 수상소감 중)

점처럼 써지지 않은 글을 상상력의 고갈이라는 우아한 이름으로 덮었다. 사실은 글은 엉덩이로 쓴다 라는 변하지 않은 진실을 외면하고 싶은 게으름 때문이다. 스마트폰과 TV 앞에서 보낸 시간의 반에 반만이라도 엉덩이를 붙였다면 꽤 그럴싸한 글이 모였을 것이다.

 

변방에서 중심으로

나는 한 번도 이스탄불의 뒷골목, 이스탄불의 니샨타쉬가 관심을 끌지 못할 거야 하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내가 경험한 것들을 믿음을 가지고 썼고, 결국 모든 세계가 읽었습니다. 이는 모든 작가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190)]

이스탄불에서 나고 자란 파묵의 작품 [내 이름은 빨강], [이스탄불], [다른 색], [순수 박물관] 등 대부분은 이스탄불이 배경이다. 천 년 동안 세상의 중심이었던 자신의 도시가 변방으로 전락하는 과정을 치열하게 기록한다. 그래서 가장 불행한 것은, 자신과 자신의 도시를 혐오하는 것이라 했을 것이다. 폐허와 비애의 이스탄불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집필실의 고독과 사투하며 마침내 위대한 문학적 성취를 이룬다.

내가 어렸을 때 그리고 청년 시절에 느꼈던 것과는 정반대로, 이제 내게 있어 세계의 중심부는 이스탄불입니다. (260)

나에게 이스탄불은 전라도이자 구례 용방이다. 지금 나에게 세상의 중심은 용방이다. 이곳에서 승부를 걸어야 하고 나를 납득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좀 더 절실해야 한다.

 

이스탄불의 그녀처럼

저자는 팬으로 시작해 파묵의 모든 작품을 번역한 전문 연구자가 되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 훨씬 이전부터 그의 작품을 우리에게 소개하였으며, 작가로서뿐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깊은 이해를 갖고 있어, 번역자의 좋은 본보기를 보여준다. 작가의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수시로 소통하며 작은 의도까지도 잘 살릴 수 있는 번역자는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파묵을 존경하며 그만큼 이스탄불도 사랑한다. 책이 영원히 존재할 것이며, 책 속의 이야기를 통해 그 이야기를 지은 존재는 행복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글을 옮기는 사람이다. 십 여년 전 이스탄불 여행에서 우리를 안내해 준 이가 겹쳐진다. 그들의 낙후된 경제력에만 초점을 맞춰 질문하는 우리 같은 여행자들에게 성심을 다해 이스탄불을 이야기하던 그가 보스포루스 해협 배 위에서 먼 바다를 바라보며 내뱉은 말, “나는 이스탄불을 사랑해요.” 그래. 사랑하는 사람만큼 절실한 것은 없다. 더 더 사랑해야 한다.

2022920일 이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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