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비데는 오직 영암군청에만

짱구쌤 2018. 2. 23. 08:46

 

 

비데는 오직 영암군청에만?

 

영암 덕진초등학교와 서울 압구정초등학교는 2002년 도농교류학습을 실시하였다. 7월에는 압구정초 40명의 학생이 영암을 방문해 23일 농촌을 체험했고, 11월에는 답방형식으로 덕진의 아이들이 서울을 방문했다.

 

#20027. 덕진초 운동장

2002년 월드컵이 끝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터라 압구정초에서는 두 학교간의 친선 축구를 제안했다. 덕진초 운동장에 모인 두 팀은 극렬한 대조를 이뤘다. 덕진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씩은 더 커 보이는 압구정 선수들은 2002 월드컵 참가국을 보여주려는 듯 각국의 유니폼을 갖춰 입고 나왔고, 덕진 아이들은 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몇몇은 맨발로 출전을 고집했다. 경기가 시작되었고 명품 유니폼이 바삐 뛰어다녔지만 점심시간마다 합을 맞춰온 촌놈들의 맨발을 당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독일 선수의 장갑과 같은 제품이라고 자랑하던 압구정 골키퍼는 열신 골을 허용했고, 친목이 불목으로 번질 것을 우려한 나는 촌놈들에게 1골 허용을 지시했으니 그나마 61로 경기를 끝낼 수 있었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압구정 전사들은 심판인 나를 향해 항의성 멘트를 날린다. “선생님, 국제심판 자격증 있어요? 오프사이드를 부셔야죠?”, “왜 천연잔디가 아니죠? 슬라이딩을 못했잖아요.”

 

#200210. 영암군청

11월 서울 답방을 앞둔 가장 큰 걱정은 비데였다. 당시 강남속의 강남인 압구정 현대아파트에서 2박 홈스테이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친절한 그 학교 선생님은 집마다 비데가 있으니 알고 오시라는 것이었다. 아직도 푸세식이 다수인 우리 학구 아이들에게 나도 사용해보지 않은 비데는 첨단 무기(?)였다. 수소문 끝에 영암에 존재하는 비데는 오직 한군데 영암군청 본관. 우리는 초유의 비데 현장학습을 갔다. 몇 번의 사용 전력을 가진 어느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한 명씩 들어가 비데를 체험하고 나온 아이들의 표정은 롤러코스터를 탄 후의 그것과 비슷했다. 물론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나 역시 그 첫 경험이 잊히지 않는다.

 

#200211. 압구정

압구정의 환대는 대단했다. 기차로 올라간 우리들은 서울역에 마중 나온 압구정 식구들과 버스에 나눠 타고 서울투어를 다녔다. 특별히 부모님께서 신용카드를 빌려주셨다는 서울 아이의 자랑을 듣던 우리의 민*이는 나도 카드 가져왔어. 여기전화카드를 흔들며 의기양양. 아이들을 1:1 홈스테이로 보내고 우리 담임들은 압구정 학부모회의 공식 환영 만찬에 참석한 후 몇 명의 가정을 확인 차 방문하였다. 엘레강스한 가정부를 둔 어느 큰 집에 들어서자 반가운 얼굴의 영*이가 달려와 나에게 속삭인다. “선생님! 비데가 달라요 달라, 그래도 무사히 사용했어요.” 안도의 한숨도 함께 뒤따른다. 다음날, 지난번 덕진에서의 축구 참사를 기억하는 우리는 두 학교를 섞어 편을 나누기로 하였다.

압구정초등학교랑 덕진초등학교가 함께 편을 가르고 축구경기를 하였다. 전반전에는 우리가 1골을 넣었다. 우리 공격수들의 힘이 좋았다. 42로 우리가 이겨서 기분이 아주 좋았다.

(200211월 영암덕진초 5년 조영현)

2003년에도 도농교류를 지속하자는 압구정의 제안을 우리는 정중히 사양했다. 스타 연예인 이경규와 왕영은이 압구정초의 학부모이고 교사들의 자녀가 빈곤층에 속한다는 다소 과장 섞인 교장선생님의 자랑이 불편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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