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짱구쌤 2017. 6. 25. 07:19

 

 

모퉁이를 돌면?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 백영옥 / arte]

책 읽어주기

아침마다, 혹은 수업 시간에 때때로 책을 읽어준 지 10여년이 된 것 같다. 주례선생님 사모님께서 잠들기 전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셨다는 말을 듣고, 큰 아이에게 읽어주던 일이 교실로 이어진 것이다. 큰 아이는 그다지 책을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덕분에 나는 책읽어주기가 습관처럼 되었으니 밑진 장사는 아닌 셈이다. 매일 아침 5분 정도 책을 읽어주고 수업을 하면 나도, 아이들도 좋은 느낌으로 공부를 시작할 수 있다. 초반에는 짧고 재미있는 책을 읽어주며 흥미를 끄는데, 결국 한 권의 책을 읽어주기 위해 놓은 밑밥인 셈이다. [빨강머리 앤]. 500쪽이 넘는 명작을 다 읽어주려면 족히 2-3개월은 걸린다. 힘들지만 행복한 여정이다. 상상력 풍부한 수다쟁이 앤의 입을 빌려 담임이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꼰대스럽지 않게^^

 

앤 키즈 & 삐삐 키즈

10년 전 봄, 침대에 누워 천장의 무늬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지쳐 있었다. 인간관계에서 실패했고, 소설가가 되겠다는 오랜 꿈에서 멀어졌고, 결국 회사에 사표를 냈다. 버튼 하나를 누를 힘이 없었지만, <빨강머리 앤> 50부작 애니메이션을 봤다. 끝까지 따라 부를 수 있는 내 인생 유일한 주제가가 흘러나왔다. “주근깨 빼빼 마른 빨강머리 앤~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 이마가 툭 불거져 나온 이 수다쟁이 소녀는 내게 쉬지 않고 말이란 걸 했다

"엘리자가 말했어요! 세상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정말 멋져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나는걸요."

스톱 버튼! 눈물이 핑앤의 말을 한 번, 두 번, 세 번 더 들었다. 결국 눈물이 흘러내렸다.

작가는 앤과 그 주변 인물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본다. 대단한 위인이나 삶의 스승이 아닌 여고 친구 같은 멘토를 가진 것이다.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의 작가 유은실이 말괄량이 삐삐를 사랑하는 방식과 꼭 닮았다. 어릴 적부터 친근하게 읽어왔던 주인공이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말을 걸어주는 현재 진행형이다.

 

백년슈퍼 앞 삼거리

나는 역리파다.’로 시작하는 글 [백년슈퍼 앞 삼거리]2017 광화문글판 대학생 에세이 공모전 대상작품이다. 시골 여고 동창생 세 명의 우정을 그린 이야기는 읽기만 해도 행복한 미소가 지어진다. 글쓴이는 당선 소감을 통해 고시를 준비하면서 인간관계를 포함해 쓸데없다고 생각했던 소중한 것들에 대한 다큐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이름 하여 쓸데없는 다큐멋진 청춘이다. 당연히 사랑하는 나의 [어깨동무] 제자이다. 제자는 고시를 보지 않기로 했단다. 대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찾아보기로 했다며,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짱구쌤을 안심시킨다. 졸업시키고 한참의 시간이 흐르니 이제 인생의 진로를 고민하는 젊은 제자들을 보게 된다. 작가는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뻔한 조언 말고 구체적이며 현실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잘 될 거야, 너만 힘든 게 아냐말고. 삼거리에서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서성거리는 청춘들에게 우리의 앤이 속삭인다.

사람의 앞길엔 언제나 구부러진 길모퉁이가 있기 마련이군요새로운 길모퉁이를 돌았을 때 그 앞에 무엇이 보일런지. 전 거기에 희망과 꿈을 품고 이 결단을 내린 것입니다. 그러나 좁은 듯이 보이는 이 길을 꼬불꼬불 꼬부라지면서 천천히 걸어 나가기 시작하자 전 그때 넓은 지평선을 향해 힘차게 내달리던 시절에 비하여 주변의 아름다움이며 흐뭇한 인정을 맛보는 일이 많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2017. 6. 25. 이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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