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산책자

짱구쌤 2017. 7. 3. 21:59

 

 

오직 나만이 나를 견뎌낼 수 있기에

[산책자 / 로베르트 발저 / 한겨레출판]

산책예찬

산책이라고는 아내와 함께 집 주변 호수공원을 도는 것이 유일한 나로서는, 그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좀 거시기 하지만 어렴풋하게나마 저자의 산책예찬에 동조하고 싶다. ‘걷기쓰기에 인생 후반부를 다 보낸 작가만큼은 아니더라도, ‘집짓기 구상하기이후 읽기와 쓰기, 가끔씩 산책하기는 주요한 취미활동이 되었다. 복잡하게 얽힌 생각이 걷는 동안, 걸으며 이야기 하는 동안 간단해 지는 것을 경험한다. 자연의 변화를 느끼는 것도, 주변 건물이나 환경이 바뀌는 것도, 유행과 같은 삶의 방식도 덤처럼 얻어진다. 갖은 직업을 전전하다 들어선 작가의 길은 만만치 않았고, 세상의 무관심에 절망하다 스스로 산책과 쓰기에 자신을 가둔다. 종일 걸으며 본 것, 만난 사람, 경험 한 것, 느낀 것을 자신만의 언어(독특한 문체)로 표현한다. 헤세와 카프카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으나 크게 빛을 보지 못하고 산책하다 숨을 거둔다. 산책의 종결자이다.

 

to be small and to stay small

그 누구도 내가 되기를, 나는 원하지 않는다.

오직 나만이 나를 견뎌낼 수 있기에

그토록 많은 것을 알고, 그토록 많은 것을 보았으나

그토록 아무것도, 아무것도 할 말이 없음이여.

삶도 글도 작게 되기를 소망했던 발저의 글은 너무도 독특해서 뭐 이런 글이 다 있어?’를 몇 번이고 반복하게 만든다. 도대체 읽기의 진도가 나가지 않고 그만두기는 뭔가 꺼림칙하고 한 달 넘게 이어진 독서는 고행(?)이었다. 중반부를 넘어서야 그의 글이, ‘그 누구도 내가 되기를, 나는 원하지 않는다.’던 그의 독백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직 나만이 나를 견뎌낼 수 있기에에서 그에게 감정이 이입되어 책의 후반부는 함께 길을 걷는 느낌이었다. 내 안에 잠재되어 얽혀있던 생각의 고리가 풀어지면서 그래, 맞아, 그런 적이 있었어!’를 연발하곤 하였다. 누구에게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오직 자신을 납득시키는 데 온 힘을 기울이는, 뼈만 남은 청새치를 묶고 항구로 돌아오는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 노인의 형형한 눈빛처럼 당당한 글이다. 세상에 배반당하지 않고 오히려 세상을 배반해 버리는 어리석은 자의 우직함이 느껴진다.

 

나만의 글쓰기

조금은 사변적인 느낌도 있지만 자신의 빛깔이 분명한 매력적인 글이다. 순전히 주관적인 느낌으로는 [칼의 노래]의 김훈도 발저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몇 년째 서평을 중심으로 잡글을 써오면서 고민하는 것이 있다. ‘나만의 글일상적이면서도 깊이가 있는 글, 쉬우면서도 생각하게 하는 글, 나를 성찰하고 성장시키는 글, 읽는 이에게 공감과 여백을 주는 글... 하하, 그런 글이 어디 있기나 할까? 다 아니더라도 한 가지는 있다. 이장규스러운 글. 이번 여름에는 진검 승부를 할까 한다. 그간 써온 글도 한 번 다시 다듬고 새로운 글쓰기도 시도해보고 싶다. ? 폼 나니까!

2017. 7. 3. 이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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