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큰 집

짱구쌤 2017. 1. 15. 21:04

 

 

No.1이 아니라 Only 1

[세상에서 가장 큰 집 / 구본준 / 한겨레출판]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줍니다

몇 년 전에 유행하던 한 아파트 광고의 문구이다. ‘대한민국 1%를 위하여!’라는 자동차 광고와 함께 최악의 카피로 뽑히기도 했다. 천박하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광고의 전략은 성공적이어서 우리 사회의 씁쓸한 실태를 정확히 반영한 사례로 읽히기도 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가장 오래된, 가장 거대한, 가장 화려한 등의 수식어가 붙은 건축물과 문화재가 많은 이들의 관심사가 되는 것을 보면 비단 우리 시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닌 듯싶다. 저자 구본준은 건축 전문기자로서 동서양과 우리나라의 대표적 건축물인 파르테논 신전, 자금성, 경복궁과 종묘를 이야기한다. 서양 건축, 아니 현대 건축의 모델이 된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웅장함과 장엄함을 드러내기에 가장 적합한 거대 기둥, 열주(列柱)는 오늘날 수많은 건축과 디자인에 차용된다. 기둥이 서양 건축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건축 공학적으로 꼭 필요한 기둥은 그 자체로 볼거리다. 열아홉 칸 101m로 가장 긴 종묘의 정전 역시 길게 늘어선 기둥이 압권이다.

 

건축 기자 구본준의 특별함

이 책에서 저자 구본준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특별함이다. 우리의 경복궁은 왜 자금성만큼 크지 않은지, 궁궐은 왜 베르사유 궁전만큼 화려하지 않은지, 능은 진시황릉이나 피라미드만큼 거대하지 않은지를 묻는 수많은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종묘의 문화적 가치는 이런 특별함에 있습니다. 그 특별함은 독창적이면서도 유일무이한 것입니다. 문화는 ‘No.1’이 아니라 ‘Only 1’이 가치를 지닙니다. 그래서 문화에서 서로 다른 것들을 한 가지 기준으로 단순히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79)

자금성을 그리 크게 지은 것은, 거대한 중국의 여러 소수 민족과 주변 국가들을 복종시키기 위해 황제의 위용을 과시해야 할 필요성 때문이다. 거대 건축물의 대부분은 당시 하층민의 고혈을 짠 결과이기도 하다. 수많은 민중들의 희생을 생각한다면 거대하지 않은 규모의 우리 궁궐은 인간적으로 보인다. 물론 인류 공동의 자산인 위대한 문화유산에 대해 그 이면만을 부각시켜 폄하하는 것을 경계할 일이기도 하다. 오래전 읽은 [스핑크스의 코]에서 실천적 지식인의 표상인 리영희 선생은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에 대해 외눈박이 시각을 가졌던 것을 반성한다고 고백한다. 공과를 공평하게 평가하고 문화유산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편안하게 즐기자고 말한다. 백 번 옳으신 말씀이다.

 

특별한 곳, 종묘와 이세신궁

부끄럽게도 아직 종묘를 가보지 못했다. 아이들과 수없이 서울 답사를 다녀왔는데도 말이다. 늘어선 정전의 기둥, 긴 기와지붕, 넓은 판석 마당, 본디 일곱 칸이었던 것이 열아홉 칸이 되어가는 세월의 흔적을 직접 보고 느끼고 싶다. 명작은 질리지 않는다. 며칠 전 다녀온 부여박물관의 [백제금동대향로], 국립중앙박물관의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몇 시간이고 머물면서 보고 또 보고 싶은 명작이다.

특별함은 일본의 이세신궁에도 있다. 우리의 종묘에 해당하는 이 신궁은 2,000년 동안 20년마다 부수고 다시 짓는 과정을 반복해서 영생성(永生性)을 획득했다. 목조건물이 갖는 시간에 대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특별한 건축방식이다. 일본에 갈 기회가 생기면 꼭 들러보고 싶다.

 

나만의 장소는 어디인가?

사실 높이와 크기로만 따진다면 과거 궁궐은 지금 내 집 아파트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나는 이미 세상에서 가장 큰 집에 살고 있는 셈이다. 난 집에 관심이 많다. 건축을 하셨던 아버지 덕분에 수십 차례의 새집 이사를 했던 경험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주변에 새로운 건물을 짓기 시작하면 꼭 한 번 가서 둘러본다. 집이 완성될 때까지 여러 차례 다니면서 변화를 살피는 것이 재미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내 집을 꿈꾼다. 여러 차례 건축박람회를 다녀왔고, 각종 책과 자료를 통해 수많은 집을 살펴봤다. 모두 내 집을 짓기 위한 준비이기도 하다. 하지만 용기 있게 자기 집을 뚝딱 짓는 사람들에 비하면 참 지지부진이다. 특유의 눈치 보기 탓도 있지만 나만의 장소를 만나지 못함이기도 하다. 가장 좋은 집이 아니라 나만의 집(아니 우리만의 집). 올해는 찾을 수 있을까?

2017115일 이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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