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다른 색들

짱구쌤 2016. 12. 6. 23:09

 

좋은 글을 어떻게 씁니까?

[다른 색들 / 오르한 파묵 / 민음사]

 

비법은?

노벨상 수상자인 저자가 많이 듣는 질문이란다. 똑 부러지게 답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읽은 바로는 다음의 세 가지라 할 수 있겠다.

1. 엄격한 규율 : 베스트셀러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끼도, 조정래 선생도 같이 한 말이다. 글 쓰는 장소를 정해 놓고 일정한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한다. 하루 여덟 시간 이상을 쓰는 글 감옥에 스스로를 가둔다. 쓰고 고치고, 쓰고 고치고를 반복한다.

2. 첫 문장 쓰기 : 첫 문장을 잘 시작하면 글이 비교적 술술 써내려 간다. 하여 저자는 진짜 멋진 구절이 떠오르면 일부러 아껴 두었다가 아침 첫 문장을 그것으로 시작한단다.

3. 서성거리기 : 아주 특별한 비법인데 난 충분히 이해가 간다. 글이 잘 안 써지거나 그냥 습관적으로 방안을 서성거린다. 냉장고를 열어보고 화분을 들여다보고 창밖 풍경을 본다. 그러다가 어느새 앉으면 글이 써진다. ‘멍 때리기. 대가의 글쓰기 방식이 특별하지 않아서 마음이 놓인다.

 

각인된 추억

저자의 다른 책 [이스탄불]에서 마찬가지로 추억에 대해 말한다. 세세하다. 가장 압권은 형과 [인물 카드] 놀이를 한 기억인데, 어떻게 그렇게 소소한 기억들까지 들춰내는지 그저 놀랍다. 카드의 인물, 형한테 잃었을 때의 기분, 주변 인물들의 반응 등 캠코더 수준의 기억력을 가진 사람임에 분명하다. 그러고 보니 나에게도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 스틸 사진처럼 남아있다. 다섯 살 무렵 햇살 좋은 날, 흰 고무신을 깨끗하게 빨아서 툇마루에 말려 놓고 방으로 들어가는 장면, 기찻길 옆에서 철로 위에 10원 동전이나 못을 올려놓고 저만치서 기다렸다가 달려가는 모습, 중학생 때 눈 오는 날 아버지랑 저수지 낚시에 갔다가 눈을 녹여 라면을 먹었던 일 등은 어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난다. 저자의 추억은 빛깔로 소환된다.

 

다른 색들

이 책은 기억의 어느 부분이 나와 닮아 있는 당신이 위로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젊은 날 거리에서 투쟁가를 부르던 당신, 어느 결에 부모가 되어 좋은 세상을 아이에게 열어주려고 오늘도 열심히 일하는 당신에게 내가 드리는 작은 꽃다발이다. 지나온 시간들을 무채색으로 폄하했던 이들을 단호히 거부하며 색색의 빛나는 시간들을 되돌려 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림 이야기를 쓰게 되었다. 당신은 예전에도 아름다웠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당당하게 살아갈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을 기억하는 우리가 있기 때문이다. [내 영혼의 그림여행/정지원]

과거의 빛나는 시절도 시간이 지나면 무채색으로 기억된다. 스스로야 그럴 수 있으되, 공동체에 기여했다고 믿었던 청춘의 시절을 쉽게 폄하하는 무리들을 보노라면 서글퍼진다. 오르한 파묵은 그렇게 소환된 기억들에 색을 입히고 제 빛깔을 찾아준다. 한때의 영광을 간직한 채 쇠락해가는 천년 도시 이스탄불을 아쉬워하면서도 그 의젓함과 당당함을 감추지 않는다. 서구가 갖는 형형색색 이면을 들추고 먼지를 뒤집어쓰고 시간을 이겨낸 것들을 잊지 않는다.

100만 촛불은 빛나던 시절을 무채색으로 폄하 받던 이들의 재등장이다. 한 번도 역사를 피하지 않고 맞섰던 이들의 진군이다. 그래서 쉬이 꺼지지 않는다.

 

이것도 나라냐?’의 불편함

신영복 선생은 변화는 변방에서 이뤄진다고 했다. 오르한 파묵은 변방이었기에 가능한 것들을 이야기한다. 중심부에 주눅 들지 않고 자기 이유로(自由) 사는 것이다. 변방에 사는 자들의 넋두리는 비슷하다. 자기 도시를, 직장을, 동료를 업신여긴다. 중심부에 대한 심한 콤플렉스다. 파묵은 그래서 자기 도시를 혐오하는 것이 가장 큰 불행이라고 했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작금의 사태를 두고 이것도 나라냐?’라고 했다. 분노와 실망의 크기를 가늠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가 빠진 자기혐오이기에 불편하다. ‘군부독재 신식민지였을 때도, 세계 10위권의 허망한 선진국이었을 때도, 허접한 지도자를 둔 조롱거리의 나라에서도 우리는 멈추지 않았다. 그것이 오늘,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시민혁명의 나라를 만들어가고 있다.

2016126일 이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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