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108디아스포라 기행-서경식

짱구쌤 2013. 1. 13. 21:34

 

타자(他者)에 대한 상상력

[ 디아스포라 기행 / 서경식 / 돌베게 ]

 

 

15년 전 그때와 너무 똑같았다. 얼마 전 가족여행으로 다녀온 일본은 그동안 멈춰있는 듯 했다. 거리, 집, 호텔, 표정.. 그때는 모든 게 신기했다(첫 해외여행) 첨단의 전자 제품, 세련된 자동차, 정갈한 거리와 빈틈없는 서비스는 그간 일본에 가졌던 부정적 편견을 일견 바꾸게 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신기하게 심드렁한 나를 보았다. 대신 사람들이 눈에 들어 왔다. 골목길과 가정집 지하철에 오르내리는 시민들, 서빙하는 노인들까지.. 장기불황과 동일본 지진의 여파 등 일본을 설명하는 조건 탓도 있겠지만 내 시선의 위치가 많이 변한 것 때문이리라. 오래 전 읽었던 이 책을 꺼내 일본에 가져간 이유가 있다. 저자가 런던의 한 허름한 호텔에서 책을 읽으며 ‘디아스포라’를 생각하듯 나도 도쿄 한복판에서 그것을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재일조선인이다. 1925년 할아버지가 일본에 징용 간 이후 일본에서 나고 자란 재일교포인데 국적은 한국이지만 통상적으로 민족을 대표하는 조선을 국적과 관계없이 사용하고 있는 지라 재일조선인이라 부른다. 사실 저자보다는 그의 두형이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장기 복역한 사건이 더 잘 알려져 있다. 몇 년 전 한 대학의 교환교수로 국내에 거주하며 일간지에 연재글을 쓰기도 하였다. 지금은 다시 일본에 돌아가 도교경제대 교수로 일한다. 일본 에세이상을 수상할 정도로 뛰어난 문제를 자랑하는데 1995년 그 상의 수상소감에서 재일조선인이 ‘빼어난 일본어 구사’를 이유로 수상한 데 대한 착잡한 심사를 밝히기도 하였다. 90년대 저자를 알게 된 것은 그의 명저 [나의 서양미술순례]를 통해서이고 아까 그 이세이상을 안겨준 [소년의 눈물]로 애독자가 되었다. 저자는 전 세계를 순례하며 미술관탐방과 공연관람을 한다. 음악과 미술에 대한 뛰어난 감각과 식견 덕에 일본 방송국의 좋은 서양예술길잡이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우리 나라도 요즘 여러 나라 탐방 프로그램이 많이 늘고 있지만 일본 방송은 지나치다 싶을 만큼 유럽의 문화에 열광한다. 음식, 미술, 예술가, 건축, 정원 등 세세한 분야에 까지; 카메라를 들이대며 보도한다. 저자같은 길잡이가 안내하는 것은 물론이다. 나도 그의 서양미술순례기를 통해 어렴풋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디아스포라, 원래는 ‘팔레스타인을 떠나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을 뜻하는 말이지만 지금은 ’이산(離散)의 백성‘을 가리키는 일반명사로 쓰인다. 저자는 자기 땅에서 추방당한 사람들(자의든 타의든), 조국을 떠나 떠도는 사람들을 통칭한다. 우리로 따지면 약 800만의 재외교포들이다. 고국에도 그 나라에도 정체성을 갖고 있지 않은 근대의 산물인 디아스포라의 시선으로 근대와 근대 이후를 살피는 책이다. 물론 예술 작품과 예술가가 그 주요 대상이다. 광주, 런던, 찰츠부르크, 카젤 등을 다니며 관람한 공연이나 미술 작품의 주인공들은 모두 저자와 같이 디아스포라 들이다. 늘 누구로부터 배척당하고 외면 받아 온 그들이 생산한 예술은 그래서 낯설지만 저자에게는 익숙하다. 수용소 앞에서 유대인 증명서를 든 자화상 그림에서 주인공의 불안과 상실을 읽는다. 저자가 소개하는 예술가와 작품은 일체의 편견이 없다. 유명세에 기대어 평가하지 않고 세간의 평가를 앞세우지 않는다. 오직 그의 시선으로 작품을 읽는다. 그래서 무명작가들의 작품도 훌륭한 작품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시대를 반영하고 주변에 기울인 관심을 찾으려 애쓴다. 그 자신 일본에서 이방인으로 주변인으로 살며 받아온 상처를 다른 이의 작품에서 발견하고 스스로를 위안한다. 그리고 진심으로 그들을 이해한다. 그의 글이 현란한 문체로서가 아니라 진정성으로 읽히는 까닭이다.

 

 

저자가 국내에 2년 남짓 거주하며 쓴 글에서 일본에서와는 달리 역동성과 활기를 갖고 있던 한국이 정체되었음을 느꼈다고 했다. 87년 민주항쟁 이후 한국사회가 급격히 노쇠해 가는 것이 일본을 닮고 있어 우려된다고도 했다. 내가 일본을 다시 방문해 느꼈던 답답함을 그도 우리 땅에서 느꼈다는 것이 신기했다. 내 삶의 반영일 것이다. 저자는 아마 읽어보지 않았겠지만 신영복님 [변방을 찾아서]는 이 책과 메시지가 비슷하다. 중심부에 진입하지 못한 수많은 “변방이 창조의 산실”이라 말한다. 불안정하고 깨어 있음으로 활력과 에너지가 생기는 변방은 다만 “중심부에 대한 콤플렉스를 갖지 않을 때 변방의 힘이 나온”다고 하였다. ‘디아스포라’와 ‘변방’이 주목 받는 이유이다.

 

 

사실 일본에서는 몇 장 읽지 못하고 돌아왔다. 연이어 떠난 [작은학교교육연대] 겨울 워크숍에서 나머지를 읽었는데 그곳에 모인 수많은 ‘디아스포라’와 ‘변방’에서 우리 교육의 희망을 엿보았기에 이 책의 마무리로는 그 이상이 없었다. 타자에 대한 이해와 상상력은 저자의 일관된 시선이다. 그가 어떻게 그런 시선을 갖게 되었는지 살필 좋은 책 [소년의 눈물]을 다시 읽어야겠다.

2013년 1월 13일 이장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