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82천안함을 묻는다-강태호

짱구쌤 2012. 12. 31. 10:04

 

역사적 기억상실증

[ 천안함을 묻는다 / 강태호 엮음 / 창비 ]

 

2010326. 922. 대한민국 해군 제2함대 포항급 초계함인 1200톤 천안함이 서해 백령도 해상에서 침몰한다. 46명의 해군 장병이 사망한 이 초대형 해난 사고는 좌초, 피로파괴, 내부 폭발, 외부 폭발(어뢰 또는 기뢰)설이 난무한 가운데 민군합동조사반이 가동된다. 실종자를 구조 중이던 해군의 한주위 준위가 사망하고 수색 중이던 저인망어선 금양98호가 침몰하는 2차 사고가 터지며 점점 미궁에 빠진다. 초기의 신중론을 펴던 정부가 515일 북한산으로 추정되는 1번이 씌여진 어뢰 추진체가 갑작스레 인양되면서 북한 잠수정에 의한 어뢰 폭침으로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어 6월 지방선거를 10여일 앞둔 524일 대통령은 담화문을 통해 남북경제협력 중단을 골자로 한 대북 강경책을 발표하고, 65일 유엔 안보리에 천안함 사건을 회부하였고 79일 마침내 천안함 공격 주체가 명시되지 않은 안보리 의장성명이 발표된다. 여기까지가 2년 전 잘못했으면 한반도를 전쟁의 소용돌이에 몰아넣을 수도 있었던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서 알려진 팩트이다. , 지방선거는 천안함 역풍으로 해석될 만큼 집권여당에 패배를 안겨주었다.

 

이 사건을 처음부터 집중 취재한 한겨레신문의 강태호 기자가 각계의 전문가들의 발표된 기고문과 칼럼을 엮어서 천암함 사건에 대한 의문과 쟁점을 정리한 책이다. 정부 합동조사반의 천안함 사건 보고서를 제외하면 가장 방대한 민간 보고서라 할 수 있다. 사실 천안함 사건은 내 기억 속에서 존재하지도 않았다. 당시의 뜨거운 논쟁에 비추어보면 참 이상할 만큼 빨리 잊혀져 버렸는데 비단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이렇게라도 스스로를 위로해야한다. 정말이지 까맣게 잊어먹고 있었으니..) 얼마 전 읽었던 [이것은 과학이 아니다] 책에서 여러분의 헛소리 탐지기는 켜두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이 장치는 언제나 경고 상태로 설정해 두는 편이 좋다.”는 저자의 강력한 권고가 없었더라면 결코 다시 끄집어 내지 않았을 것이다. 책은 천안함 사건에 대한 의문과 쟁점이 주를 이루며 총체적 부실과 출구전략까지 파고든다. 과학적 준거에 의한 쟁점 서재정(존스홉킨스 국제대학원), 이승헌(버지니아대 물리학과)교수 등이 제기한 것들로 민관합동조사단(이하 합조단)이 발표한 결과에 대한 반박 내용이다. 1)사건 발생시점과 장소의 변경 이유 2)어뢰추진체가 북한산이라는 증거가 된 수출용 카다로그 존재 여부 3)어뢰추진체의 ‘1글씨가 고온폭발에도 멀쩡한 이유 4)어뢰추진체와 천안함 함미에 남은 흡착물질의 불일치 5)선체 스크류의 휘어짐 6)버블제트에 의한 폭발을 증명한 물기둥 관측 여부 등이 쟁점인데 이중 3번부터 5번까지가 과학적 논박의 대상이다. 각각의 사안에 대해서는 많은 자료와 시뮬레이션이 필요한 부분이므로 이 책이나 인터넷 자료를 살펴보면 나름의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므로 이 글에서는 생략하는 게 좋을 듯 싶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몇 가지 파편적 지식으로 진위나 입장을 선택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고 싶다. 합조단 발표에 대해 반박하는 합리적인 문제제기에 대한 마녀사냥식 고소와 여론몰이, 유엔 안보리에 신중하고 공정한 처리를 요구한 참여연대의 서한문에 대한 보수언론과 권력집단의 무차별적인 탄압과 린치, 사태 예방과 재발방지를 위한 사회적 대책마련의 부재 등은 열린 사회로 나아가기에는 너무도 부족한 우리 사회의 성숙지수를 보여준다.

 

46명의 아까운 청춘들이 차가운 바다에서 넋을 잃었다. 이른바 스모킹 건(smoking gun. ‘움직일 수 없는 결정적 증거라는 뜻으로 코난 도일이 스모킹 피스톤이라는 표현을 쓴 뒤로 일반화 되었음)이라는 1번 어뢰추진체의 발견으로 일단락 될 것처럼 보였던 논란은 오히려 더욱 증폭되고 있다. 순간은 모면할 수 있지만 영원히 묻어둘 수 없는 것이 과학적 진실이다.(평화의 댐과 황우석 사태가 잘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통상적으로 대규모 해난 사고는 2-3년의 충분한 조사를 통해 최종 결정을 내린다. 이에 반해 2개월 만에 발표된 천안함 사건의 결과는 과학적 준거의 충분한 받침을 받기에는 너무 허술하다는 게 과학계의 중론이다. 가장 정확한 원인 규명만이 적합한 대책을 가능케 하기에 보다 광범위한 재조사가 필요하다.

 

북한경제의 중국화”, 북한 연구자들의 공통된 우려 지점이다. 금강산 피격, 천안함 사건 이후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급격히 대체하고 있는 북한경제에 대한 중국 편입 현상은 이념이 아닌 실제로 손해보고 있는 우리경제의 현실이다. “Everything but Clinton!” 부시대통령이 전임 클린턴의 모든 정책을 반대했었다는 이 말은 우리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Everything but Roh. 참여정부에서 존재했던 NSC(국가안전보장회의)의 해제로 국가총괄조정능력이 현저히 낮아졌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육군과 재래식 무기 위주의 국방개혁안이 육해공군 균형 발전과 군현대화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선체는 인양되었지만 실체는 침몰했다어느 언론인의 표현이다.

 

이제 정말 심각한 나의 기억상실증을 실토해야겠다. 20101123일 연평도 포격, 20111217.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천안함 사건 이후 한반도의 정치 지형을 바꿀만한 이 큰 사건이 참 낯설다. 2년 사이에 벌어진 일들이 마치 역사적 기억상실증이라도 걸린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잊혀진다. 그게 나만의 노화현상때문이라면야 100원짜리 화투로 치료에 나설 것이지만, 사회적 현상이라면 다같이 정신차려야 한다. 역사를 망각하면 반드시 준동하는 것들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열린 사회의 적들이다.

2012816. 이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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