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75십자군이야기-시오노 나나미

짱구쌤 2012. 12. 31. 09:52

 

세상에 옳은 전쟁(正戰)은 없다!

[ 십자군 이야기1,2,3 / 시오노 나나미 / 문학동네 ]

 

 

‘올 여름방학은 [로마인 이야기] 15권 전집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우리 나이로 76세의 일본 여류 작가이다. 1970년 이후 이탈리아에서 살면서 일생의 필작인 [로마인 이야기]를 필두로 75세가 되던 작년에 [삽자군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프랑크인 그 누구보다 더 치열하게 서구 문명사를 기록해가는 철의 여인이다. 일본의 모든 문학상을 휩쓸었음은 물론이고 이탈리아로부터 공로훈장을 수여받은 그녀는 이렇게 글을 쓰며 사는 삶을 말했다.

“젊었을 때는 살기 위해 공부하고, 생각하고, 글을 썼다. 하지만 지금은 공부하고 생각하고 글을 쓰기 위해 살아가는 것 같다.”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의 중세 부분에 나오는 키워드는 3가지라고 한다.(쩝,. 뭐 기억이 나여 말이지) ‘카노사의 굴욕’, ‘십자군 원정’, ‘아비뇽 유수’ 이 중, ‘카노사의 굴욕’은 1077년, 로마교황에게 파문을 당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가 용서를 구하기 위해 카노사 성에 찾아가 사흘 낮밤을 빌었다는 사건인데 당시 로마 교황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한 지를 알려준다. 마지막 ‘아비뇽 유수’는 1291년 이래 프랑스에서 로마교황들을 납치해 70년 동안이나 로마가 아닌 프랑스 아비뇽에 머물게 한 사건으로 ‘카노사의 굴욕’과 비교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교황의 권위 실추 이야기다. 이 두사건의 사이에 [십자군 원정] 이 있다.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 교황 우르바누스 2세의 이 한마디에 서구 그리스도인 들은

오리엔트로 십자군 군대를 조직해서 원정을 떠난다. 그리스도의 성지인 예루살렘이 이교도(이슬람)들의 수중에 있는 것을 굴욕으로 여긴 ‘프랑크인’들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1095년에 시작된 1차 십자군이 1291년 예루살렘 옆 근거지인 아코가 함락될 때까지 8차에 걸친 200년, 역사상 가장 긴 [십자군 전쟁]이야기가 시작된다. 총 3부 1,300페이지로 구성된 장편 소설이다. 일본에서의 대학 공부 말고는 일체의 학위나 공식 공부 없이 오직 독학으로 30여년을 발로 뛰며 천착한 집념어린 작가의 기록이다.

1부에서는 앞서 말한 1095년 1차 십자군이 중근동으로 떠나 예루살렘을 탈환(프랑크인의 입장에서는)하고 십자군 국가를 건설한다. 중세의 당당한 기사를 앞세우고 수만의 기병, 보병이 갤리선과 범선에 올라타고 떠나는 장면은 화려함 자체다. 수많은 자료에 근거해 그리스도, 이슬람 어느 한편에 치우치지 않고 써 내려간 저자의 호흡 긴 글은 김훈의 표현대로 하면 “서늘하다” 2부는 이슬람의 반격이 펼쳐진다. 이슬람 최고의 영웅 살라딘은 ‘지하드’를 외치며 분열된 이슬람을 하나의 깃발에 묶어 그리스도인들과 격돌한다. 냉철함과 합리성, 그리고 관용을 갖춘 술탄, 그에 맞서는 ‘사자심왕’ 리처드, 프리드리히 2세 황제의 진퇴가 70년 간 펼쳐진다. 3부는 4차부터 8차까지의 십자군 원정, 이슬람의 승리로 귀결된 뒤 후과와 의미를 되짚는다.

 

이 전쟁에는 수많은 인간 군상이 등장한다. 그들 사이의 적대감과 관용이 두 가지 축을 이룬다. 마지막 노예 출신 술탄 바이바르슬 제외하고는 관용을 보여준 쪽은 늘 이슬람이었다. 그리스도교 쪽 주력부대는 3대 기사단인데 유렵의 귀족들로 이루어진 [병원 기사단], 프랑스 귀족이 주축인 [템플 기사단], 독일이 주축인 [튜턴 기사단]이 그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유럽이 아닌 중근동에서 태어나고 정착한 그리스도인인데 200여년 내내 가장 적대적인 프랑크인들이다. 템플 기사단은 증오한다.

“이슬람교도는 악마의 화신이다. 그들에 대한 해결책은 한가지 밖에 없다. 박멸이 그것이다. 죽여라! 죽여라! 그리고 만약 필요할 때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면서 죽는 것이다.”

같은 기사단이지만 순례자들을 보호하고 치료하는 것이 목적인 병원 기사단은 다르다. 예루살렘에 있는 병원 기사단의 성채 [크락 데 슈발리에]의 회벽에 지금도 써져있는 글귀는 그들의 수준을 보여준다.

“네가 유복한 출신이라면 그것은 그것대로 좋다. 네가 지력을 갖고 태어났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좋다. 또한 네가 미모를 갖고 태어났다면 그것도 좋다. 하지만 그중 하나라도 원인이 되어 네가 오만하고 건방져진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왜냐하면 오만과, 오만의 표현인 건방짐은 너 한 사람만이 아니라 네가 관계하는 모든 사람을 해치고 더럽히며 비속화하기 때문이다.”

1차 십자군 전쟁이후 그리스도의 땅이 된 예루살렘에는 왕이 정해지고 대주교가 파견된다. 그들의 존경받는 왕 보두엥이 죽자 이슬람 측에서는 지금이 침공의 적기라고 술탄을 부추기자. 술탄 누레딘은 말한다.

“프랑크인들은 그들이 경애한 뛰어난 군주를 잃은 슬픔에 빠져 있다. 나는 그 틈을 노리는 짓은 하지 않겠다.”

 

“시대가 공유하는 신념이 역사 위에 펼쳐 놓은 광기는 장관이다.”-김훈

소년 십자군의 광기가 절정이다. 잇따른 원정의 실패로 절망에 빠진 프랑스에서 일군의 소년들이 십자군을 결성해서 파견하자고 아이들은 모은다. 수많은 10대의 소년들이 모여서 치른 광기의 결과는 집을 나가 불귀의 혼이 되어버린 아들을 슬퍼하는 부모들의 통곡이다. 나면서부터 이슬람에 대한 적대감만을 교육 받아온 중세 유렵 소년들이다.

 

좌절을 경험한 적 없는 사람이 그렇듯이 자신이 하는 일에 의심을 품지 않는 탓에 자신과 다른 발상을 하는 사람의 진의를 상상하지 못한다. 때를 놓치는 실수는 실로 작은 것이다. 성전(聖戰)과 지하드(jihād)는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에서 칭하는 성스러운 전쟁의 다른 이름이다. 성전은 십자군 전쟁 이후 정전(正戰)으로 변화하지만 세상에 정의로운, 옳은 전쟁이 존재할까? 세상에 맞을 짓은 없고 해야 할 전쟁은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얻는 데에 인류는 너무 큰 댓가를 치르고 있다. 역사는 지속된다.

2012. 6. 24. 이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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