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

짱구쌤 2018. 1. 10. 12:08

 

 

생각할 자유를 잃지 않는다

[, 건축가 안도 다다오/안도 다다오/안그라픽스]

 

독고다이(特攻隊) 건축가

우리 못지않은 학력주의가 판치는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하지 않고 건축가로 성공한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전직 프로복서인 저자는 순전히 독학으로 건축을 익혀 지금은 일본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건축가가 되었다. 독학을 원했다기보다는 집안 사정도 넉넉하지 못했고 어릴 적부터 공부를 하지 않은 탓에 학습 능력도 딸려서 대학 진학은 포기했다고 말하듯 독학은 부득이하게 택한 길이었다. 지금은 비교적 흔한 노출콘크리트 건축기법을 일반화시킨 것에 대해서도, 적은 예산과 협소한 부지, 넉넉하지 않은 공기로 인한 불가피한 선택인 것 같았다. 저자는 자신의 조건을 탓하지 않고 강인한 의지로 돌파구를 만든 특공대였다. 프랑스의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를 책으로 접하고 망설임 없이 7개월의 유럽 건축기행을 감행한 것, 20대에 건축사를 차려서 맨땅에 헤딩하듯 헤쳐나간 것도 그렇다. 그의 수많은 걸작들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것은 데뷔작, 스미요시 나가야라는 가정 주택이다. 3.6미터. 길이 14미터의 비좁은 대지에 지은 2층 콘크리트 박스형 주택은 건축 당시의 엄청난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를 나타내는 대표작이 되었다.

문제는 이 장소에서 생활하는 데 정말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주거란 무엇인가 하는 사상의 문제였다. 이에 대하여 나는 자연의 일부로 존재하는 생활이야말로 주거의 본질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제한된 대지이기 때문에 냉혹함과 따뜻함을 두루 가진 자연의 변화를 최대한 획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최우선시하고 무난한 편리함을 희생시켰다.(88)

 

내버려 두는 공간이 필요하다.

항간에는 개성을 키우는 교육 개혁 이야기가 종종 들리는데, 어린이의 개성과 자립심을 키우자는 발상과 위험하다 싶은 것은 전부 배제하고 철저히 관리된 환경에서 보호하자는 발상은 완전히 모순되는 것이다. 유리가 깨지면 위험하다는 것도 모르고 자라는 아이는 자기 관리 능력을 체득할 수 있을까. 그런 과보호 조건에서 과연 살아 있는긴장감, 스스로 뭔가를 궁리해서 타개하려고 하는 창조력이 키워질 수 있을까. 요즘 어린이들의 가장 큰 불행은 일상생활 속에서 제 뜻대로 뭔가를 할 수 있는 여백의 시간과 장소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315)

요즘 학교에서 많이 하는 고민과 닿아있다. 잘 만들어진 교육과정, 편리하고 안전한 교육환경은 아이들을 잘 기를 수 있나? 개인적으로도 가장 좋아하는 것은 자유시간과 공간이다. 함께 있는 시간과 공간도 필요하지만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은 조금 헐렁한 그 무엇이다. 아이들에게 놀 시간과 공간이 충분한 지, 나는 그것을 편안하게 보아줄 여유가 있는지 자꾸 물어보아야 한다. 이제 전남에서도 학교 건축을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되었다. 100년을 이어온 전통적인(아니 근대적인) 학교 건물도 이제 좀 바뀔 때가 된 것이다. 순천에 만들어진 기적의 놀이터는 그런 면에서 좀 특이하다. 기존의 놀이터가 안전만을 염두에 둔, 아니 오히려 안전을 배울 수 없는 곳이었다면 이곳은 약간은 위험한, 그래서 안전을 잘 배울 수 있는 아이들의 놀이터로 만들었다. 학교에서도 해보고 싶은 일이다.

 

생각할 자유를 잃지 않는다.

이 작가의 가장 큰 미덕을 말해주는 한마디이다. 왜 하는지, 무엇을 위해 필요한지를 끊임없이 묻고 답하는 과정이다. 교회가 왜 존재하는지는 보여주는 빛의 교회’, ‘물의 교회도 그렇고 어린이들에게 내버려두는 공간을 돌려주자는 효고현어린이회관’, 사찰은 자기를 성찰하는 곳이라는 믿음을 보여준 진언종 미즈미도의 연꽃연못 밑 법당도 그러한 건축가의 생각할 자유에서 나온 작품이다. 작가는 일본 문화를 자랑스러워한다. 누구나 자신의 문화를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내 문화만이 그렇다라고 하는 편협함이 내 안에 똬리를 틀고 있지는 않는지.

자연을 사랑하는 섬세하고 우아하고 고운 감성이 있는 한편, 자연에 의지하면서도 웅대하고 대담한 세계를 개척하는 창조력, 상반된 감성이 동거하고 길항하는 웅숭깊음에서 나는 일본문화의 개성과 풍요(383)

일본여행의 기회가 다시 생긴다면 꼭 가봐야 할 곳이 몇 군데 생겨났다.

책은 재미있다. 무엇보다 좋은 건축물이 눈을 즐겁게 한다. 제주도에 있는 안도 다다오의 두 작품은 실려 있지 않지만(출간 이후 건축) 작가의 생각을 그대로 드러낸 글이 편안하다. 그의 평탄하지 않았을 인생여정이 많은 위안이 되었다.

무엇이 인생의 행복인지는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다. 참된 행복은 적어도 빛 속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빛을 멀리 가늠하고 그것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는 몰입의 시간 속에 충실한 삶이 있다고 본다. 빛과 그늘. 이것이 건축 세계에서 40년을 살아오면서 체험으로 배운 나 나름의 인생관이다.

나,건축가 안도 다다오.hwp

2018110일 이장규

나,건축가 안도 다다오.hwp
0.39MB

'책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 건축가 구마 겐고  (0) 2018.01.23
채식주의자  (0) 2018.01.20
우리는 미래에 조금 먼저 도착했습니다  (0) 2018.01.05
호모 데우스  (0) 2017.12.10
언어의 온도  (0) 2017.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