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그배미’를 아시나요?
[나는 둥그배미야 / 김용택 / 푸른숲 ]
‘배미’는 논을 말한다. ‘둥근배미’는 둥근모양의 논이라는 뜻이다. 모양에 따라 버선배미, 자라배미, 장구배미로 부를 수 있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 선생님이 자신이 가르치던 시골 아이들을 논으로 데려갔을 때 받은 충격으로 쓰게 된 책이라고 한다. 두렁이나 물꼬처럼 시골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던 말들을 아이들이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고 하니 도시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야 말해서 무엇하랴. 하루 세끼 먹고 있는 밥 이야기를 하지 않고서야 교육이니 삶이니 하는 말이 가당치나 하겠냐고 말이다.
순천인안초 우리 학교가 [흑두루미 논가꾸기 프로젝트]를 진행 한지도 이제 이 년째다. 순천만에서 유기농 논을 한 배미(네모배미?) 빌려 허투루 농사를 지어 보았던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슬슬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있다. 모내기와 벼베기는 물론이고 화전 부치기, 논생물 관찰, 벼 훑기, 껍질 벗겨 냄비 밥하기, 짚 새끼 꼬기 등 일 년 간 해온 대부분의 활동은 아이들이 생전 처음 접해본 일들이었다. 하여 논에 맨발로 들어가는 일을 오물 밟듯 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논에 가는 경험이 늘어가면서 아이들이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벼에 붙은 붉은 왕우렁이 알을 보았을 때 탄성, 비오 는 날 논두렁을 걸으며 들었던 빗소리, 그 비를 다 맞고 서 있는 왜가리의 고독(아이들 표현이다), 가을에 거의 자란 벼에게 들려주는 노래 공연은 내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이었다. 순수했고 진지했다.
고백하자면 이 모든 활동이 나에게도 첫 경험이었다. 3학년 선배 선생님이 먼저 한 고백처럼 어줍잖은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우리 같은 촌놈(?)들에게는 아주 귀중한 배움이었다. 대학 다닐 때 방학 때 잠깐 씩 다녀오던 농활을 제외하고는, 시골을 처갓집으로 두어 가끔 들러 돕는 시늉을 하는 얼치기 사위노릇을 제외하고는 논은 나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았었다. 우리 아이들보다 훨씬 논가꾸기가 재미있었고 절박했던 사정이 거기에 있다. 대부분을 시골 작은 학교에서 보낸 선생이 자연과 시골을 잘 알지 못하는 불편한 진실, 교육과정이 전국 어디나 거의 비슷하게 짜여질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흑두루미 논가꾸기 프로젝트를 하기 전에 아이들은 좋은 책으로 먼저 그 활동을 접한다. 작년에 아이들과 읽었던 [옛날 스님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와 [벼가 자란다]도 그랬지만 이번에 읽은 이 책 역시 시골 출신의 교사가 지은 책이라 아이들의 눈높이에 밪춘 글과 그림이 제격이었다. 논이 주는 이로움, 논에 사는 생물, 논에서 벼가 자라는 과정, 그리고 가장 중요한 농사를 지으며 사는 사람들의 풍경이 그림 작가 신혜원의 발품과 수고스러움 때문에 정겹게 그려져 있다. 이제 다음 주부터 논으로 나갈 것이다. 올해 농사가 기대되는 것은 작년에 해봤던 일이라 생긴 자신감 때문이다. 아이들과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들도 나도 설렌다.
김용택 선생님이 교단을 떠난 지도 몇 년이 되어 간다. 작품 활동과 강연 등으로 바쁜 일상을 보낼 터지만 아이들과 섬진강 가에서 [콩, 너는 죽었다]를 쓰던 시절이 무척 그리울 것이다. 비루한 일상은 늘 탈출을 꿈꾸게 하지만 그 일상이 주는 소중함은 나이 들수록 더욱 간절해진다. 시베리아를 떠난 흑두루미가 해마다 600마리 이상 찾아오는 순천만의 논에서 그들의 먹이도 만들고 우리의 양식도 가꿔보는 논가꾸기 활동은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꿈꾸는 우리 학교의 이상이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아름다운 이상을 품고 조금씩 촌놈이 되어가는 영광을 갖게 해준 이는 우리 학교 과학 선생님, 박향순이다. 그녀로 인해 이 책도 읽었고 농사짓는 시늉도 내보고, 에너지도 아끼려 실천중이다. 후배인 그녀가 내 스승이어도 하나 부끄럽지 않다. 오늘은 우리 학교 개교기념일이다. 일요일. 쩝
2013년 4월 7일 이장규
'책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인시공 (0) | 2013.04.28 |
---|---|
클로디아의 비밀 (0) | 2013.04.28 |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 (0) | 2013.04.27 |
125 그리운 메이아줌마 (0) | 2013.04.25 |
123한 권으로 읽는 세계사-오귀환 (0) | 2013.03.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