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행복해지는 일을 하자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 / 유은실 / 창비 ]
그래, 시간이 흐르고 우린 나이를 먹지. 올 가을이면 난 딱 열 살이 돼.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시절을 맞게 되는 셈이야.
말괄량이 삐삐의 말이다. 아니 ‘삐삐로타 델리카데사 윈도셰이드 맥크렐민트 에프레임즈 도우터 롱스타킹’ 이라는 긴 이름을 가진 여자 아이가 한 말이다. 삐삐의 표현대로라면 난 지금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시절을 맞는 열 살짜리 3학년들을 가르치고 있는 행복한 선생이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어제의 일이다. 순천만으로 가는 올 첫 번째 생태학습 날, 생태해설사 선생님과 긴 뚝방길을 걸으며 [순천만에 사는 동물] 공부를 했다. 기대했던 동물을 만나지는 못했으나 그들의 흔적을 너무 많이 만난 우리는 그 어떤 것보다 진지하게 공부했다. 만난 것은 똥, 너구리의 무더기 똥과 고라니의 콩알 똥을 그렇게 좋아하는 아이들을 이전에 본 적이 없다. 오래된 것, 아침에 싼 것 등 갖가지 똥을 관찰하며 코빼기도 비치지 않은 너구리를 상상하는 것이다. 춥지 않은 거센 순천만의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이런 영혼들과 사는 것에 감사했다.
어릴 적 일요일 아침 텔레비전에서 본 삐삐는 참 재미있었다. 저자 유은실은 나처럼 처음 삐삐를 만났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 책의 작가인 린드그렌의 모든 것을 사랑하며 자란 오타쿠(매니아의 일본식 표현)다. 린드그렌 여사의 책 34권을 모았으며 그것에 감동하여 드디어 이 책을 쓰게 된 것이니 진정한 삐삐 키즈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식품영영학을 전공한 그녀가 진로를 바꿔 다시 문학을 공부하고 낸 이 책은 자전적 이야기로 가득하다. 아빠를 일찍 여의고 엄마와 사는 열 두 살 여학생 ‘비읍’이는 우연한 기회에 꽉 막힌 엄마의 노래방 열창(말괄량이 삐삐)을 듣고 삐삐 마니아가 된다. 린드그렌 여사의 책 7권을 자전거를 사기 위해 애써 모은 용돈 모두를 헐어 사고, 그것도 부족해 헌책방까지 뒤지는 열혈 팬이기도 하다. 약간 소심하지만 속 깊은 비읍이는 속상하거나(자전거를 사지 않고 책을 샀다고 나무라는 엄마와 다툰 일) 비밀 일기를 쓸 일이 있으면 린드그렌 선생님께 편지를 쓴다. 물론 부치지는 않는다. 이미 아흔 살을 훌쩍 넘긴 할머니 작가님께 미주알 고주알 넋두리도 하고 제법 어른스럽게 인생 상담도 한다. 저자가 그랬을 법한 성장기를 그대로 담는다.
작가는 린드그렌의 주요 저작들을 소 제목으로 하여, 가령 [산적의 딸 로냐], [개구쟁이 미셸], [에밀은 사고뭉치], [펠레의 가출], [난 뭐든지 할 수 있어]등의 주요 인물을 등장시켜 비읍이의 심리를 훑는다. 이야기 속 저자로 짐작되는 헌책방 언니는 비읍이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친구이다. 엄마와 싸운 비읍이는 [펠레의 가출]에서처럼 멋지게 가출하고 싶어한다. 그때 헌책방 언니가 말한다.
펠레는 가출을 해도 집에 엄마, 아빠 둘이 남잖아. 그러니까 슬픔을 나눌 수 있지. 하지만 비읍이가 가출하면 집에는 엄마만 남잖니. 한 사람만 남겨 놓고 가출할 수는 없단다. 그건 ‘가출 놀이’의 규칙에 어긋나는 제일 치사한 반칙이야
헌책방 언니는 린드그렌 선생님이 우리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인간에 대한 예의]라고 했다. 열 두 살 비읍이에겐 너무 어려운 이 말을 어렴풋이 알아가는 과정은 참 흐뭇하다. 할머니와 단 둘이 사는 지혜가 생전 처음 타보는 스케이트를 기분 상하지 않게 즐기게 하기 위해 쏟아놓는 비읍이의 천연덕스러운 거짓말로 인해 지혜와도 엄마와도 화해하게 된다. 비읍이는 텔레비전만 너무 좋아하는 엄마가 린드그렌 선생님의 책을 읽었으면 하는 것과 린드그렌 선생님을 만나러 스웨덴에 가고 싶은 두가지 바램이 있다. 린드그렌 선생님이 세상을 떠나 두 번 째 바람은 저절로 사라졌지만, 비록 짧은 시간이이더라도 삐삐 책을 읽게 되는 엄마를 보게 되었으니 해피엔딩이라해도 좋을 듯 싶다.
저자는 평생 자신을 키운 린드그렌의 책들 덕분에 지금 행복하다. 그 일을 하며 꿈도 이뤘다. 내가 요즘 많이 하는 말 “내가 행복해지는 일을 하자”와 많이 가까운 그녀가 부럽다. 만만치 않은 첫 작품 덕분에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아이들에게 말괄량이 삐삐 노래를 가르쳐줘야겠다.
2013년 4월 27일 이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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