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122남쪽으로 튀어1,2-오쿠다 히데오

짱구쌤 2013. 3. 23. 20:33

 

“비겁한 어른은 되지 말아라!”

[ 남쪽으로 튀어1,2 / 오쿠다 히데오 / 은행나무 ]

 

진지함과 명랑함

김윤식이 출연하는 영화는 아직 보지 않았다. 비단 이 영화뿐 아니라 영화보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니 영화가 궁금해졌다. 특히 아이들이 그렇다. 난 이 책을 성장 소설로 읽었다. 12살짜리 초딩 6년 지로가 아버지라는 창을 통해 바라본 세상, 그 세상 속으로 뛰어 들어 커 가는 지로를 보는 것은 참 흐뭇하다. 일본 최고 신인작가상인 나오키 상을 수상한 저자는 ‘진지함’과 ‘명랑함’ 두 가지를 다 획득하는 데 성공한 듯 보인다. 책 읽어주는 라디오에서 듣고 바로 샀는데 두툼한 1,2권을 이틀 만에 다 읽었다. 참 재미있는 소설이다.

 

조르바와 우에하라

주인공 지로의 아버지 우에하라 이치로는 ‘그리스인 조르바’ 만큼이나 자유로운 영혼이다. 대학 때 맹렬 좌익 운동권 핵심이었다가 노선투쟁에 회의를 느껴 무정부주의자, 아나키스트로 전향(?)한 우에하라는 역시 핵심 운동권이었던 ‘잔다르크’ 엄마를 만나 도쿄 한복판에서 전복을 꿈꾸며 살아간다.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며 공무원과 경찰 등 ‘정권의 시녀’만 보면 언성을 높여 공격모드로 전환되며 “아들아! 꼭 학교는 다녀야겠니?” 라며 불온한 선동을 일삼는다. 학교까지 찾아와 수학여행비 비리를 공격하는 아빠 때문에 창피해하는 아들 지로는 안중에도 없다. 6학년 앞에서 부르조아니 피티니 혁명이니, 헤게모니를 역설하며 커피와 콜라는 제국주의의 산물이니 절대 입에 대지도 말라고 강요한다. 이상하게 읽으면서도 그게 크게 걱정되지 않았는데 아들 녀석 지로도 무심하게 넘어간다. 어른들은 어른들의 영역이 있는 거라고..

 

지로의 성장 소설

여탕을 기웃거리고, 사춘기 2차 성징을 자랑하며 여학생의 관심이 싫지 않은 여느 12살 소년과 다를 바 없는 지로는 사랑스런 아이이다. 결국 아버지의 극렬함으로 도쿄를 떠나 남쪽 섬으로 이주한 지로 가족은 전기도 쓰지 않고 푸세식 화장실에서 폐가를 고쳐 쓰는 불편함을 겪지만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고 즐겁다. 어깨를 내려놓고 나서야 비로소 이제껏 잔뜩 힘이 들어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개발업자와 지역 토호에 의해 지로의 집이 허물어져 가고 공권력에 항의하던 옛 투사, 부모님은 연행된다. 까칠하던 큰 누나 요코는 무모하고 무례한 아빠의 진정을 알게 되고 막내 모모코는 부쩍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에 지로의 시선이 따라다닌다. 지로가 보는 학교, 교사, 어른들.. 세상은 조금씩 베일을 벗고 알 것 그대로로 다가선다. 하여 리런 생각도 한다. “분명 이 세상에는 흑백을 분명하게 가리지 않는 게 더 좋은 일도 있는 것이다.”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교육

본시 선생인지라 글 속에 나오는 학교와 교사는 언제나 관심 일번지다. 도쿄의 학교에서 담임선생님은 착한 분이지만 학교의 비리를 파헤치는 지로 아빠는 짐처럼 성가시다. 그런 이유로 지로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학교는 지로를 멀리한다. 새로 전학 온 학교에서 지로는 비슷한 상황의 자신에게 문제를 은근히 감추거나 하지 않고 정면으로 다뤄주는 학교와 선생님께 존경의 마음을 갖는다. 다행스럽게 도쿄의 선생님으로부터 뒤늦게 받은 편지에서 지로의 상처는 치유된다. 그때 지로 편에서 맞서 주지 못한 담임샘이 진심으로 사과하고 잘못을 구한다. 힘들지만 그때의 진심을 드러내고 앞으로는 작지만 부정의에 맞서 보겠노라고..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없다. 그래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아파하고 잘못이 있으면 사과하고.

섬의 작은 학교는 일주일에 한번 방송을 통해 마을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이들이 섬의 옛 이야기를 읽으면 사람들은 창문을 열고 듣는다. 지로는 3학년 동생이 읽어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어울리지 않게 가슴이 따뜻해 졌’다고 했다. 마을로 열린 학교, 마을을 배우고 자랑스러워 하는 아이들, 아이들을 함께 키우는 마을. 꼭 해보고 싶은 교육이다.

 

머나 먼 남쪽나라 파이파티로마

좌충우돌하던 아빠는 수배자 신세가 되어 엄마와 섬을 떠난다. 머나 먼 남쪽나라 파이파티로마로 아이들만 남겨주고 가면서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이제 아이들과 그들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여있기 때문이다. 마을이 아이들을 잘 보살펴 줄 것을 믿기 때문이다. 아빠는 지로에게 말한다.

“하지만 너는 아버지를 따라할 거 없어. 그냥 네 생각대로 살아가면 돼. 아버지 뱃속에는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벌레가 있어서 그게 날뛰기 시작하면 비위짱이 틀어져서 내가 나가 아니게 돼. 한마디로 바보야, 바보. 하지만 비겁한 어른은 되지 마. 제 이익으로만 살아가는 그런 사람은 되지 말라고.”

엄마가 덧붙인다.

“남의 것을 훔치지 않는다. 속이지 않는다. 질투하지 않는다. 위세부리지 않는다. 악에 가담하지 않는다. 그런 것들을 나름대로 지키며 살아왔어. 단 한 가지 상식에서 벗어난 것이 있다면 그저 이 세상과 맞지 않았던 것뿐이잖니?”

 

486의 해산과 참회

민주당 486 의원과 당원들이 지난날의 과오를 참회하고 계파 해산을 선언했다. 학생운동 훈장(?)을 달고 새로운 사회의 비전을 보여주기는커녕 구습과 허명으로 허송세월한 지난날을 반성한다고 했다. 어찌 정치인들 뿐이랴. 젊은 시기 짧고 굵었던 순수한 영혼들의 운동 경험을 추억으로 먹고 살며 지금을 애써 외면하려한 우리도 참회해야 한다. 그때의 ‘민중’과 ‘민족’이 구호 속에서만 존재했다고 ‘지나온 시간을 무채색으로 폄하하는 것’도 ‘색색이 빛나는 순간들만 기억’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나부터.

2013년 3월 23일 이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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