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두루미 하늘 길을 두루두루

짱구쌤 2016. 1. 11. 09:38

 

 

두루 두루 울림 있는 세상을!

[두루미, 하늘 길을 두루두루 / 김인철 / 들녘]

 

흑두루미와 첫 만남

5년 전, 처음 흑두루미를 마주했을 때를 잊을 수가 없다. 생태학교를 표방하였지만 정작 감수성이라고는 책에서나 찾을 줄 알았던 백면서생 앞에 흑두루미가 나타난 것이다. 불과 10여 미터 앞에서 먹이 활동을 하고 있는 그 녀석은 정말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꾸루 꾸루 소리 지르며 큰 날개 짓으로 날아오르는 흑두루미를 그렇게 가까이에서 보지 않았더라면 난 지금도 별 죄의식 없이 종이컵을 마구 써대고 있을 것이다. 나에게 흑두루미는 처음으로 자연과 인간의 공생을 깊이 생각하게 만든 고마운 손님이었다. 그 덕분에 해마다 흑두루미가 날아오는 겨울에 찬바람 맞으면서도 일부러 흑두루미를 보러 다니는 취미가 생겼다. 내 삶이 업그레이드된 것이다.

 

김인철과 김종례 부부

공동 저자인 김인철 선생님은 흑두루미 전문가다. 아니 전문가라는 표현은 부족하다. 그는 흑두루미를 진정 사랑하는 사랑이다. 생태교육 강사로 처음 만났을 때부터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순천만을 개발로부터 지켜내서 지금과 같은 대표적인 철새도래지로 자리 잡게 한 산증인이다. 그런 그가 순천만의 철새전문가로 일하고 있는 것이 뿌듯했는데 얼마 안 있어 그만두었다고 해서 참 아쉬웠다. 그 뒤로 흑두루미를 지키는 더 많은 공부와 활동을 하고 있다하고, 이렇게 좋은 책이 결과로 나왔으니 서운함은 그만. 소박하고 진지한 것이 그의 아내인 김종례 선생님과는 많이 닮았다. 구례에 세 자녀와 둥지를 짓고 잘 살고 있다 한다. 한 번 가봐야겠다.

 

생태적 감수성

요즘 교육에서 부족한 것 중하나를 꼽으라면 감수성을 들겠다. 지적으로는 충분한데 공감하는 능력은 많이 부족하다. 잘 감동하고,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고, 생명을 소중히 하는 것은 다 생태적 감수성과 관련이 있다. 단순히 환경을 보호하는 차원을 넘어 자신의 생활 습관을 좀 더 생태적으로 바꾸려면 마음이 움직여야 한다. 그것은 교재나 강의에서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생명들과 자연 속에서 느껴야 가능하다. 학교에서의 생태교육이 체험을 통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순천만의 너른 품에서 자연을 알아가고, 그것들과 교감하면서 아이들은 저절로 생태적이 된다. 그럴 때 아이들은 작은 우리에 갇힌 토끼들이 가여워 보이며, 연못에서 부화한 두꺼비 새끼들이 밟힐 까 걱정되기도 한다. 여름내 자란 벼들이 부디 잘 클 수 있도록 뙤약볕에서 연주를 들려주는 수고도 아끼지 않는다.

 

평화의 메신저

이 책에서 새롭게 안 사실 중 하나. 국제두루미재단에서 2008년부터 북한의 안변평야의 두루미 서식지 보호를 위한 국제협력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 두루미의 주요 도래지였던 안변평야가 1990년대 자연재해(홍수, 가뭄)로 인한 식량감소 때문에 더 이상 살지 못하고 남으로 이동하게 되자, 국제두루미재단에서 북(국가과학기술원, 피산 협동농장)과 연계하여 두루미 서식지 복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주민들의 농업 활동을 우회적으로 돕는 사업인데 유기농 농업을 지원하여 농업 생산량을 늘리고 인간과 두루미 모두에게 이득이 되고 있다고 한다. 남북관계가 교착상태일 때도 꾸준히 전개된 사업이다. 나는 예전부터 통일이 되면 북한에서도 아이들을 가르쳐보고 싶다고 말버릇처럼 하곤 했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워진 지금에는 두루미를 매개로한 남북 협력 사업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흑두루미가 경유하는 남북의 주요 지역 학생들이 두루미 정보를 공유하고 상호 협력하여 보호활동을 하는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참 재미있는 일일 것 같다.

 

두루미처럼 오래, 강인하게

두루미가 80살 넘게 산 기록도 있다. 장수, 평화, 여유의 상징이기도 하다. 시베리아의 추위를 이기고 먼 곳을 날아와 갖은 어려움을 이기고 생을 이어간다. 강인하고 의연하다. 칼바람 부는 겨울 들녘에 조용히 몸을 낮추고, 흑두루미 가족들의 먹이활동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가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구애활동인 듯한 여유로운 날개 짓이라도 보게 된다면 우리의 삶이 경건해진다. 저자들의 외침은 그래서 더욱 절실하다.

오늘 두루미를 걱정하지 않으면, 내일 너무 늦을지도 모릅니다!

2016111일 이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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