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강준만에 질렸다!
[세계문화의 겉과 속 / 강준만 / 인물과 사상사]
하지만 이 책을 세계 백화사전 쯤으로 분류할 수는 없다. 그러기에는 각 각의 글이 갖는 무게가 너무 크다. 14장 108개의 주제는 한 개의 주제 당 적어도 수십 권의 책이 인용되어 있어 그가 강의 시간과 자전거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고는 온통 책만 읽고 글만 쓴다는(일체의 술약속, 각종 모임은 없음) ‘책감옥’이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서두에 말한 이 책에 대한 나의 지지부진함은 순전히 나의 분주함 때문이었다. 각 나라와 관련된 주제는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고 내용은 논문으로도 손색없을 만큼 광범위하고 촘촘하다. 세계 각국의 문화를 소개하면서도 결국은 우리나라와 비교하는 형식으로 이뤄진 글들은 하나의 ‘한국학사전’이라 할만하다. 그가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 던진 문제의식은 실로 놀랍다. 체화된 지역감정, 과도한 정치 불신, 학연과 연고주의, 사회 엘리트들의 이중성 등은 그의 글쓰기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이기도 하다. 그가 미국문화사를 논하든, 한국 근현대사를 집필하든, 대중문화의 겉과 속을 탐구하든, 우리 언론 현실을 일갈하든 한 번도 곁길로 새지 않고 오직 인물과 사상에 집중해온 일관성이 고스란히 이 책에 구현된다. 그리스인의 즉흥성이나 독일인의 치밀함, 일본인의 유아성, 미국인의 계약성을 이야기 할 때도 한국인의 자화상을 떠올린다. 우리를 종합적으로 비교학적으로 알게 한다.
그는 왜 세계문화를 이야기하면서 한국에 천착할까? 대외의존성 113%(국민총소득 대비 무역액 비율)인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관심을 갖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필연적으로 대외의존적인 우리가 다른 문화에 대한 적응력은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 수준이 낮다는 이야기다. 단편적이고 천편일률적이다. 그러다보니 받아들이는 것도 위험천만이다. 하여 저자는 각급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문화간 커뮤니케이션을 좀 더 많이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화간 커뮤니케이션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기 문화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한국이 미국을 바라보는 관점은 양극단을 달린다. 미국의 패권주의를 경계하는 시각은 자연스러우나 미국의 쇠망론부터 아메리칸 드림까지 ‘제2의 미국’을 자처하는 한국에 있어 미국은 각별하다. ‘유러피안 드림’을 부쩍 강조하는 요즘의 추세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우리가 미국과 닮은 다섯 가지를 제시한다. 압축성장, 평등주의. 물질주의, 각개약진, 승자독식이 그것이다. 세계에서 우일하게 백화점에서 ‘뉴욕 라이프 스타일 배우기’ 강좌가 있는 우리나라에서 진보인사들이 반미를 외치면서 미국에 자식을 유학시키는 광경이 낯설지는 않다.
왜 한국인은 노래를 시켜놓고 듣지 않나
왜 일본인과 한국인은 혈액형에 열광하나
왜 미국인과 유렵인은 서로 경멸하나
로마는 목욕탕 때문에 망했나
한국의 보신탕은 야만인가 문화인가
무엇이 일본의 오타쿠 문화를 키웠나
헝가리는 동유럽인가 서유럽인가
프랑스의 문화보호주의는 문화를 보호했나
이제 베를루스코니 현상은 끝났는가
왜 영국인은 섹스눈요기를 좋아하나
왜 미국 쇠망론은 자주 실패하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주제는 계속된다. 내가 아는 한 가장 강력한 인물비평가인 강준만에 질렸다. 알아두어야 할 페이지를 접어 두었더니 책이 너무 두꺼워졌다. 세상은 넓고 모르는 것은 너무 많다. 하여 오늘은 그냥 저자만 탓하기로 하고 손에 잡히는 곳에 책을 꽂는다. 저자의 바람처럼 해외여행의 안내사도 되고 외신 보도의 길잡이도 되어야 하니. 그래도 다 읽고 나니 시원하다.
2012년 11월 15일 이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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