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짱구쌤 2016. 1. 20. 11:40

 

 

언약은 강물처럼 흐르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 돌베게]

 

삶의 은사

“2012년 순천 시골선생에 선뜻 보내주신 [어깨동무] 제호는 지금도 아이들과 함께 힘차게 달려가고 있습니다.”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 새천년관 지하에 마련된 추모 전시실 앞에서 순천 별량초등학교 교사 이장규(49)씨는 고 신영복 교수에게 보내는 엽서에 또박또박 써내려갔다. ‘어깨동무라는 초등학교 학급신문 발행 20주년이었던 2012, 신 교수의 책을 탐독한 이씨는 학급신문의 제호 하나만 써 달라고 신 교수에게 편지를 보냈다. 답장을 기대하지 않았지만 신 교수는 어깨동무라고 쓰인 글씨 세 점을 학교로 보내왔다. “매년 선생님께 학급신문을 보내드렸다. 지난 15일에도 선생님께 학급신문을 보내드리려 편지까지 썼는데.” 이씨는 말끝을 흐렸다.

[한겨레. 고한솔 기자. 1. 17]

창조와 혁신은 변방에서 온다는 선생의 말처럼 성공회대는 서울 변두리에 있었다. 몇 년 전 리영희 교수님의 부음에 달려가 보지 못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던 터라 주저 없이 새벽기차에 몸을 실었다. 청천벽력 같은 선생의 소천 소식을 접하고 오래전 꽂아두었던 이 책을 다시 읽으며 내 삶의 은사를 보내드렸다. 사실 방학 때면 홀로 하는 서울 여행을 계획했기에 올라온 길이었지만 다른 여러 일은 미뤄두기로 했다. 선생의 강연 영상을 보고, 낭독 음성을 듣고, 이 책을 읽으며 하루를 보내는 동안 내가 철들면서 사람구실하기까지 선생의 가르침이 가장 큰 기둥이었음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만남은 꽃처럼 피어나리

저자는 20년의 수형생활을 대학생활에 비유한다. 내안을 비우고 자신의 그릇을 키우는 일이 대학의 일이라면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며 배웠던 나의 사회학이 가능했던 감옥이 선생의 대학이기도 하다. 나의 사회학은 학교에서 아이들과의 만남이다. ‘창백한 손으로 씌여진 책을 통해서가 아니라 내 주위의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삶을 배우고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욕설과 폭력이 다반사인, 결코 배울 것이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죄수들과의 대화와 만남이 사회학이라니? 현상적으로 보여지는 거친 언행과 죄목도 그 사람을 둘러싼 삶과 이야기를 알고 나면 이해할 수 있다. 죄수들에 비할 수는 없지만 울퉁불퉁하고 좌충우돌하는 아이들도 이해 못할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 있는 그대로를 수긍하면 활짝 피어나려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수많은 언약(言約)들이 강물처럼 흘러가더라도 어디에서든 향기로운 꽃처럼 만날 것을 믿는다.

 

사는 이유, 햇볕과 사람들

절망의 그곳에서 선생을 살아있게 한 것은 햇볕이었다고 한다. 하루 두 시간 정도 들어오는 신문지만한 크기의 햇볕을 무릎위에 얹고 있으면 살아야하는 이유가 분명했다.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 가족들과 나누는 엽서편지로 이뤄진 이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함께 의문을 던진다. 어떻게 그곳에서 이런 글이 써질 수 있단 말인가? 날선 긴장과 고립무원의 그곳에서 어찌 이런 품성이 길러지는가? 下方, 한없이 아래로 내려가 자신을 세우고, 누구와도 농밀한 관계를 통해 배우며, 秋霜같이 자신을 성찰하는 우직함. 20년도 전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것들이 새삼 읽히는 부분이 있었다.

가장 이상적인 교육은 놀이와 학습과 노동이 하나로 통일된 생활의 어떤 멋진 덩어리(일감)을 안겨주는 것이라 합니다.-271

소년을 보살피는 일은 천체망원경의 렌즈를 닦는 일처럼 별과 우주와 미래를 바라보는 일이라 생각됩니다.-272

 

이제 홀로 서야 한다

슬픔도 사람을 키웁니다.”-138

늘 의지할 그 무엇에 기대어 여태껏 용케 잘 건너왔다. 삶의 좌표가 되어준 두 은사가 모두 떠나셨다. 리영희, 신영복. 이제 홀로 서야한다. 오십을 바라보며 가장 큰 시련 앞에 선 것이다. 하지만 두려움 보다는 설렘이 앞선다. 두 분의 은사에게 배운 것이 창백한 글이 아니라 실천과 관계였기 때문이다. 선생은 4년 전 무례한 나에게 제호를 보내주시며 촌선생의 건승을 기원해 주셨다. 이제 내가 드릴 차례다. “묻는 다는 것이 파종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자유를 축하드립니다.”

2016120일 이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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