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나라는 여자-임경선

짱구쌤 2013. 6. 6. 20:43

 

생활에 찰기와 윤기가 되어주는 글

[ 나라는 여자 / 임경선 / 마음산책 ]

 

독특한 제목을 보고는 아내가 묻는다. “어떤 여자야?”, “임경선”, “아! 임경선...”

아침에 출근할 때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이웃들에게 책 제목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핸드폰으로 가리고 있기도 했다. 수요일 아침, 한겨레신문의 [ESC]라는 섹션코너는 다소 무겁고 진지한 이 신문의 색깔을 밝고 경쾌하게 해주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 중에서도 임경선의 [남자들]은 단연 기다려지는 글이었다. 전에 김어준과 함께 상담코너에서 보여준 그녀에 대한 ‘주목’이 글발이 아니라 그녀의 사랑과 삶에 대한 태도 때문임을 증명하고도 남았다. 에두르지 않고 비켜서지도 충고를 일삼지도 않은 글은 담백했고 시원했다. 그녀가 만난 남자들의 이야기는 아슬아슬하면서도 재미있었다.

 

선입견과 편견이 없는 글은 그녀의 독특한 이력에 닿아있다.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브라질, 일본, 포르투갈, 미국 등에서 보낸 어린 시절과 그로 인한 열한 번(?)의 전학은 보통 사람들의 사고와는 많은 차이를 당연시 할 수도 있다.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데 익숙하고, 짧은 현재에 충실하게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조건보다는 현실주의자로서의 자존감, 계산 없이 사람을 대하는 삶의 방식 때문이라 생각한다. 자존감에 대한 그녀의 생각은 확고하다. 자존감이란 어디 멀리 위에 있는 것이 아닐뿐더러, ‘나를 사랑하려는 의지’가 아니라 ‘내가 사랑할 만한 사람이 되려는 의지’라 말한다. 자괴감에 빠졌을 때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고 그것을 바탕으로 어떤 실천을 취하느냐, 즉 자존감은 다름 아닌 일상의 자발적인 성실함에 늘 존재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녀의 상담 방식은 구태를 답습하지 않는다. “잘 될 겁니다. 자신을 믿으세요.”나 “나신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즐기세요.” 같은 밑도 끝도 없는 말은 하지 않는다. 우선 자신의 경험을 진솔하게 털어 놓고(심하다 할 만큼) 그렇게 했을 경우 생기는 문제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평소의 꿈을 이루기 위해 직장을 때려 치웠을 경우, 특별한 준비를 하지 않았을 경우 십중팔구 실패하여 좋았던 일을 싫어하게 될 거라 알려준다. 격정적인 연애(유부남이든 한참 연하든)에는 반드시 책임져야할 이별(그것도 아름답지 못한)이 뒤따른 사실도 잊지 않는다. 스스로가 현실주의자라 밝힌 저자는 꼰대처럼 훈계하거나 자신도 모르는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담자로서가 아니라 자신이 과거에 만나 사랑했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고 어루만진다. 나 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이 지점에서 위안을 받고 공감하는 것 같다. 난 특히 찌질한 남자들의 심리 상태, 성장하지 못한 의식을 드러낼 때 화들짝 놀라면서 읽었다. ‘어쩌면 저리도 정확하게 남자들을 이해하고 있을까?’ 아마도 사람을 대하면서 저자 자신도 말했듯이 아무 고려 없이 ‘온전히’ 만났기 때문이리라. 깊이 사랑했고 아파했다.

 

늘 연애하며 살았다는 그녀, 그녀는 지금 결혼하여 아이를 키우며 13년째 한 남자와 살고 있다. 강하고 자유분방하게 보이는 그녀가 암 수술을 네 번이나 받으며 힘겹게 자신을 벼르며 사는 일상은 자존감의 바탕이다.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는 남편이 있지만 ‘속 깊은 이성 친구’가 있어 참 다행이라 말하는 임경선은 ‘상처가 힘이 되기까지’ 삶과 사랑, 일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유쾌하게 보여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여성 저자에 임경선을 추가한다. 그녀의 글은, 아니 삶은 나의 일상에 찰기와 윤기를 준다. 분명하다.

135나라는 여자.hwp

2013년 6월 6일 이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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