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것들 속에서 찾아낸 새로움
[ 아이들이 뛰노는 땅에 엎드려 입 맞추다 / 김용택 / 문학동네 ]
저자는 2008년 8월에 30년 넘게 정든 학교를 떠났다. 당일 아침에 한겨레신문에 실린 퇴임 글에는 살구나무 꽃과 함께 잘 살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기가 자신에게 이야기한다. “애썼네!” 시인은 자신의 모교에서 교직 생활 대부분을 보내며 스물여덟에 직접 심은 느티나무가 아름드리 나무가 되는 과정을 지켜보았으니 더없는 축복을 받은 셈이다.
시인을 아는 사람들 중 그의 ‘욱’하는 불같은 성격을 들며 그의 글과는 다른 말들을 전해 주기도 하는데 “내가 무엇이 되기 위해 열 내고 열 받은 적은 없었”노라는 말을 신뢰하기도 하지만 같은 교사로 아이들과 만나는 마음에 공감하는 바 크기에 오히려 인간적인 매력으로 느꼈다.
자신의 머리통 모양이 궁금하여 빡빡 머리를 민 선생님이 학교에 나타나자 아이들은 머리를 숙여보라 하고 빡빡머리를 만지며 즐거워한다. 기꺼이 모든 아이들에게 머리통을 내어주며 함께 웃으며 행복해 하는 모습은 아이들을 사랑한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인의 시에는 섬진강과 아이들이 주를 이룬다. 둘은 하나이다. 늘 시인의 곁에서 그와 호흡했을 뿐 아니라 그 모두에서 삶의 기운을 얻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배우며 시인으로 산 김용택이 부럽다. 우연히 스물 한 살에 교사가 되어 불현듯 읽은 도스토옙스키 전집으로 문학에 눈을 뜨고, 그렇게 한 겨울을 책 속에서 살다가 찾아온 봄은 전의 그것이 아니었다. 학교가 세상이, 아이들이 다르게 보였다. 불교에서의 깨달음이 이것일까? 그러면서 평생을 이곳에서 아이들과 살며 시를 쓰자고 다짐했다. 그렇게 그 길에서 생의 한 시절이 끝나기를 바란 시인의 염원은 이루어졌다. 부럽고도 부럽다.
시인은 2학년을 사랑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2학년이라 말하기도 한다. 그들이 힘껏 뛰는 전력질주를 특히 사랑한다. 아무런 딴 맘 없이 마구 달리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은 아름다움이 한다. 몇 년 전 2학년을 처음 할 때 어렴풋이 느낀 적이 있다. 지금 내가 맡은 3학년도 그러하다. 어른들의 모습을 살짝씩 보여주기도 하지만 어찌 저럴 수 있을까 하는 사람다움을 훨씬 많이 보여주는 아이들. 정말이지 아침에 만나면 오지고도 오지다. 그런 면에서는 벌써 5년 전에 아이들과 헤어진 시인이 조금은 짠하다.
시인은 교사였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교육현장을 안타까워한다. 승진하고 나면 복지부동하는 관리자들, 승진에 목을 매는 교사들, 그것을 위해 보고서와 논문을 카피하는 부도덕. 공문 때문에 화도 났을 것이고 부조리한 교단에 저항도 했을 것이다. 그런 장애(?)를 넘어서 교사로서, 시인으로 오롯한 삶을 살게 한 힘은 어디에 있었을까? 평생을 노동 속에 살면서 삶의 지혜를 체득한 어머니, 짠 한 아이들 이야기에 함께 눈물 흘리며 욱하며 거친 남편의 허물을 넌지시 모둠이준 고마운 아내, 그리고 섬진강과 아이들이었을 것이다. 시인은 자신에게 있는 세 가지 복을 이야기한다. 교사가 된 것, 농사짓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 문화와 예술을 사랑한 것이 그것이다. 나도 교사이며, 시골 학교에서 가르치며, 어줍찮지만 좋은 책을 늘 만난다. 하여 복 받은 사람이다.
문을 열면 늘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영암에서는 월출산이, 하의도와 암태도에서는 바다와 섬마을이, 지금 순천에서는 순천만의 너른 들판이 펼쳐져 있다. 시인은 매일 보는 산과 강과 마을같이 오래된 것에서 늘 새로움을 찾아낸 것이 큰 기쁨이라 하였다. 낯선 것을 동경하며 떠나기만 하려는 우리에게 진정한 공부는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하였다. 반평생 아이들과 살며 우리 같은 가르치며 배우는 이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모델이 되어준 시인에게 고맙다. 시인의 남은 생도 행복하기를..
2013년 5월 25일 이장규
'책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라는 여자-임경선 (0) | 2013.06.06 |
---|---|
삶의 속도, 행복의 방향 (0) | 2013.06.02 |
장정일의 공부 (0) | 2013.05.24 |
디지털 치매 (0) | 2013.05.18 |
한국사회와 그 적들 (0) | 2013.05.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