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도쿄 산책자-강상중

짱구쌤 2013. 6. 15. 22:51

응시

[ 도쿄산책자 / 강상중 / 사계절 ]

 

“불행한 것은 자신과 도시를 혐오하는 것”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스탄불]의 저자 오르한 파묵의 말이다. 쇠락해가는 이스탄불을 안타까워 하다가 이렇게 상실해 가지 않았으면 자신과 도시에 대한 애정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라 하였다. 터키 탁심광장에서 벌어지는 민중시위에 대해 오르한 파묵이 보내온 신문 기고문에서도 그는 자신이 사는 도시에 대한 사랑을 숨기지 않았다.

 

한 사내가 응시한다. 세련된 도회풍의 이 사내는 늘 정면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다. [고민하는 힘], [살아야 하는 이유]를 지은 자니니치(在日) 강상중이다. 재일 교포 2세인 그는 일본인으로 살다 21살에 서울을 방문하고 나서 강상중이라는 한국 국적으로 살기로 결심한다. 1971년 잘 정돈된 거대 도시 도쿄와 비교해 너무도 낙후한 서울을 보고 이상한 편안함을 느끼고 난 후라 하였다. 감추고 포장하며 살았던 자신의 모습이 발가벗겨진 듯한 해방감, 그 이후 그는 더욱 정진해 한국인 최초 도쿄대 정교수가 되는 성취(?)를 이룬다. 도쿄경제대 서경식 교수와 함께 대표적인 재일 지식인이다. 논리적이며 세련된 말솜씨와 외모로 일본 토론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하여 상당한 인지도가 있다. 어떤 이들은 일본인들이 딱 좋아할만한 경계(위험하거나 위협적이지 않은)에 선 인물이라 말하기도 한다. 알듯 말듯하다.

 

저자는 시골에서 태어나 대학 진학을 위해 도쿄로 온 후 40여년을 그곳에서 지냈지만 여전히 이방인처럼 낯설다. 하지만 그의 책을 읽다보면 그것은 애정이 없거나 적응하지 못해서 생긴 것이 아닌 낯설게 보기의 [낯섦]이다. 와세다대학 시절 학생운동의 토론장이었던 도쿄 뒷골목의 카페와 고서점, 자이니치의 고뇌를 풀었던 신사와 강물, 그리고 새롭게 변모하는 번화가와 구도심의 좁은 골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건물과 풍경으로의 도시가 아닌 그곳에서 만나 사람과 시절의 고민이 함께 추억되는 삶의 공간으로 도시의 모습이 그려진다.

 

지난 겨울, 가족여행으로 도쿄에 가보았다. 십 오년 전 교토에 이은 두 번째 일본 방문이다. 나처럼 시골 사는 사람에게는 도쿄는 서울과 별다를 게 없다. 마천루와 닥지 닥지 붙은 작은 맨션들, 지친 지하철의 시민들은 익숙한(?) 도시 풍경이다. 십 오년 전 교토와 나라를 방문할 때 가장 놀랐던 것은 잘 보존된 문화재와 그들의 장인정신이었다. 수 백 년의 가업을 자랑스럽게 잇고 있는 작은 가게들은 일본이 왜 대단한지를 느끼기에 충분할 만큼 경외스러웠다. 이 책에서도 수산물 시장에서 참치 파는 상인은 “나는 그냥 장사만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문화를 지키고 있다는 생각으로 죽도록 일합니다.”라며 자부심을 드러낸다. 부러운 모습이다. 전에 일본 학교를 방문할 때 그곳에서 추리닝을 입고 땀 흘리며 아이들을 가르치던 교사는 내게 “죽을힘을 다해 아이들을 가르친다.”라고 말했다. 나의 교사로서의 삶이 확 달라졌음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장인 정신이 지나쳐 정치가 세습되는 것을 보면 참 놀랍다. 정치가 집안이 수두룩하고 그것을 용인하는 시민들의 정치의식이 애처롭다. 반복되는 역사 망언과 극우적 발언이 우연한 것은 아니다.

 

순천에 온 지 3년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낯설다. 집 주위인 호수공원과 도서관, 학교 근처인 순천만, 사무실 부근은 금당 지구 정도가 익숙하다. 이십 몇 년 전 떠난 광주를 여전히 나의 도시라 생각하고 있으니 한참 잘못되었다. 발 딛고 호흡하는 지금 이곳이 나의 도시이다. 곳곳을 살피며 [순천 산책자]가 되어 보고 싶다. 강상중은 늘 정면을 본다. 비켜 보지 않고 응시한다. 아들을 떠나 보낸 엄청난 아픔 속에서도 ‘살아야 하는 이유’와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이야기한다. 서경식 교수의 높은 식견과 깊은 고뇌를 신뢰하듯, 그의 고민과 사색에 공감한다. 저자의 말처럼 케 세라 세라(어떻게든 되겠지). 흐르는 강물처럼.

137도쿄산책자.hwp

2013년 6월 15일. 이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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