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녹슬어 가는 아름다움을 위하여
[ 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 / 안도현 / 도어즈 ]
아주 조용히
가슴이 아프다 마는 정도가 아니라 가슴이 빠개지는 일이 좀 있어야겠다.
함께 간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 그런 말들은 되도록 아껴야 한다.
말이란 아낄수록 빛이 나기 때문이다.
세상에 태어나 조용히 녹슬어 가는 일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세상에 태어나 조용히, 아주 조용히… 녹슬어 가는 일은….
세상은 온통 늙지 말기를 권한다. 녹슬지 말고 늘 반짝거리라 한다. 녹슬면 쓸모없다는 듯. 횡포이자 폭력이다. 마모되어 세월을 얹고 있는 것은 존재로서 위대하다. 최근 난 내가 녹슬고 있음을 발견하고 깊은 생각에 잠긴 적이 있다. 인정하기 싫은 ‘철 지남’을 대면하고 잠시 슬펐고 다시 평안해졌다. 인정하니 느긋해지고 편안하였다. 대신 조용히 녹슬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나이 들었어도 너무 팽팽한 피부가 자랑이 되기보다 조금 늘어진 마음결이 대신하기를 바란다.
가출과 출가
전전긍긍 없는 여행, 전전긍긍 없는 생활, 전전긍긍 없는 문학이 있다면 그건 속임수에 다름 아닐 것이다. 우리는, 나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전전긍긍해야 할 것이다.
아내와 아이들이 나에게 줄을 대고 있으니 출가는 이미 물 건너간 일이고 아직 물 건너가지 않은 가출이나 어느 날, 문득, 나도 모르게 해 버릴까 보다.
전전긍긍, 그래 나는 얼마나 전전긍긍한가? 늘상 찌질하게, 그래도 줄타기하듯 전전긍긍하며 지금까지 살았다. 그런 전전긍긍이 나를 쉼 없이 밀고 간 힘이다. 시인은 일탈, 가출을 꿈꾼다. 어디 시인만의 바램이랴. 한 번이라도 훌훌.
생명의 마음
생명의 마음이란 연약하기 그지없다.
이 세상 나무들은 연약한 자기의 마음을 나뭇가지 끝에 매달아 놓고 살아간다.
자작나무 가지 끝이 파르르 떨리는 것은 자작나무의 마음이 아프다는 뜻이다.
시인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다.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경배, 사소한 것들에 깃든 사랑. 그것의 천착이 정치인 안도현으로 나타나기를 바란다. 파블로 네루다가 혁명 정부에 참여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민중의 삶을 살피다가, 고향 마을에 돌아와 우편배달부 청년과 소소한 글쓰기를 주고받다 삶을 정리했듯, 그도 그러하기를.
2012년 12월 11일 이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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