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62꽃은 젖어도 향기는 접지 않는댜-도종환

짱구쌤 2012. 12. 30. 23:08

 

 

 

꿈은 자기 생애를 밀고 쉼 없이 가는 일

[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 도종환 / 한겨레출판 ]

 

 

 

그는 시인이다. 그것도 인기 많은 작가. 그가 낸 [접시꽃 당신]은 100만부가 팔렸으며 이미 영화로 만들어 지기까지 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그를 서정 시인으로 알고 있다. 그의 젊은 부인이 어린 아이 둘을 남기고 암으로 세상을 뜨자 “내가 울면서 쓰지 않은 시는 남들도 울면서 읽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시들이 그것이다. 부인 사후 6년이 지나 새로운 사랑을 만나 재혼했을 때 많은 이들은 그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슬픔을 팔아 먹는 자’ 라는 독설까지 날렸다. 나 역시 그런 시류에 편승하여 쉬운 비판을 날렸음을 고백한다. 미안하다. 그는 그의 시적 명성이나 작가적 포즈보다는 평생 엄마라는 말을 해 본적이 없는 어린 딸에게 엄마라고 부르며 달려갈 수 있게 하는 일이 중요했다고 이야기한다. 함부로 비판하지 말 일이다. 그는 사실 교육운동가이다. 전교조 해직교사로 투옥을 당했으며 충북지부장을 몇 년이나 맡으며 척박한 교단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투사이다. 그런 그에게 사람들은 시인의 감흥이 어떻게 나오냐며 묻는 이들도 있고, 시인으로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어떻게 노동조합의 일꾼이 그런 시를 쓸 수 있느냐며 반문한다. 자신도 고백했듯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일이 없었을 일을 그는 훌륭하게 해냈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문학평론가 염무웅은 “시를 쓰는 일과 깨달음을 구하는 일이 근본에 있어서 하나라는 것을 자신의 온 생애를 통해 증거하고 있다”고 한 것이다.

 

 

시인은 너무 가난하게 살았다. 어린 시절의 가난은 그에게 쉬이 아물지 않을 상처가 되어 젊은 날의 방황으로 이끈다. 세상에 철저히 내팽겨쳐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학대하던 나날의 연속이었다. 폭음에 기행에, 무절제에, 스스로의 침잠에... [플란더스개]의 주인공 소년 네로 역시 세상에서 배척되어 하나뿐인 할아버지를 잃고 꿈에 그리던 명화 앞에서 차가운 죽음을 맞는다. 시인은 네로의 외로움을 위로한다. “지금도 그 소년은 내 가슴에 남아 차가운 눈길을 혼자 걸어가고 있다.”

그를 세상으로 이끈 것은 시와 아이들이었다. 고은의 시를 읽고, 교단에서 티없는 아이들을 만나며 세상의 고됨과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시를 쓰며 사는 시인으로 내버려두기에는 세상이 너무 거칠었다. 내성적인 그가 교육운동가가 되어 투옥된 후 석방되었을 때 집에서 맞은 생일날, 깁스를 한 어린 딸을 보고 그가 없는 동안 외로웠을 딸을 보며 울부짖는다. 책임을 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딸아이 손을 잡고 성당에서 오는 길

가을바람 불어서 눈물이 납니다

담 밑에 채송화 오순도순 피는데

함께 부른 노래 한 줄 눈물이 납니다 [가을날]

 

 

저자가 십년 만에 돌아온 교단은 전과는 달랐다. 도무지 집중하지 않은 아이들, 늘 불만과 욕설을 달고 사는 아이들, 사회는 황폐했고 아이들은 거칠었다. 그때 만난 동완이는 그중에서도 가장 거칠었다. 학비를 내주고, 생활비를 대주고, 대화도 나누고 온 힘을 다해 거두었으나 돌아온 것은 비행과 탈선, 결국 동완이는 소년원에 드나들었으며 보호시설에 넘겨졌다. 어느 날 날아든 음악회 초청장, 동완이가 시설 아이들과 연주 발표회를 하던 날, 남의 집 열쇠를 따고 물건을 훔치던 손으로 첼로를 연주하던 모습에서 하염없이 눈물아 흘렀다고 한다. 교육은 떨어지는 바위를 끝없이 밀어 올리는 일

 

 

시인은 지금 교단을 떠나있다. 젊었을 때부터 혹사해온 몸의 신경회로가 이상을 일으키는 병을 얻어 학교를 그만두고 깊은 산골에서 살고 있다. 그곳에서 몸과 마음을 치유하며 다시 시를 쓴다. 한때 그는 그곳에서 너무 깊은 외로움에 빠져 있기도 했으나 ‘낙엽송도 혼자 있고, 두충나무도 혼자 있고, 고라니도 혼자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것들과 다 함께 있는 것입니다’라며 자연과 하나가 됩니다. 스콧 니어링을 알게 되고 소로도 알게 됩니다. 단순한 삶.

 

도종환의 시는 대부분이 쉽다. 그래서 마음이 더 울린다. 혹자들은 그의 시를 너무 평이하다는 이유로, 혹은 등단을 정식으로 하지 않았다 하여 낮게 보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들만의 ‘리그 이야기’이다. 생을 놓아 버리고 싶었을 때, 대오에서 이탈하여 안위하고 싶었을 때 창 너머로 보이는 담쟁이를 보며 깨닫는다. 벽을 인정하고 거기에서부터 여럿이 함께 오른다. 묵묵히, 하지만 멈추지 않고.

 

 

담쟁이 / 도종환

 

 

저것은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 때 담쟁이는 말없이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 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뼘 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 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을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있으랴 /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가난과 외로움과 좌절과 절망과 방황과 소외와 고난과 눈물과 고통과 두려움으로부터 내 문학은 시작되었고, 그것들과 함께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것들이 없었다면 나는 시인이 되지 못했을 겁니다.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 많은 아픔의 시간을, 거기서 우러난 문학을, 나의 삶, 나의 시를..”

 

진정으로 삶을 긍정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시인의 자세다.

2011. 11. 10. 이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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