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59내영혼의 그림여행-정지원

짱구쌤 2012. 12. 30. 23:03

 

그림은 평면이 아니라 깊이다!

[ 내 영혼의 그림여행 / 정지원 / 한겨레출판 ]

누구에게나 콤플렉스는 있다. 나에게는 예술, 특히 미술과 음악이 그렇다. 한 가지만 고르라면 미술이 더 그렇다. 음악이야 듣기 좋아하고 노래 부르기도 좋아하니 그럭저럭인데 미술은 도무지 자신이 없어 주눅부터 든다. 우선 그림을 통 그릴 줄 모르고 좋은 그림을 감상 할 줄도 모른다. 그런 오랜 두려움을 조금 벗어날 수 있게 해준 사람이 미술 평론가 이주헌과 오주석이다. 그들의 책을 읽고부터는 그림 보는 눈이 조금 밝아졌다. 아직도 그림 그리기는 꽝이지만.

그런데 그림 앞에서 주눅 들지 말고(쫄지 말고) 당당히 즐기라고 하며 거기에 우리를 위안까지 해주는 이가 바로 정지원이다. [사람은 꽃보다 아름다워]를 지은 시인이기도 한 그녀는 우리 또래다. 그녀가 이 책을 쓴 이유는 그녀가 좋아하는 그림을 통해 진정으로 위로를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란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 책은 기억의 어느 부분이 나와 닮아 있는 당신이 위로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젊은 날 거리에서 투쟁가를 부르던 당신, 어느 결에 부모가 되어 좋은 세상을 아이에게 열어주려고 오늘도 열심히 일하는 당신에게 내가 드리는 작은 꽃다발이다. 지나온 시간들을 무채색으로 폄하했던 이들을 단호히 거부하며 색색의 빛나는 시간들을 되돌려 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림 이야기를 쓰게 되었다. 당신은 예전에도 아름다웠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당당하게 살아갈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을 기억하는 우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참 많은 화가들과 좋은 그림을 알게 되었다. 진정으로 위로를 받았으며 평화를 얻었다. 그 중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그림은 일리야 레핀의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이다. 이미 이주헌의 그림책에서도 본 적이 있었는데 저자의 해석은 더욱 가슴을 울린다. 러시아 작가인 레핀은 혁명 시기 개인이 겪었을 고뇌와 어려움에 대해 담담히 그림으로 이야기한다. 대의를 위한 어느 혁명가가 오랜 시절 수배와 도피를 딛고 찾아온 고향 집, 그로 인해 마음 졸이며 깊은 상처와 두려움을 삭이며 살아온 가족들에게 그의 귀환은 반갑지 않다. 또 다시 불어 올 공포에 두려움이 앞선다. 이런 상황을 순간적으로 느꼈을 혁명가의 얼굴. 가슴이 미어진다. 그는 잠시 후 스스로 집을 나설 것이다. 찬바람과 어둠이 그를 감싸고 그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날 것이다. 레핀이 주목한 시선은 절망이었을까? 저자는 이 그림을 [세상에서 가장 슬픈 시]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림 속 젊은 혁명가의 외로운 등을, 지친 발을 따갑도록 바짝 붙어 서서 바라보았다고 한다.

 

 

다음은 오윤의 판화작품 [애비]. 판화, 특히 목판은 매력적인 장르다. 목판을 세길 때의 나뭇결 깍이는 소리는 참 듣기 좋다. ‘칼맛’이라고 하는 판화 특유의 생략과 긴장감은 회화의 그것과 다르다. 오윤은 우리 나라 민중판화 1세대 작가다. 대학 때 보았던 민중 판화의 대부분은 오윤의 것이다. 지금은 이철수 등이 대를 이어 판화의 대중화에 나서고 있지만 그 시작은 오윤이다. [애비]는 긴장이 있는 짠함이 느껴진다. 두려움에 몸서리치며 응시하는 곳에는 부자를 위협할 위기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부자는 그 위기를 너끈하게 이겨낼 것임을 믿는다. 애비의 굳건한 손, 두렵지만 애비를 믿는 아들의 가녀린 어깨, 둘은 서로를 믿으며 나아갈 미래를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 장의 판화가 주는 힘. 오윤이 이룬 성취다.

김호석, 김경주, 강요배, 이종구 등 현역 한국 화가들과 신윤복, 김홍도, 박제가, 윤두서 등 전설적인 우리 작가들도 좋았지만 드가나 세잔, 르느아르 등 서양 작가들의 그림도 인상적이었다.

그림을 보는 일은 세상을 사랑하는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눈동자가 빛난다. 그 빛은 영혼에서 나온다고 나는 믿는다. 화가들의 아름다운 그림과 영혼의 눈동자가 만나는 그 순간, 세상은 한 뼘 정도 맑아지지 않을까?

그림 앞에 경건해지자. 편견 없이.

2011. 10. 29. 이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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